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고작 4살 밖에 되지 않은 <나눔과 기쁨>이야기입니다.
1. <나눔과기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IMF경제위기가 생겼을 때 우리는 동네의 문제는 동네사람들이 해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안의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이 정기적으로 모금해서 동네의 제일 어려운 차상위 계층을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일을 새마을운동에 권고해서 새마을운동이 민간사회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이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운동을 하는 NGO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2004년 7월 손봉호 교수님을 상임대표로 모시고 사회원로들과 함께 흥사단강당에서 <나눔과기쁨>창립대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면 이 운동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산시를 설득했고 안산시는 <나눔과기쁨>페스티벌과 이웃돕기축제로 3억원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나눔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할 활동가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시도는 엉뚱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서경석 목사와 JU의 주수도회장이 만나 식사하다가 주수도회장이 독거노인을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경석 목사는 “주회장이 월 30만원씩을 어려운 사람에게 주면 한 가정을 도울 수 있지만, 그 돈을 저를 주면 스므 가정을 도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에게 6개월간 매달 30만원씩 활동비를 주면서 동네에서 나눔네트워크를 만들게 하면 6개월 후에 이 30만원이 열 배, 스무 배로 증폭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회장이 매달 1억원씩 6개월을 돕기로 했습니다. 이 돈으로 우리는 작은 교회에 홍보하여 2005년 4월, 300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과 함께 <나눔과 기쁨 민간사회안전망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매달 30만원씩을 지원하다 3개월 후에 조사해보니 제대로 활동한 분은 1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정기적으로 지원하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는 점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배운 셈입니다. 그래서 활동비 지원방식을 실적에 따른 지원으로 바꾸었습니다.
2.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나누미 목사님들의 목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한 목사님들은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발마사지를 해주고, 반찬나누기를 하고, 병원을 같이 가고, 말동무가 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병자를 고치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니 목사님의 행동을 보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는 네분 목사님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30대 김인수 목사는 교인이 한명밖에 없는 경남고성의 시골교회로 청빙을 받아 앞길이 막막했는데 <나눔과 기쁨>을 만나 지역의 소외된 노인들을 섬기고, 어려운 아동을 위해 무료공부방을 운영하고, 매달 150만원을 모금해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그들의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소문나면서 무료공부방이 정부지원을 받고, 돌보던 어려운 조손가정의 집을 모금으로 지어주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김목사님은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게 되고 교인도 한명에서 35명으로 커졌습니다.
송파구의 류춘실목사님은 8년간 목회를 했지만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는데 <나눔과 기쁨>을 만나 매달 3백만원씩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하고, 노인들을 위한 문화교실, 의료봉사, 무료공부방, 발마사지샵,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반찬나누기, 쌀나누기, 김장담그기를 하면서, 20명의 교인이 70명이 되었습니다.
아산시의 박선호목사님은 교회건축으로 교회가 어려워져 교인이 20명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눔과 기쁨>을 만났습니다. 매달 이백만원을 모금하여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여 수천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노인을 돕기 위해 자신과 사모가 발마사지 교육을 받고 교회공간을 발마사지 샵으로 개조하여 노인들에게 발마사지를 하고 아픈 노인의 병치료에 앞장섰습니다. 이 활동들이 소문나면서 지금은 150명이 넘는 교회로 부흥하였습니다.
안산시의 김병천목사님도 몇 년동안 개척교회가 침체해 있던 중 <나눔과 기쁨>을 만났습니다.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를 돕는 공부방,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이주노동자를 위한 재활용나눔가게, 노인요양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알콜중독자 치유센터를 만들어 중독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요즈음도 매월 250만원을 모금해서 차상위 계층을 돕습니다. 교회도 20명에서 120명으로 성장하여 4층 건물 전체를 다 쓰면서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목사님들의 삶도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의 성공만 추구했지만 이제는 삶의 목표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하니까 엄청난 감동이 있게 되고, 교회도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작아도 목회가 아주 행복해졌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다른 목사도 <나눔과기쁨>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누미 목사님의 숫자가 천4백명이 되고, <나눔과기쁨>은 국내 최대의 민간사회안전망이 되어 4년간, 물품을 포함해서 백억원을 모아 연인원 백만명을 도왔습니다.
3. 개인보다 팀웍이 더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눔과기쁨>은 개인보다 지역의 나누미(활동가)들이 힘을 합해 지역협의회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야 함께 성장도 하고 함께 큰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눔과기쁨>은 지역협의회 활성화에 집중했습니다. 부산은 출범한지 2년이 되어도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부산을 다섯번이나 찾아가 설명회를 하면서 나누미가 180명이 되었고 우수한 활동가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역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지금은 서울, 인천, 경기, 강원, 대전, 충남, 대구, 부산, 울산, 광주, 전주의 지역협의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연합사업도 많아졌습니다. 연말에 쌀 나누기, 김장 담그기, 독거노인 가정에 난방필름 설치하기, 재활용 나눔장터가 매년 하는 연합행사들입니다.
또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본부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지금까지 34번에 걸쳐 신규나누미교육을 했고, 그 외에 지역연합세미나, 전국 나누미수련회, 전국체육대회, 후원의 밤 행사 등이 매년 개최되었습니다.
4. 프로그램을 다양화하자.
