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성지
연풍은 지리적으로 조령산과 백화산등 소백산맥의 주봉들이 높이 솟아 있는 험한 산골이다. 그런만큼 한양과 경기도에서 박해를 피해 충청도 경상도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나선 신자들에게는 피난의 첫 길목으로 일직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 새로 짓는 성당
* 형구돌
가운데 구멍을 뚫린곳에 올가미를 만들어 죄인의 머리에 올가미를 씌우고 반대편에서 밧줄을 잡아 당겨 머리를 돌에 부딪쳐 죽게 했다. 다른 곳에서는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곳에 매달았는데 연풍에서서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나 보다.
이 형구돌은 1976년 연풍성지를 개발할 때 두개 발굴되어 하나는 이곳에 또 하나는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로 옮겼다. 그 뒤에 또 하나가 발견되어 현재 연풍성지에는 두개의 형구돌이 있다. 공소 마당가에 하나, 그리고 치명터와 사제관 사이의 잔디밭에 놓여있다. 형구돌의 지름이 1미터, 둘레가 5미터, 가운데 구멍의 크기는 지름 20센치미터 뒤의 것은 6미터의 원추형이다.
* 황석두(루카)의 묘
* 순교한 다섯 성인
황석두(루카), 다블뤼(안 안토니오)주교, 오메트로(오 베드로)주교, 위앵(민 루카)신부, 장주기(요셉)
* 황석두(루카)의 묘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황석두(루카)를 양자인 황요한이 거두어 고향에 안장했다. 1968년 10월 6일 병인순교 복자 24위에 포함되어 시복되고 (로마 베드로 성당) 1980년 고향 괴산군 병방골 평해 황씨 문중 묘에서 유해를 확인 발굴하여 1982년 8월 25일 수안보 성당에 모셨던 유해를 연풍성지로 모시다. 1984년 5월 6일 순교 성인 103위에 포함되어 지시다.
*십자가
높이 10미터의 거대한 노천 십자가
* 황석두(루카)의 동상
괴산 병방골 부유한 양반집에서 출생하다. 스무살 때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던중 주막에서 천주교인을 만나 담론을 벌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천국의 과거시험에 급제 했음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고 작두로 목숨을 거두려한 부친과 가족을 자신의 신앙으로 설득할만큼 학식과 신앙이 깊었다. 페레올 주교는 그를 신부로 서품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특별 허가요청'을 하가까지 했다. 천국과거로 지상의 과거를 포기한 그의 뜻은 자진 순교함으로써 교화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