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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 M42 표류기(2010/9/2-6)
태풍 곤파스가 몰려 온다는 소식에 대난지도 주민들은 이를 대비하는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그 모습을 바다 한 가운데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에 대한 어떤 조치가 있겠지 하는 기대로 그냥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맞기고 나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풍년호, 만월호, 그랑 불루, 신안호 등 주변의 어선들은 방파제 안으로 들어가 각자 자리를 잡고 태풍 곤파스를 대비하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어느 누구도 나를 대피 시킬 생각은 없는듯 싶었다. 어쩌면 오뚜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나의 생명력에 대한 신뢰가 그들을 안심 시키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토록 내게 모두 무심한 것에 한편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더우기 이번에 몰려 오는 곤파스는 그 위력이나 진행방향으로 볼때 대난지도에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한 터에 유독 나의 주인인 유선장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내심 실망스럽기만 했다.
모든 태풍이 마찬 가지이듯 곤파스는 적도 인근의 고온 다습한 공기가 발단이 되어 북상을 하면서 그 세력을 키우고 이제 서해 바다로 진로를 잡고 제주도 남쪽 멀리서부터 올라 오고 있는 중이었다. 콘파스의 중심기압은 960파스칼 정도이고 중심 풍속은 이미 초속 35미터를 넘어 선 대형급 태풍이라 했다. 그러나 태풍에 대한 피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그 진로에 있다고 한다. 아무리 작은 태풍이라 해도 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적어도 시속 100km는 될 바람을 견뎌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콘파스는 이미 많은 에너지를 흡수해 대형급으로 성장했고 그 진로는 아직도 따뜻한 수온을 유지하고 있는 서해 바다의 수온 탓에 서해안을 따라 깁숙히 올라 온 후 한반도의 중부 지방을 관통해 원산 앞바다로 뻐져 나갈 예정이라 했다. 그의 진로로 보아 내가 있는 대난지도는 바로 그가 지날 길목에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이 소식을 알고 난지도 주민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터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난지도에 곤파쓰와 같은 태풍이 지나기는 30년 내에 처음이라 했다.
나는 Peterson 33이라고 하는 선령 24세의 크루져 요트로서 이름은 'Orion M42'이다. 이 이름은 나의 전 주인인 표선장이 지어 준 것으로 지금은 다시 주인이 바뀌어 자칭 풋내기 선장이라는 유선장을 모시며 나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Orion M42란 성운의 이름이라고 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Orion M42란 어린 왕자가 머물렀던 어떤 작은 별 정도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래서 Orion M42를 나의 주인인 유선장의 생각대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세상처럼 마치 하늘에 외롭게 떠있는 작은 별의 이름으로 그냥 어울린다 생각 했었다.
'Orion M42'란 'Orion성단'에 속하는 성운의 이름으로 Orion Nebula 혹은 Messier42, M42라고도 한다. Orion 성단은 1617년 갈릴레오 갈릴리에 의해 부등변 사각형 형태의 성단(Trapesium cluster)으로 발견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별 자리다. 그 성단의 한 쪽에 육안으로도 확인 될 수 있을 정도의 밝은 M42는 깨쓰와 먼지로 이루어진 성운이라고 한다.
약 150억년 전 우주 대폭발인 Big-bang 이후 우주에 흩어진 수 많은 별들처럼 M42는 우주를 떠 도는 어쩌면 우주의 미숙아인 성운이라는 별 무더기이다. 이들 먼지와 깨쓰들이 수 억년의 세월을 통해 서로의 중력으로 뭉처져 우리의 행성과 같은 별들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M42는 마치 한 생명체처럼 Orion 성단이라는 어머니 자궁 안에서 잉태의 순간을 위해 자라고 있는 그런 별들의 씨앗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별들의 씨앗인 M42가 나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나는 이 나라에 새롭게 펼쳐지는 요트 세상의 한 씨앗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Orion M42인 내가 요트 세상의 씨앗이라니, 아하, 그것이 진정 나의 자리였구나!
결국 나의 주인인 유선장은 그 날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곤파쓰라는 태풍이 염려되기도 해 내심 어떤 난지도 사람이라도 나를 그들의 배처럼 안전한 곳으로 옮기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어 보았지만 그것은 나의 속절 없는 바램 일 뿐 제 코가 석자인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누구도 손 대기에 부담스러운 성가스러운 대상이었을게다.
