발견 외 2편
양균원
붉은
유리 조각이
날 잡아당긴다
깨진 것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적이다
깨진 가장자리에서
빛이 화살을 날린다
깨져 날이 선 것
둥지를 떠나 예각이 드러난 것
그리하여 둥글게 마모되어 가는 것
부르는 대로 불리는 것이
사물의 운명이다
네 잎 클로버는 책 속에 버려졌다
이제 다가갈 수 있다
누군가의 손바닥에
뭐냐고 물을 수조차 없는 아름다움으로
놓일 수 있다
외론 책방의 꽃병이었는지
성당 색유리에 조형된
막달라 마리아의 손등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산산조각 나기 전은 없다
날 선 기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겨울 바다 모래톱에 비죽 솟아 있는
유리 조각, 붉은
당김
까마귀처럼 가라
가지에서 가지로
까마귀처럼 가고 싶다
나를 보내는 너의 시각에서
가도 가도 풀밭인 곳으로
정처 없이 걷고 싶다
너의 중심을 떠나
한 걸음에 풀 서너 포기씩
나의 중심도 풀 서너 포기에 한 걸음씩
뒤에 남겨 두고
농담이 살아 있는
수묵화 속으로 배어들고 싶다
끝없이 이어지는 풀, 풀
풀 곁에 풀로 걷고 있다
네 이름을 부르니 풀벌레가 날아간다
네 손을 잡으니 풀씨가 흩어진다
시작이 없어서 끝이 없는,
이곳이 사막이라면 풀은 모래다
이곳이 바다라면 풀은 물이다
내려놓기에는 그만인 이곳
먼 산이 자꾸 낮아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풀 높이로 내려와
허공에 밑줄을 긋는다
가도 가도 싱겁게 푸른 십 리에서
난,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나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고 싶다
비대칭
수평선,
넘실거리는 파도의 연속
직선은 없는 거지
반듯이 누워 있는 자는
거기 꿈틀거리는 굼벵이만 못한 거지
언제나 어딘가로 출렁이는 리듬
오른쪽 무릎이 휘고
왼쪽 눈꼬리가 처지고
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에서
어딘들 뒤틀리고 있지
쌍코피 터지는 경우가 있지만
콧물은 한쪽에서 시작하지
숨구멍이 열리는 데는 귀천이 없으니까
기울어진 지구에서 팔자로 걷는 것은
이동 중인 중심을 따라가는 것인데
갈매기도 덩달아 두 날개 펼치지
바닷바람과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매 순간 흔들리는 것이니까
흔적을 좇아가는 해변
저녁은 좌현으로 기울고 있고
십일 자 보행,
예비역의 주특기는 뇌리에 생생하지만
손목에 선을 그어 대는 노을이
줄줄이 정당방위를 갈겨쓰면
모자는 한순간 날아가고
늬가 뭔데,
어깻죽지가 절로 올라가지
짓눌린 꽁초, 마지막 1초를 지나
무게는 역시 왼발 뒤축에 싣고
오른발로 모랫바닥을 쓸면서
세상을 15도 틀어 놓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저물어 가는 서녘을 향해
엄지발가락을 불끈,
하아, 그렇게 찍힌 청춘의 스냅 사진 한 장
― 양균원 시집, 『집밥의 왕자』 (파란 / 2020)
양균원
1960년 전남 담양 출생. 1981년 《광주일보》, 2004년 《서정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 『허공에 줄을 긋다』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집밥의 왕자』, 연구서 『1990년대 미국 시의 경향』 『욕망의 고삐를 늦추다』. 대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