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36) - 역답사(논산역/계룡역)
1. 논산역
충남 <논산역>은 보통의 중소도시역처럼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일상의 풍경만을 갖고 있다. 더 불편했던 것은 일상의 풍경 중에서 먹을 곳이 제대로 없다는 점이다. 이리저리 헤메다 겨우 문을 연 곳을 찾아 들어갔지만, 밀가루 반죽만 가득한 수제비로 겨우 점심을 때웠다. 그것도 반만 먹고 말이다.
역에서 시청까지 논산대로를 따라 걸었다. 전국적으로 뉴스의 중심은 모두 ‘폭염’에 관한 것이다. 그런 끔찍한 폭염의 중심 시간인 12시부터 거리를 걷는다. 더워서인지 휴가철이어서인지 거리는 한산하고 많은 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다. 약 1시간 조금 더 걸려 <논산시청>으로 이동했다. 요즘 점심시간에 거의 모든 공공시설은 문을 닫는다. 우체국도, 행정센터도, 사람들이 없어 논산의 관광지도도 얻지 못하고 돌아섰다. 아름답지도 않은 길을 무더위에 다시 반복하는 것이 끔찍해 돌아올 때는 버스로 이동했다.
기차 시간이 남아 역 앞에 있는 카페에서 딸기 스무디를 주문했는데 카페 주인이 착각하여 커피 스무디를 내주었다.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안 마신다’하고 약간 투덜거린 후 그냥 마시겠다고 했는데 미안하다며 딸기 스무디를 다시 내주었다. 그 바람에 두 잔의 칼로리 높은 스무디를 먹게 되었다. 나도 멋쩍어 딸기 스무디 가격의 반값을 지불했지만, 주인의 책임감있는 친절이 반가웠다. 두 잔의 스무디와 함께 사소하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논산역> 주변은 특별한 모습이 없는 기억나지 않은 공간이지만, 카페의 추억때문에 남을 장소가 될 것같다. 논산 지역 지도를 보니, 도심을 벗어나면 볼 곳이 많다. 23km에 달하는 <탐정호>의 수변 산책길이나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같이 알려진 관광지말고도 논산 지역에는 산성이 많다고 하는데, 다음 방문 때에는 산성 답사와 함께 탐정호 수변을 여유롭게 걸어도 좋을 듯 싶었다.
2. 계룡역
<계룡역>, 익숙하지만 선뜻 정리되지 않는 지역이다. ‘계룡산’은 조선 시대 때 도읍 후보지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신도안’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계룡’은 육군의 ‘계룡대’가 있다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고 독립된 장소의 개념보다는 대전에 부속되어 있는 장소라는 인상이 강했다. 길에 붙어있는 국회의원 홍보 포스터을 통해 ‘계룡, 금산, 논산’이 하나의 지역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충남의 하부 지역은 이번 기회에 실질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계룡역>의 첫인상은 무척 조용하고 한산한 인상이었다. 비록 역 앞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고 초등학교도 있지만, 뜨거운 태양의 열기때문인지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역에서 나오면 항상 그랬듯이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시청’ 방향으로 걸었다. 거리는 조용하다. 약 30분 정도 걷자, 예상하지 못한 숲속길이 나타났다.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나타난 오아시스와 같은 장소였다.
‘숲속길’은 작은 산 정상까지 이어졌다. 거리는 1km가 채 되지 않은 짧은 코스였다. 하지만 숲의 느낌과 정서는 풍성했다. 태양이 차단된 길을 따라 걷는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편안했다. 20분도 되지 않아 정상에 오른다. 정상이라 표현하기도 애매한 낮은 지형의 산이다. 산 위에 만들어진 팔각정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불어온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더없이 소중한 바람이었다. 숲속에는 갖가지 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매미 소리가 없다는 사실이 불연듯 떠오른다. 가장 익숙하고 흔했던 매미는 어디로 간 것일까? 너무도 시끄러운 소리로 많은 고통을 주는 곤충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자 무척이나 서운한 기분이다. 여름의 상징이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다만 이곳에만 없는 것일까? 아무튼 숲 속에서 들리지 않는 매미 소리는 여름에 가졌던 일상의 기억을 상실하게 한다.
역 앞으로 다시 귀환했을 때, 내가 찾고 있는 <역인문학> 연구소에 근접한 장소를 발견했다. 작은 규모이지만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원래는 카페로 운영되었던 곳이지만 현재는 문을 닫았고 창문에는 ‘임대문의’라는 글씨 써붙여 있었다. 적혀있는 번호로 문의하자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는 70만원이라고 한다. 크게 부담가는 가격은 아니고 연구실과 침실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당한 장소였다. 주차장은 바로 앞에 있는 역 주차장을 활용하면 될 것같다. 다만 교하에서 조금 멀고 <계룡역>에서 이동하는 기차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역인문학> 후보를 하나 발견했다. 대부분의 역에서는 찾기 어려운 장소이다.
첫댓글 - 꿈꾸는 '역인문학'은 상실된 옛 기억을 되살려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