나 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의 주인님은 그 때 가평에 있었다고 한다. 그 전날 가평에 간 후 이따금 뉴스를 통해 곤파스의 동태를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안일한 생각에 "괜찮겠지" 하며 방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날도 오전 내내 가평에서 몇 몇 작업을 하며 이따금 곤파스의 소식을 접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러다 오후나 되어서야 곤파쓰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대난지도의 김 선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때는 이미 난지도의 어선들이 대피를 하느라 한참 바쁜 터여서 어떤 일을 김 선장에게 따로 부탁을 할 입장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 시간에 가평에서 난지도에 갈 수 있는 처지도 못 되었다 한다.
앵커 줄이 끊어 지지만 않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자위하고 김선장에게 이에 대한 확인을 부탁만 하고 말았다 한다. 나의 주인인 유선장은 그 날 이후 나의 운명을 하늘에 맞기듯 그냥 그렇게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저녁이 되면서 곤파스의 영향으로 난지도에도 점점 바람이 세어지고 있었다. 곤파스는 이미 제주도를 지나 목포 앞바다를 향해 올라 오고 있다 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곤파스는 계속 북상을 하며 호남지역을 강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며 파도는 나를 난지도의 포구를 향해 연실 밀어 내고 있었다. 휘돌아 치는 바람에 높은 파도가 치고 때리며 업치락 뒷치락 하듯 나를 마음 대로 농락 하고 있는 중 나를 메어 달고 있던 돌닻은 안간 힘을 쓰며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육중한 나의 체중을 못이기고 점점 섬쪽으로 끌려 가고 있었다. 바닷물은 간조 때가 지나 이제 서서히 들물이 들고 있었다.
새벽 3시 반을 지나면서 드디어 곤파스는 난지도에 도착 해 엄청난 폭풍을 동반하고 난지도를 도륙을 내듯 할키고 찢어 대기 시작했다.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동강나 나딩구러지기도 하고 건물의 잔해인 판낼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김 선장의 평상 마루를 덥고 있던 판낼 지붕도 하늘로 날라 이층 건물 넘어 양식장을 향해 멀리 나동그러졌다.
결국 나를 지탱하던 앵커 줄도 막중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바다 밑 어디에선가 툭 소리를 내며 끊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그동안 나를 버티고 있던 큰 힘이 일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고삐 풀린 소처럼 곤파스의 폭풍 속에 무지랭이가 되어 바다를 떠 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냥 파도와 바람이 밀어대는 대로 내 몸을 맞기고 난지도 섬의 포구를 향해 밀려 들어 갔다. 모두 잘 알겠지만 요트라는 배인 나는 그냥 바다에 떠 몸을 맞긴 체 안정을 유지 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몫 전부다. 이것은 나의 거취는 늘 주인에게 맞길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입장을 항변하는 것으로 나의 입장을 이해하여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밀물이 포구안으로 서서히 밀려 들면서 나도 그에 밀려 서서히 포구 안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포구 안에는 어제 피항 차 몰려 온 어선들이 마치 고삐에 메이듯이 즐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곳은 방파재 덕에 비교적 파도가 적었지만 그들 어선도 강풍에 시달리며 살아 남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며 버티어야 했다.
