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년전 아엠에프로 인해서 큰 타격을 받고 재기를 위해 몸부름치던 나에게
어느날 갑자기 병이 찾아왔다
혼자서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던 나에게 천청벽력같은 일이였지만
냉엄한 현실을 피힐 수는 없었다
그때 정숙이란 나이 어린 천사같은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은 성의를 다해 아픈 나를 간호해주었고 그 결과 수술을 하지 않고서도
거의 완치가 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 여인에겐 율희란 예쁜 4살배기 딸이 있었는데 나를 무척 좋아했다
그 인연으로 해서 우린 한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 아이는 나를 가짜 아빠라고 불렀다
그래도 남들 있으면 아빠라고 불러줄 그때가 내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나는 꿈같은 삼년을 살면서 그녀와 그 아이를 무척 사랑해주었다
우리가 만난지 그 이듬해 봄,,,
우리는 가까운 야외로 냉이를 캐러가기로 했다
여느때보다 일찍 일어난 율희의 성화에 못이겨
전날 내가 손수 장만한 단무지와 오뎅, 맛살, 우엉, 오이
그리고 지단을 부쳐서 김밥을 말았다
난 뭐든 못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음식을 잘했다
특히 율희랑 같이 지내면서 율희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든지 손수 만들어 주었는데
율희는 떡뽁기랑 뽁음밥 그리고 김밥을 좋아했다
가끔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 나는 어린천사들을 위해서 손수 요리를 해주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가장 멋진 남편 그리고 아빠로 소문나 있었다
김밥을 칼로 썰고나면 양쪽으로 남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언제나 율희의 몫이었다
김밥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도시락에 차곡차곡 넣고난 후 남는 것을 접시에 담아서 주니
맛있다며 작은입으로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린 긴단한 복장과 냉이를 담을 봉지 그리고 작은 과도 2개를 준비해서 목적지로 출발했다
한시간 남짓 달리는 차 속에서 율희는 동요와 유행가 그리고 유아원에서 배운
구화로 내게 이야기해주면서 애교를 부렸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율희랑 같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정숙은 그런 내모습을 보고 좋았는지 그냥 웃고만 있었다
햇볕이 따싸하게 비치는 어느 들가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 봤다
운이 좋았는지 근처 밭두렁에는 온통 냉이 투성이였다
나는 가까운 곳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비닐봉지와 작은과도을 가지고 이리저리
밭을 헤메며 냉이를 찾아 헤메었다
나는 냉이를 캐고 정숙은 쑥을 캐기로 했다
율희는 온 밭을 뛰어 다니면서 들꽃을 딴다고 야단이었다
냉이가 어떻게 생겼나고 물어보길레 보여주며 이렇게 생겼다고 했더니
온 밭을 헤메며 "아빠! 여기도 냉이 저기도 냉이"하면서 냉이 있는곳을
자세히 아르켜 주었다
민들레도 냉이로 보였는지 가끔 실수도 했지만 나는 그것마져도 이뻐서 안아주고 싶었다
한시간 남짓 정신없이 캐니까 비닐봉지가 제법 불룩했다
하던 일손을 멈추고 평평한 곳에 자리를 깔고 준비해간 김밥이랑 통닭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어면서도 온통 우리들의 대화는 냉이 이야기 뿐이였다
처음으로 캐보는 냉이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였다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하루종일 캔 냉이랑 쑥을 비닐봉지에 가득히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루에 자리를 깔고 봉지를 헤쳐보니 꽤 양이 많았는데 다른 풀도 조금 뒤썩여 있었다
골라내고 다듬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정숙이랑 같이 하니까 재미있었다
잘 다듬은 냉이를 물로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간장과 참기름 넣고 무쳐주었더니
정숙은 맛있게 먹었지만 율희는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냉이는 고유한 맛이 있어 먹고난 후에도 오랬동안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맛이 바로 봄의 맛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정숙이도 율희도 내곁을 떠나가고
냉이도 꽃도 피어버려 먹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매년 이맘때 즈음이만 그때의 재미있는 추억과 냉이의 상큼한 맛이 생각난다
그 빛바랜 추억은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내가슴 속에 남아 있다
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