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2월, 6·25 전쟁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한반도의 추운 겨울철, 미 제2보병사단 소속의 찰스 G. 롱(Charles G. Long) 중사는 역사에 남을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희생은 군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며, 후에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훈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날의 긴박했던 전투와 그의 숭고한 선택을 재조명합니다.
1. 1951년 2월 12일, 호암리 전투의 서막
▪︎당시 미 제2보병사단 제38보병연대 M중대 소속이었던 찰스 롱 중사는 강원도 횡성 인근의 호암리 전초기지에서 박격포 분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2월 공세)가 휘몰아치던 시기로, 전선의 압박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찰스 롱 중사의 분대가 지키던 고지는 아군 전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요충지였습니다.
2. 중공군의 기습과 고립
▪︎12일 새벽, 압도적인 수의 중공군이 어둠과 지형지물을 이용해 롱 중사의 분대가 있던 고지를 포위하며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압도적인 병력 차이: 중공군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왔습니다.
▪︎진지 파괴: 격렬한 총격전 끝에 분대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적의 수류탄과 포화로 인해 아군의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퇴로 차단: 순식간에 분대원들은 고립되었고, 탄약마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3. "모두 후퇴하라, 나는 남는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하자, 롱 중사는 분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전원 퇴각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밀려드는 적들을 막아서며 시간을 벌어주어야만 동료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롱 중사는 주저 없이 자신이 고지에 홀로 남을 것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적들을 붙잡아 둘 테니, 너희들은 당장 여기서 벗어나라!"
▪︎그는 동료들에게 탄약을 모두 자신에게 넘겨줄 것을 지시한 뒤, 홀로 진지에 남아 다가오는 중공군을 향해 소총과 수류탄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4. 장렬한 최후와 명예훈장
▪︎동료들이 고지를 내려가는 동안, 고지 정상에서는 롱 중사의 외로운 총성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밀려드는 적들을 혼자서 차단하며 동료들이 안전하게 아군 본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마침내 탄약이 모두 고갈되었을 때도 그는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는 백병전까지 불사하며 고지를 사수하다가 결국 적들의 포화 속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훗날 고지를 탈환한 아군이 발견한 그의 진지 주변에는 그가 혼자서 사살한 수많은 적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미 최고 무공훈장(🎖️Medal of Honor) 추서
▪︎미 정부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분대원들의 목숨을 구하고 임무를 완수한 찰스 G. 롱 중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려, 1952년 미국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했습니다.
▪︎찰스 롱 중사의 이야기는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UN군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화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캠프 롱(Camp Long): 미군은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강원도 원주시에 있던 미군 기지의 명칭을 '캠프 롱'으로 명명했습니다. (해당 부지는 2010년 기지 폐쇄 후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