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말씀 이사야 9:1-7
요절 이사야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느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악가운데서 망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주님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12월은 성탄의 달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음 해를 준비하며 기대하는 결심의 달이기도 합니다. 이 귀한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특히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선지사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1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놀라운 선지자가 아닙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 7, 800년 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북쪽의 아람과 앗수르, 그리고 남쪽의 애굽의 국제질서 속에서 나라는 언제나 위기 속에 있었으며 왕으로부터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우상숭배와 탐욕으로 정의와 믿음을 잃고 패역한 백성되 되고 만 그런 악한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실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그런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희망이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어두운 때에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패역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환경 중에서도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에 대해 이사야서 전체 이곳 저곳에 그 어떤 선지자보다 더 많이 우리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메시야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아기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 한 아기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간직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1절과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에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영화롭게 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번쩍번쩍 빛나게 하신다는 듯이 아닙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황폐했던 지역과 절망적인 인생이 빛나는 지역, 멋진 인생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닙니까? 맹물과 같은 인생이 변하여 포도주와 같은 달고 오묘한 인생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닙니까? 이사야 시대를 생각해보십시오. 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남유다는 풍전등화 그 자체였습니다. 예루살렘이 그러했다면 북쪽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불안하고 생명이 위태했습니다. 그 곳은 늘 국제적으로 중요한 통로가 되어 아람 군대가 들어오고 앗수르 군대가 침략했으며 남쪽의 애굽 군대가 침범했습니다. 얼마나 멸시를 당했을까요? 얼마나 흑암이 심했을까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빛이 없는 인생을 생각해보세요.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미칠 수 밖에 없고 눈물나는 슬픈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오히려 노래합니다. 오히려 찬양합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어지고 멸시의 땅이 오히려 영화롭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인생들에게 메시야를 주실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날이 도래할 것을 보고 노래합니다. 시골 동네 갈릴리의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태어나심으로 갈릴리는 다시는 흑암의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영화로운 고을이 되었습니다. 갈릴리에서 부터 복음이 전해짐으로 이름없는 갈릴리 호수가 유명한 호수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갈릴리 호수의 물고기도 유명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오병이어에 나오는 물고기가 갈릴리 호수의 물고기가 아니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그물이 짖어질 정도로 잡힌 물고기가 바로 갈릴리의 물고기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함께 할 때 모든 것이 변하여 새 것이 됩니다.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다시는 흑암에 거하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반드시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지금 유다백성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맞이할 1세기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을 우리 모두를 위해 지금 메시야의 노래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어두움에 빛이 비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놀랍습니다. 빛이 비취므로 모든 생명이 일어나고 꽃이 피고 열매맺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빛이 비칠 때 그 사람은 꽃이 피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화의 역사입니다.
갈릴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능력의 사람이 되고 1세기 어두움의 역사를 빛의 역사로 바꾼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마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세관에 외롭게 앉아 돈을 세다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시며 불러 주심으로 위대한 복음서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 뿐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는 모든 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3절에서 5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그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즐거움을 더하게 하심으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을 처럼 주 앞에서 즐거워하고 무겁게 짓누러던 멍에과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님께서 꺾어 주십니다.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겠다 하십니다. 얼마나 통쾌합니까? 미디안의 12만 군대가 기드온과 그의 300 용사들에게 단 번에 물리친 놀라운 전쟁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메시야를 통해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때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으로 생명을 누리는 놀라운 역사를 계획하시고 이것을 이루셨습니다.
둘째,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방의 갈릴리가 영화롭게 되고 우리의 인생이 미디안의 날처럼 놀라운 승리의 인생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유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주 약해 보이는 한 아기이지만 이 아기는 다른 아기들과는 다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한 아기는 보통 아기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통치권을 다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시고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십니다. 정말 그 분은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 기묘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고 깨닫게 하시고 선한 생명의 길, 풍성한 길로 이끄십니다. 그는 기묘자이면서 모사이기 때문입니다. 영어성경에는 이 분을 wonderful counselor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wonderful counselor입니다. 또 그 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분을 한 아기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은 전능하십니다.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아버지처럼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해줄 때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성탄의 때 가장 중요한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이 아닙니까? 함께 한다는 메시지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마지막 이름이 무엇입니까? 평강의 왕입니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평강을 경험합니다. 평화는 우리의 바라는 최고의 기도제목입니다. 평화로운 삶을 우리는 추구합니다. 주님은 평강의 왕이 되어 우리 인생을 기본적으로 평강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히 어떠한지 7절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도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저는 참으로 악하고 게으런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벌써 망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제가 작은 샘 교회에 와서 은혜 받은 것이 것이 많은 데 그 중에 한 가지가 우리 신 목사님의 열심이 참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열심을 다해 일하십니다. 농부로서도 그 열심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는 비교가 안되겠죠. 하나님의 열심을 누가 감당할 수 있습니까? 7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열심은 특심하셔서 반드시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 그 자체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쓰여 있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하신 바 말씀을 그 특유의 열심으로 이루십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길 원합니다. 마음에 절대적인 믿음을 갖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붙잡고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나님,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 느슨한 마음, 게으른 마음, 불신의 마음을 깊이 회개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기 위해 그 많은 고난을 참으시고 십자가 마저 달게 지신 우리 주님을 슬프시게 한 죄악이 크기만 합니다. 주님, 굳센 믿음을 주시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ㅈ바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어두움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