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생가기념관은 대지 면적 2만여㎡, 건축 면적 1천여㎡로 전시 홀,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초가로 지은 생가, 연밭, 산책로 등을 갖춘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응노 개인을 기리고자 마련된 이 생가기념관은 그 자신이 미술가였기에 기능면에서 전시와 수장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미술관의 성격이 한층 더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은 기념관은 물론, 미술관의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응노는 해강 김규진 문하에서 서예와 묵화를 배우고 있었는데 소문을 듣고 나혜석이 살고 있는 수덕여관으로 찾아온다
나혜석과 같이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그녀로 부터 서양화의 기법을 배우게 된다 나혜석의 영향으로 미술에 대한 열정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이응로는 나혜석으로 부터 수덕여관을 인수하여 부인 박귀희(朴貴嬉)여사와 함께 이곳에서 기거를 하다가 후에 운영을 박귀옥 여사에게 맡기고, 자기보다 21살이나 연하인 이화여전 출신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떠나버린다
이응로와 박인경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이응로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류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한다 이때 이혼한 부인 박귀희 여사가 뒷바라지를 한다 출옥 후에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몸을 정양한다 그 때 수덕여관 곁에 있는 바위에 암호 문자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박귀옥 여사가 무슨 내용인지 물었을 때 ‘천지조화가 이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말을 한다
얼마 후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박귀희 여사만 수덕여관을 지켰다 수덕여관을 지키던 이응노 화백의 전처인 박귀희 여사는 2001년 2월 24일 밤 10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장조카 집에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이응노는 1989년 1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