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우울의 시대, 다른 내일을 만드는 여성들① 리페어lab
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8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우리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틈새를 만든다”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강연자 소개] 이원주. 리페어lab 활동가. 지속가능한 삶에 중점을 둔 활동들을 고민합니다. 지속가능한 환경여행, 비건 캠핑, 어린이 자원순환 놀이터, 장난감 학교 ‘쓸모’를 운영하고 환경교육을 하는 다시보다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라는 곳이 미래에는 멋진 고향이 되기를 소망하는 기성세대입니다.
신도시, 온통 새것인 동네에서 버려지는 ‘아까운 것들’
저는 고치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간혹 고치는 것이 새것을 사는 것보다 비용이 더하거나 비슷할 때도 있지만, 저는 고쳐 쓰는 저의 물건들이 좋습니다.
제가 고쳐 쓰는 것에 마음을 두고, 고쳐 쓰는 연구모임을 시작한 데에는 제가 사는 곳의 특수성(?)도 한몫을 했습니다. 저는 도시 전체가 새것인 곳, 세종에 살고 있거든요. 물론 구도심도 있지만, 세종이라는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이웃, 새로운 건물, 새로운 도로 등등 옛것보다는 새것이 많은 동네입니다. 오래된 점포, 이런 건 없죠.
우리 동네는 바짓단을 줄이는데도 만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가전제품을 고치려고 해도 as센터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곳입니다. 또, 새로 입주하면서 가구나 가전을 쉬이 버리기도 해서 분리 배출하는 곳에 가면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나와 있기도 합니다. 정말 그냥 폐기물로 처리하기엔 아까운 것들도 많고, 고치면 쓸 수 있겠다 싶은 것들도 꽤 됩니다.
‘고치면 쓸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나와 있나’ 싶은 마음이 들곤 했지만, 새로운 집에 들어가는데 오래되고 낡은 물건 말고 새로운 물건을 들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고치기를 시도해 보고 싶어 이것저것 혼자서 고쳐 쓰고 있던 중이었는데요. 2023년에는 여성환경연대의 에코페미니즘 임팩트 지원사업으로 ‘수리 수선 연구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맘껏 고치고, 고친 것들이 잘 쓰는 모습도 자랑하고, 나눔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었기에 모임이 꾸려졌고, 주변 재주꾼 선생님들과 함께 고치고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리 수선 연구모임을 하며 발견한 것
뭔가를 뜯어보고,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도록 배우고 고쳐서 움직이는 것을 보거나 다시 활용할 수 있게되면 마냥 즐겁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쳐 가면서, 어? 고쳐진 것들이 그다지 사용되지 않기도 하고, 고치는 행위만 좋을 뿐이지 수리가 된 것들을 좋아하지는 않는 마음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죠.
기능을 찾기는 했지만 모습이 미워지기도 하고, 또 부품이 더는 생산되지 않아 기능을 찾기 위해 대체품으로 수리가 되는 것들을 보는 게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또 주워다 쉽게 고치긴 했지만, 필요가 없는 물건은 누가 가져가려 하지 않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버린 사람도 쉽게 수리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버린 것 같은 일종의 배신감? 새로운 도시에 새로운 물건만 쓰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뭔가 새것, 예쁜 것을 가지려 하고 기능이 살짝만 부족해져도 내다 버리는 마음…. 설거지 하면서 깨져라, 그래야 새 그릇을 사지…. 하는 마음일까요? 너무나 저렴하고 눈에 쏙 들어오는 제품들이 정말 많은 세상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냥 새로 사는 것이 나은 것일까요?
무엇이든 귀하게 대접받는 그런 세상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맨 처음 그 물건을 취할 때, 분명히 마음에 들고 필요가 있어서 취하게 되고 또 아끼겠다는 마음에서 선택했을 텐데요. 그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본인의 선택에 책임지는 것, 사람이나 일뿐 아니라 내가 선택한 소비재, 물건에도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 대한 책임과 존중,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스스로를 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만드는 기업도 멋진 기술과 기능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가전은 일부러 수명을 제한해두고 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아니겠지요?
저는 정말 좋아하는 디자인의 신발이나 옷은 한꺼번에 두 개씩 세 개씩 사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생겼습니다. 망가지면 고치기도 어렵고, 계속해서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지다 보니. 정말 내가 좋아하고 귀해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물건들은 여러 개를 사둬야 나의 욕구를 채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선택한 물건을 지속해서 수리하고 수선할 수 있는 방법이 보편화되어있다면, 굳이 여러 개를 구매하고자 하지 않을 텐데... 아쉬은 마음이 듭니다.
소비자들의 ‘수리권’을 보장하는 제도 필요해
요즘 프랑스는 옷을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2020년 유럽연합 의회에서 처음으로 소비자들의 수리권(Right to Repair)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전자제품 수리비 상여금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고, 옷을 수선할 때마다 6유로에서 25유로를 할인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웃도어 파타고니아 브랜드는 수선이 용이하도록 제품을 만들고, 고객이 파타고니아에서 구매한 모든 제품을 수리/수선해주고 있어요. 리바이스는 제품을 오래 입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buy better, wear longer”(잘 사서 오래 입자) 캠페인을 하기도 합니다.
의류나 가전에 수리를 위한 지원금액이 포함되고 지속해서 삭아 없어질 때까지 고칠 수 있도록 지원이 되고, 또 그런 문화가 정착이 된다면, 저같이 고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새로운 물건보다 기존의 것들을 고쳐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사실 개인의 욕구와 관계된 소비 방식과 지원 정책이라기보다, 지구에서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의 안위에도 필요한 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라는 것은 사회의 문제를 담아내기도 하고, 문화가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고쳐쓰는 문화가 우리 사회의 기후변화 문제를 조금이라도 다루게 되고, 또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선한 문화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치고자 하는 생각과 시도가 사회의 좋은 문화와 합쳐져서, 기후위기 시대 문화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만큼의 틈새를 만들어 낼지는 모르지만, 그 틈이 점점 넓어지고 빛의 세기가 커져서 좀 더 시원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7598?type=editn&cds=news_edit
첫댓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 날,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꼭 필요한 자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