나는 운이 나쁘게도 암초가 있는 섬가로 밀려 들었다. 그곳은 바위가 이곳 저곳에 널려 있었다. 자칫 파도에 밀려 배의 몸통이 파손되면 침수되어 살아 남기 힘든 형국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나는 안간 힘을 써 나의 코라 할 수 있는 선수 끝으로 바위를 버티며 몸통을 보호하고자 했다. 침수를 면해 살아 남기 위해선 비록 코가 다 부서지더라도 몸통을 보호 해야 만 했기에 나는 고통을 참아 내고 있었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유선장에 대해 점점 야속한 생각이 더 해갔다. 나의 주인은 어제 이곳에 왔어야 했다. 그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생각해서 전대 미문의 곤파스라는 태풍을 대비해 이곳 섬사람들과 상의해 이에 대처 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여섯시가 되면서 곤피스가 난지도를 벗어나 바람이 줄어 들면서 그동안 불었던 동남풍이 남서풍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들물로 물이 많이 불어 갯벌에 킬을 박고 꼼짝 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바닷물에 둥둥 띄어 오르고 있었다. 남서풍을 받으며 나는 바위로부터 멀어지면서 드디어 코를 박던 아픔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삐 풀린 내가 이대로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다면 이 또한 큰일이었다. 부둣가에는 밤 잠을 설친 마을 사람들이 그동안 바위에 코를 박고 버티고 있는 나를 지켜 보다 다시 바람에 밀려 바다 한 가운데로 표류하고 있는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강한 폭풍 속에 나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속절 없이 떠 내려가는 나를 바라 보며 그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거릴 뿐이었다. 나중에 난지인에게 들은 얘기지만 "유 선장이 왜 요트를 이곳에 끌고 와서 섬 사람들의 애간장을 끓이게 하느냐,'며 섬 사람들은 그를 원망했다고 한다.
나는 남서풍을 받으며 나를 묶고 있던 닻줄을 송두리째 끌어 안고 당진 발전소 앞 평팩 바다를 향해 쏜살 같이 밀려 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육도의 줄기인 한산여가 그의 거친 이빨을 드러내며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만일에 내가 그곳에 닿아 암초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이 바람 이 폭풍에 살아 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내 스스로 피해 갈 능력도 나는 갖고 있지를 않았다. 나는 그냥 대자연인 바다 한 가운데 Orion M42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인연에 따라 흘러가는 운명적 존재 일 뿐이었다.
운명,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운명, 그들이 존재 했을 그 시간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혹자는 사주팔자라고도 한다. 요트인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운명이 있을게다. 그동안 만난 나의 주인들과의 인연, 지금 이렇게 바람을 따라 속절 없이 바다를 헤매이는 나의 모습도 모두 나의 운명 속에 있으며 앞으로 닥칠 나의 행로 역시 이미 정해진 운명 안에 있을게다.
나의 이름이 Orion M42라는 별들의 씨앗을 뜻하는 것이라면, 내가 요트 세상에 하나의 씨앗이라면,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나의 이 길은 저승의 길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갖어 보았다.
아직도 바람은 남서풍으로 강하게 불며 들물을 따라 나를 한산 여의 서편으로 유도하며 넓은 평택 바다를 향해 힘차게 몰아 가고 있었다. 좌측으로 입파도가 보이며 날 오라 손짓을 하지만, 나는 그냥 바람따라 들물 따라 평택항 쪽을 향했다. 시간은 이미 만조 시간인 9시에 이르고 있었다. 들물의 속도가 줄어들며 태풍도 이미 한반도를 빠져 나가 바다는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이제는 바람보다는 길게 늘어진 고삐와도 같은 앵커줄 덕에 조류의 영향을 받아 밀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아직도 끈덕지게 내게 매달려 따라 다니는 성가스러운 부이와 앵커 줄 그리고 그에 달라 붙어 한 식구가 되어 버린 따개비와 다시마 줄기 등 온갓 떨랭이들은 한 짐이 훨씬 넘어 보였다.
그 시점에 유선장은 새벽 여섯시나 되어서 난지도의 김선장으로부터 나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여섯시가 되면서 전화 벨 소리에 불현듯 잠을 깬 유선장은 아차! 하는 불안스런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난지도의 김선장이었다. "새벽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부터 그는 시작했다. 오리온이 폭풍에 밀리어 난지도 포구 쪽으로 밀려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 손 쓸 바가 없어 지켜 볼 뿐이라며 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소식을 접한 유선장은 낙담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불가 항력적 상황에서 운명에 맞길 수 밖에 없을 것이라 하며 오히려 김선장을 안심 시킬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나의 입장은 이러했다. 난지도의 부둣가에서 동남쪽 방향의 약 이백미터 떨어진 곳에 나는 지난해 김선장이 만들어 준 돌닻에 무어링(mooring) 해 논 상태였다. 돌닻은 대략 600kg 정도는 될 비교적 큰 바위를 밧줄로 묶어 앵커를 대용한 것이었다. 나는 그 돌닻에 메어 달린 체 태풍을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앵커줄이 팽팽하게 힘을 받으며 돌닻이 제법 힘을 쓰는 듯 했다. 그러나 거듭된 파도에 나의 육중한 몸이 밀리면서 돌닻은 갯벌에 차츰 섬 쪽으로 끌려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체중은 당시 이미 6톤이 넘는 터였으니 파도에 실린 나의 힘을 돌 닻이 견뎌 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 돌닻은 그렇게 끌리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돌을 묶은 밧줄이 갯벌에 쓸려 한쪽으로 몰리며 차쯤 바위에서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결국 돌닻의 바위가 묶은 줄을 벗어나 돌닻은 앵커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앵커에 묶여 있던 나는 바위가 떨어져 나가면서 나는 한편 자유로운 신세가 되었다. 마치 고삐 풀린 소처럼 말이다.
