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40 ( 충남 서산 웅도 –개심사 –해미읍성 –간월도)
주말과 주일이 알뜰하게 이어져 있어서 올 추석연휴는 꾀나 길었다. 물론 직장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휴일이기에 아들아이랑 연휴 내내 함께 지낼 계획을 꾸렸으나 문득 결혼할 친구가 생겼으니 휴가를 나누어 써야할 것 같은 생각에 우리 부부의 1박2일 여행지는 따로 계획하기로 하였다. 2박 3일을 동해에서 함께 했으니 1박은 우리 부부만 충남 서산투어를 계획하여 떠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지도상으로 보면 웅도쯤에서 차근차근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서산 웅도는 고조선의 후예들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섬이기도 하다. 고조선 하면 초기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환웅천왕과 관련된 신화를 비롯하여 단군신화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환웅천황이 쑥과 마늘을 주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몸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한편 웅도의 서쪽 해안에서 약 1.4km떨어진 곳에 조도라는 섬이 있어서 썰물 때는 웅도와 조도를 이어주는 노둣길이 그 모습을 보여준다는 서산의 볼거리인 웅도를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독특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생태자원으로 유명할뿐더러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육지와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까지 해볼 수 있다기에 복잡하고 정체되는 연휴의 고속도로 위에서 6시간을 달려서 웅도를 찾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웅도에 접어드는 길에는 사실 그지없이 한적할뿐더러 관광객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고 마치 현지인처럼 우리 부부만 익숙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입구부터 고요하고 한적하였으며 둘러 볼거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나는 동네주민도 찾아보기 힘든 웅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맞지 않아 노둣길을 걸어 조도를 건너가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아무런 볼거리나 소득 없이 시간이라도 절약하자는 마음으로 서둘러 돌아 나오기로 하였다. 오는 길이 너무 아쉬워 “둥둥바위”라는 이름표 앞에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우리는 개심사로 향했다. 늘 같은 생각이지만 멀리 계획을 하고 왔다가 여행지가 인터넷이나 생각과 상상에 미치지 못하면 허망함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동행 해 온 남편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다. 한편 지역 관광을 하다보면 늘 빠질 수 없는 곳이 그 지역에 있는 유명 사찰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찰은 삼국시대에 지어진 절이라서 별반 특별할 것이 있겠냐 싶지만 나름대로의 특별함과 그 곳에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사찰에 들어가 보면 자연스레 힐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꼭 찾게 된다.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象王山)에 자리 잡고 있는 개심사는 654년(백제 의자왕14) 승려 혜감이 개원사(開元寺)로 창건하였다 하며 몇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고찰로 예산 수덕사의 말사라고 한다. 개심사에 들어가는 초입에는 뜻밖에 양쪽으로 펼쳐진 상왕산 초원을 조망하며 천천히 진입한다. 꼬불꼬불 신창저수지 둑 옆을 지나면 개심사 입구 사하촌 주차장이다. 그곳에는 고작 슈퍼라 이름 붙은 자그마한 구멍가게 몇과 가든이라 이름 붙은 식당 옆으로 어머니들의 산나물 좌판이 전부였다. 보통의 사찰입구라면 음식냄새와 화려한 기념품과 관광객으로 북적거리겠지만 늦가을 풍경처럼 스산하기까지 하다. 은은한 옥색을 띄는 명부전 앞 청벚꽃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는 개심사는 그러한 청벚꽃 때문에 유명세를 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사찰이지만 창건 당시의 대웅전 건물은 불에 타서 조선 성종 때 새로 지어졌다 하며 북쪽 대웅전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안양루, 좌우에 심검당과 무량수각이 배치되어 있어서 오밀조밀 특색 있는 볼거리가 많은 사찰이었다. 우리는 사찰 아래에 사각으로 형성된 연못을 휘돌아 해미읍성을 향해 나오기로 한다. 서산에서 1박을 계획하고 달려왔으니 조급할 것은 없었으나 생각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아직 해가 중천이다. 그러나 욕심대로 움직이다 보니 몸이 예사롭지 않다. 긴 시간 운전을 하고 도착하여 뜨거운 볕 아래 서둘러 다니다 보니 몸살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고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오늘의 해미읍성은 컨디션도 좋지 않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역사적인 관점을 두지 않고 그저 여행지로서 휘 둘러보기로 한다. 수문장이 지키는 진남문을 통해 해미읍성에 입성하여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입구에는 옛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여행객을 부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회화나무가 보호 줄 안에 있었고 그 앞에는 천주교 박해 때 이 회화나무에 철사로 목을 묶어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는 설명도 있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에 철사 줄 묶인 자국 여러 줄이 보인다.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 아픔을 간직하며 고발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곧 지금 우리들이 역사를 공부하고 짚어보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10월 2일부터는 해미읍성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성 부지와 주변이 넓어서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 또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최고의 축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불현 듯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1박을 계획하였으니 숙소로 향하자니 살짝 이른 시간이고 간월도로 달려가서 노을을 보고 싶었다. 석양을 바라보기 위하여 시간을 맞추어 오기도 어려운데 잘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월도를 향해 서둘렀다. 간월도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간월암을 보고 그곳에서 노을을 보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해미읍성에서 약 27km를 지는 해를 붙잡으려 달렸다. 그야말로 노을이 지고 있는 적당한 시간에 간월도에 도착하였다. 물때도 맞아서 하루에 두 번 열리는 물길에 한 뼘만큼 하늘을 남기고 떨어져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간월암에 걱정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간월암은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작은 암자로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송만공 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간조시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시는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로 만조시에는 물 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느껴지며 주위 자연경관이 그야말로 멋진 곳으로 섬 전체가 사찰이다. 간월도에 스카이워크와 그곳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바로 간월암으로 향했다. 그리고 완연한 노을을 기다리면서 간월암의 종각, 대웅전, 지장전, 요사채, 용왕단, 산신각이라고 불리는 각각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 및 구조물들을 둘러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간월암 설명문에서 무학대사가 간월암을 창건하였다고 되어있는데 무학대사의 지팡이가 사철나무가 되었다는 유래문과 함께 무려 250년이나 된 사철나무가 마당 한 가운데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따뜻하게 달궈진 간월암 마당에 눌러 앉아 완연한 노을을 기다려서 서산의 노을에 흠씬 젖었다가 어둑한 물길을 나와 보니 어느덧 밤길이다. 1박까지 계획했던 서산에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완벽하고 알뜰했다. 우리는 간월도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느리게라도 내 집에 와서 아침을 맞는 것이 무엇보다 편안할 것 같아 무리를 해서 다시 고속도로위로 올랐다. 이번 서산 여행도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 조금의 실망과 뜻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참으로 만족스러운 스케치였다. 충남 서산의 간월암 저녁노을이 도갑사 초입까지 따라와 빙그레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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