<나눔과 기쁨> 프로그램도 다양해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발마사지입니다. 인천의 나누미 전대박전도사가 어려운 이웃에게는 무료로 발마사지를 해주고, 일반인에게는 발마사지를 해주면서 나눔과기쁨의 후원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후원자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목사님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과 사모가 함께 발마사지 교육을 받고 발마사지를 통해 이웃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발마사지 자원봉사자가 늘어나고 이 운동이 급속도로 커졌습니다.
가평의 한 할머니는 무료로 발마사지 서비스를 받고 자원봉사자를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내 자식도 내 발을 만져주지 않는데 너무 고맙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발마사지 봉사로 노인들에게서 수많은 치료사례가 나타났습니다. <나눔과 기쁨>안에 수십 개의 발마사지 자원봉사센터가 생겼고 연인원 17만명의 노인들을 무료로 도왔습니다. 나중에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도 얻었습니다. 지금은 사회적일자리로서의 발마사지 사업은 중단되었지만 자원봉사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외계층의 자녀를 돕기 위한 공부방도 중요한 프로그램입니다. <나눔과기쁨>은 전국에 400개의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노인돌봄사업으로 전국에 76개의 노인요양보호사 파견센터를 세웠습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과 외국인노동자를 돕기 위해 전국에 다문화센터를 세우고 있습니다. <나눔과기쁨 다문화센터 협의회>에 가맹하여 이미 출범했거나 출범준비 중인 센터는 전국을 통털어 72개소입니다.
5. 자원봉사운동을 본격화하자.
또 <나눔과기쁨>은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를 계기로 자원봉사단을 조직하였고 연인원 7천명의 자원봉사자가 기름띠제거를 위한 자원봉사를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쓰지않는 물건을 모아 싸이클론 피해를 당한 미얀마에 보내자”는 자원봉사운동을 광명, 안산, 인천, 대전, 대구, 부산, 울산, 전주, 아산, 의정부 등 열 개 도시에서 전개하여 40피트 컨테이너 네 개를 미얀마로 보냈습니다.
6. <나눔과기쁨>을 국제화하자.
<나눔과기쁨>은 가장 열심히 모금활동을 한 나누미에게 외국방문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8년 9월, 우수하게 모금활동을 한 나누미 활동가 8명이 미얀마를 방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나눔과기쁨>은 국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눔과 기쁨>프로그램이 오히려 가난한 나라에서 더 절실하게 필요함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가난한 나라에 확산시켜 지역활동가들에게 실적에 따른 활동비를 지원하여 동네 안에서 적은 돈을 모아 동네 안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도록 할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은 미얀마를 성공적인 모델로 만들기 위해 가축은행, 지역병원, 고아원, 한국어학원을 설립하고 미얀마와 대안무역을 시작할 것입니다. 또 내년 2월에는 LA에서 히스패닉 불법체류자들을 대상으로 한 나눔과기쁨 활동이 시작합니다. 이미 북미주 나눔과기쁨이 창립되었습니다.
7. 이제는 지역이 본부를 돕자.
그동안 본부는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활동가들에게 재정지원을 했지만 활동가의 숫자가 급증하고 모금이 어려워지자 더 이상 지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부의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져 몇 달째 본부직원에게 봉급을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꾸로 지역모금의 5%를 본부의 행정비로 쓰기로 하고 지역의 나누미들이 본부를 위해 성금보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8년부터 거꾸로 지역이 본부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8. 경제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자.
경제위기로 모금이 줄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눔과기쁨>은 이 시기를 더 큰 도약의 시기로 정했습니다.
2009년 1년간 나누미활동가들을 천4백명에서 1만명으로 늘려 작은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획기적으로 돕도록 하려고 합니다. 반찬나눔 사업이 그 방법론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은 밥짓는 일은 쉽지만 반찬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눔과기쁨>은 매주 한번 일주일분 반찬도시락 열 개를 나누미에게 무료로 공급합니다. 그리고 큰 교회들과 이웃의 협력을 받아 매주일 반찬도시락을 만들게 됩니다. 지금 이 사역에 참여하겠다는 작은 교회들이 쇄도하면서 나누미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반찬을 나누어 주면 되므로 참여가 쉽기 때문입니다.
또 <나눔과기쁨>은 한기총, 재향군인회, 새마을 등 사회각계와 힘을 합쳐 범국민나눔운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나눔과기쁨>은 일자리창출에도 적극 나설 것입니다. 금년 11월 <나눔과기쁨>은 재활용, 문화나눔, 집수리를 위해 노동부에서 백50명의 사회적 일자리를 받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사회적 기업을 창립할 것입니다.
또 <나눔과기쁨>은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오블리쥬 운동을 위해 <나눔과기쁨>합창단을 만들기로 하고 최근에 발기모임을 마쳤습니다. 50대 이상의 의사, 변호사, 교수, 기업인, 전문가, 정치인으로 구성된 이 합창단은 소외계층을 찾아가 공연을 하고 모금운동을 하고 가난한 어린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드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할 것입니다.
또 우리도 유태인과 같은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경제위기 시기를 획기적인 기부문화의 확산시기로 설정하고 <기부문화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9. “목숨걸고 예수님처럼 살자”
“목숨걸고 예수님처럼 살자” 이것이 나누미 활동가들의 각오입니다. 그럴 때 나누미활동가의 삶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사회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땅을 “소외된 이웃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고 참여자가 되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