그러나 외양간의 고삐에 묶여 있던 소가 묶여 있던 고삐가 풀리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그는 우선은 자유를 느끼게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감에 빠져 들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결국은 돌아 와 외양간의 고삐에 다시 묶여 주인에게 의지하고자 한다. 당시의 나의 심정이 바로 그러했다.
들물이 멈추고 바람도 잦아 들면서 나는 넓은 평택 바다의 한가운데 머물며 이제 한가로운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점차 구름이 겆히면서 곳곳에 파란 하늘이 맑게 드러났다. 불과 몇 시간 전 만해도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을 듯 거센 바람과 파도가 광란을 부리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주변이 조용했다.
밀물이 멎으며 바다는 정조 상태에 이르고 넘실 거리는 너울이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 없다. 이미 당진 발전소는 한참을 지나 멀리 보이고 동쪽 편엔 서해 대교가 가물 거리며 눈에 들어왔다. 들물과 거센 바람에 밀려 평택만을 따라 그 사이 많이도 들어온 모양이다. 평택항으로 차츰 대형 화물선이 드나들며 내게 뱃길을 피하라는 듯 부~웅하며 뱃고동을 울렸다.
불현듯 불안한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혹 암초를 만나면 어찌할까, 어장으로 밀려가 그물에라도 걸리면 어찌하나. 주인을 잃은 내 입장에서 내 스스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암초에라도 걸리면 나의 운명은 끝장이 날터이니 말이다. 오직 운명에 맞기어 놀 수 밖에 없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생각되며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하나 둘 머리에 떠 오른다.
육년 전 태풍 매미로 인해 선미 부분이 깨져 수영만에서 침수 되었던 일, 그런 나를 인수 해서 불철 주야 수리하며 결국 나를 살려 내고 만 전 주인인 표 선장에 대한 추억, 지난해 대난지도 한 포구의 암초에 걸려 유 선장과 그의 일행 모두를 겁에 질려 놀라게 했던 일들이 추억처럼 떠 오른다.
내가 바람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의 주인님은 난지도를 향해 차를 몰고 경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길가엔 이미 태풍이 휘몰아치고 지나면서 가로수를 찓고 잘라내 길가에 내동댕이를 친 후였다. 중장비와 인부들이 이를 치우며 출근길 차량 통행을 위해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밀려드는 차량을 감당하지 못해 경춘 가도는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유선장의 마음은 다급했다. 지금 바로 난지도에 도착한들 나를 위한 어떤 대안도 없었지만 그래도 현지 상황이라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조급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서울을 빠져 나가는 데 이미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왕에 늦은 차에 일산에 있는 집에 들러 난지도에 몇 일 머무를 예산으로 필요한 준비를 해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는 차를 일산으로 향했다. 일산을 떠나 당진의 난지도를 향해 다시 출발한 시간은 이미 11시가 지나서였다. 도비도에서 2시에 있을 난지도 도선 배를 예상하고 그는 외부 순환도로를 따라 그의 또한 애마이기도 한 렉스턴을 타고 부지런히 달렸다.
