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 이사야 57:14~16
함께 읽은 오늘의 본문 말씀은 앞서 읽었던 하나님의 죄악에 대한 책망과 심판에 대한 말씀과 매우 상반된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심판과 구원, 책망과 위로의 말씀을 교차하여 진술하는 선지자의 진술 방식은 이사야 선지자가 자주 사용하는 예언 방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이 말씀은 선민의 우상 숭배의 죄와 심판과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치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의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은 공의와 긍휼의 상반된 하나님이 성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서는 공의에 기초한 진노를 드러내시고 심판하시고 엄중하게 징계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살리시고자 긍휼과 자비로써 가르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차례로 읽어가면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의 말씀, 그가 자기 백성의 연약함과 허물을 고치시는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영적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여기서 주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고토로 돌아오는 귀환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을 평탄하게 하고 길을 걷는 데 방해되는 거치는 것들을 제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길, 신자가 걸어가야 하는 제자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거치는 것들, 방해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12장 1~2절 말씀에 “이러므로 우리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 하신 말씀과 같은 취지입니다. 달리기 경기 선수가 달리는 데 방해되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 드레스 옷과 같은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달리기에 집중하도록 간단한 운동복 차림만을 입고 달리지 않습니까? 이처럼 주님의 백성들 역시 신앙의 경주에 방해되는 세상에 속한 마음, 육신적인 욕심, 얽매이기 쉬운 죄의 습관들을 철저히 벗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겉으로 드러난 방해꺼리도 있고 내면에 감추인 세상 미련이나 야망이나 육신의 정욕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마음에서 미련을 끊어버려야 마음에 주님이 가득차고 주님의 뜻을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여 끊임없이 천막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고서 이 땅의 것들을 소유하는 데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저 하늘 본향의 진정한 집에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렸습니다. 우리도 신앙의 순례 길에 너무 많은 짐을 끌고 다니려 하지 말고, 세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다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지 맙시다. 우리의 영혼의 순례 길에 방해가 되고 거치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제하여 버리고 우리 여행이 단순하고 가볍고 즐겁게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오늘 밤이라도 올라오라고 하시면 곧장 떠날 준비를 합시다. 평생에 경주자의 차림새로, 매일 지상에서 하룻길을 걸어가는 천국 순례자의 자세로 살아가는 저희가 됩시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지극히 존귀한 분’, ‘영원히 거하시는 분’, ‘거룩하신 분’,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비천함과 유한성, 부패성, 장차 영원한 구덩이에 던져질 저주 받은 운명과 극히 대조가 되는 하나님의 본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존귀하고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인간과 도저히 교제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있을진대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낮고 비천하고 부패한 인간에게 찾아오시고 함께하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인간을 처음 만들 때부터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며 충족하신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찾아오시곤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두신 에덴 동산에 종종 찾아오셔서 거니셨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사십 년 동안 찾아오셔서 동행하셨고 법궤 가운데 임재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에 좌정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천국을 예비하시어 그의 택한 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거주하고 계시며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랑이요 분수에 넘치는 은혜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나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그를 모시기에 합당한 영혼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는 바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입니다.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라는 말씀대로입니다. 통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은 깨어진 마음을 가리킵니다.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청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통회하고 겸손한 마음을 사람을 지존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심히 사랑하시고 함께 거하십니다. 시편 51:17 말씀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4:1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6:2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이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며 그와 동행하며 동역하며 인도해주시는 은혜는 교만함과 완고함이 없는 자, 자기의 죄를 깊이 자각하고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겸손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지극히 존귀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고 붙들어주시고 기이하고 놀라운 영적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하여 진노를 계속 품지 않으시고 징계를 계속 하지 않으시고 거두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계속 징계를 하다 보면 자기의 택한 백성이 결국 그 영혼과 삶이 지치고 곤비하여 쓰러질 것 같아서 그들을 아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하심은 그의 백성들의 역사 속에 자주 나타났던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나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모세의 중보 기도를 언제나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곤 하셨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 온유한 모세가 백성들이 은혜도 모르고 계속 불평하니까 화가 나서 분노를 터뜨리며 그 백성들을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하면서 혼냈다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에 직접 가지 못하게 하시고 그 일은 여호수아에게 넘기고 그만 올라오라고 그를 데려가신 적도 있지 않습니까? 큰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이 했는데, 그 책임을 충성된 종 모세에게 물으셨으니, 모세로서는 좀 어안이 벙벙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어리고 부족한 것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행한 대로 갚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셨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성품대로 갚으셨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이미 망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바벨론에 망할 때까지 무려 900년을 오래 참으셨으니, 참으로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는 분입니다. 이는 그의 백성들의 영과 혼과 몸이 주의 징계로 너무 지쳐서 낙심할까 염려하시기에 그들을 아끼신 것입니다. 시편 78:38,3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분노를 다 쏟으면 살아 남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한 흙으로 만든 육체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한 줄기 바람같이 허무한 존재임을 아시기에 그들을 아끼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 모습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에 하는 일이 몹시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매섭게 회초리로 때려주고 싶으나 혹시라도 낙심하고 좌절할까봐 나무라도 꾹 참고 기다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많은 잘못을 범하고 욕심껏 살고 내 마음대로 살고 맡겨준 사명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며 살았을지라도 행한 대로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신 까닭입니다. 시편 103:8 이하에 다윗도 하나님의 이러한 자비로우신 징계에 대하여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편 103:8~13) 이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오래 참으시고 행한 대로 다 갚지 아니하셨고 우리의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우리에게서 훌쩍 옮겨주셔서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망하지 않고 이렇게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그러한 긍휼의 은혜로 살고 주님 품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크고 놀라운 사랑, 자비로운 용서, 긍휼히 여기시고 품어주시고 오래 참고 도와주시는 그 사랑에 합당하게 우리도 다른 누군가에게 오래 참도록 합시다. 또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들에게 행한 대로 다 갚으려 하지 맙시다. 용서받은 사랑이 너무 큰 우리도 기꺼이 누군가의 죄와 허물과 무례함을 기꺼이 용서해줍시다. 그러한 너그러움과 용서와 긍휼과 사랑이 파장이 되어 결국 더 큰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축복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아오게 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