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성의 승부사' 허정무(52) 전 전남 감독이 지난 7일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돼 98년에 이어 두번째 대권을 움켜쥐었다. 2000년 이후 외국인 감독들의 독무대였던 대표팀 감독 자리가 7년만에 국내파에게 넘어온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허 감독이 전면에 나설 때는 늘 한국축구의 위기였다. 김호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대표팀과 인연을 맺은 93년 11월30일은 '도하의 기적' 끝에 94미국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한달여 뒤였고, 국가대표팀 겸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은 98년은 한국축구가 전무후무한 '월드컵 대회 중 감독 경질'의 폭풍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허 감독이 98년 대표팀 감독에 처음 선임되는 과정도 올해만큼이나 극적이었다. 8월 14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대표팀 감독 경선이 열렸다. 당시 3인의 후보였던 김호곤 연세대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전무), 이차만 부산대우 감독(현 부경고 총감독), 허정무 전남 감독(이상 가나다순) 중 김 감독과 허 감독이 연단에 나서 축구 관계자와 취재진을 상대로 축구철학, 대표선수 선발 및 관리 방안, 훈련 계획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기술위원들의 결선투표 끝에 허 감독이 대권을 쥐었다(이 감독은 당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2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 조별리그에서 사상 최고인 2승1패의 성적을 거두고도 8강 진출에 실패하고, 11월 아시안컵(레바논)에서 3위에 그친 뒤 허 감독은 퇴진했다. 한달 뒤인 12월 2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 2년 전 프랑스에서 한국에 충격적인 패배를 안긴 네덜란드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임기 시작 11일 전에 열린 한·일전(안정환의 골로 1-1 무승부)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7년에 걸친 외국인 감독 시대의 시작이었다.
긴 구비를 돌아온 허 감독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지휘봉을 돌려 받았다. 허 감독에게 지난 7년이 '잃어버린 세월'만은 아니었다. '클레르퐁텐'을 벤치마킹한 '용인축구센터'를 설립해 꿈나무를 키우겠다고 나설 때는 주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맡겠다고 할 때는 거센 '태클'을 당했다. 전남 감독 시절 선수단 관련 예산을 직접 관리하는 '퍼거슨식 실험'에 착수할 때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FA컵 2연패 때는 함께 샴페인 세례를 받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되돌아보니 그 많은 일들이 그의 말대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피하지 못한 "승부사의 숙명"을 묵묵히 홀로 지탱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98년 대표팀 감독 경선에 나서면서 허 감독은 출사표 끝에 "대표팀 전임 감독의 지위가 주어진다면 오늘의 제가 있게 한 한국축구를 위해 온 몸을 사르겠습니다"라고 썼다. 지난 7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렸구나, 부족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중도 퇴진했다. 7년 전 한을 꼭 풀고 싶다"고 했던 그는 "축구인생 전체를 걸겠다"며 9년 전과 같은 다짐을 했다.
새 도전에 나선 허 감독이 한국인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그를 통해 한국축구가 또 한번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축구팀장·jklyu@
이 기자 허정무 알바인가? 과연 지난 7년이 잃어버린 시간이라 할수 있는가? 한국은 예전에도 FIFA에서 주관하는 각종연령대별 세계선수권에서 항상 탈락 아니면 '아쉬운탈락'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 결코 뒤쳐진것은 아니다! 지금은 잠시의 위기일뿐 허정무를 구원자로 묘사하는 이 기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첫댓글 그래도 이왕 감독 맡긴거 두고보자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