운전을 하면서 그는 표류하고 있는 나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김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선장은 배가 이미 당진 화력 발전소 방향으로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하며 해양경찰대에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 말에 우선 늘 내개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대산 파출소의 지소장이 떠오르기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 한 후 도움을 청했다. 그는 122로 전화를 해 긴급 해양 구조 요청을 또한 직접 해 놓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도비도에 도착하니 그곳도 태풍 피해로 많은 어선이 침몰되어 한창 크레인으로 인양 중이었다. 결국 난지도를 향한 도선이 3시에 예정 되어 있었지만 난파된 어선 때문에 접근을 할 수 없어 항해 일정이 취소 되었다. 다섯시 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부둣가 한 편에 작은 어선에 올라 앉은 한 젊은이가 유선장을 알아보며 표류된 요트가 어찌되었는냐 그에게 물었다. 이미 이곳에도 내가 표류된 사실이 소문으로 돌고 있었던 것이다. 유 선장은 소식을 듣고 나를 찾고자 지금 막 오는 길이라 말하며 혹 시간이 있으면 함께 찾아 봐 줄 수 있겠느냐고 그에게 청했다. 그는 측은지심에 승낙을 하며 배에 오르라 했다.
기실 이곳 도비도에서도 Orion M42인 나는 잘 알려져 있었고 또한 나의 주인인 유선장도 이곳에 많은 사람들과 Orion 선장으로 면식이 있는 터여서 솔비도 선장인 최선장도 유선장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솔비도호인 선외기 어선은 새배이기도 한 250마력의 쾌속정이었다. 유선장은 들은 소식대로 당진 화력과 육도 사이를 향해 나아가 나를 찾아 보자고 최선장에게 제의 했다. 최선장은 당진 앞 바다를 모두 꽤 뚫다 시피 이곳 바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바닷물은 파란 빛을 띄우고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멀리 한산여가 잇발을 드러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선장은 Orion인 내가 분명 이리로 표류하며 지났을 것이라 얘기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는 보이지 않고 어떤 흔적도 있을리 없었다. 그 시간에 나는 이미 썰물에 밀려 평택 앞바다를 따라 입파도를 지나 풍도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최선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형이 벌에 쏘여 위급하므로 빨리 돌아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낙담을 하며 돌아가는 유선장은 나를 잃고 말았다는 서글픔에 눈시울을 붉혔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어쩌면 그 시점에 최선장이 시간이 되어 입파도를 들를 수 있었다면 그들은 나를 발견 했을 뻔 했다. 그것은 인연의 교차점이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수 많은 인연들, 그들 각자의 인연, 인연이란 사주 팔자가 그렇듯이 시간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 해도 인연따라 떠 도는 우리의 만남이란 바로 시간이 이루어내는 교차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평택 앞바다라는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시간 차에 따른 교차점이 어긋 나면서 나와 나의 주인의 인연은 어긋나고 말았다.
나의 주인은 다시 왜목이라는 마을을 들러 해경 파출소와 그곳 어부들을 만나 혹시 표류된 요트를 본 일이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본일이 없다는 말에 낙망스런 마음으로 다시 도비도로 돌아 와 다섯시 배를 타고 난지도에 들어왔다. 그리곤 마을 사람들을 만나 나에 대한 태풍 당시의 경황을 물었다. 그런 중 하늘을 떠도는 헬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해경 소속의 헬기로서 Orion을 수색 중인데 어디로 표류했는지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몇 차례 헬기와 통화를 했지만 결국 그들은 그 때까지 표류하고 있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찾는 일에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그것은 내가 주변에 널려 있는 암초에 부딛쳐 이미 수장 되었을 것이라는 그들의 비관적 생각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배도 그 날과 같은 태풍 중에 암초 밭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Orion인 내가 한산 여를 넘어 평택항 쪽으로 흘러 들어 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다시 썰물을 따라 Orion이 대부도나 영흥도로 흘러 갈 가능성이 있다는 한편 기대섞인 말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유선장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기운이 거나해 지면서 그의 마음은 더욱 울적해지고 그의 머리엔 지난 날 Orion의 파란 만장했던 과거사가 떠 올랐다.
내가 일본에서 중고 배로 들여와 부산의 수영만 계류장에 머무를 때였다. 그 때의 나의 이름은 '초록 물고기'였었다. 그러다 육년 전 태풍 매미가 수영만에 들어 치면서 나는 파도에 휩쓸려 선미 부분이 파손되어 바다에 침수 된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양된 후 나는 지금의 전 주인인 표선장에게 양도 되었다. 그 상태의 나의 몰골이란 이루 말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선실 안은 온통 물에 젖어 모든 것들이 못쓰게 되었고 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 마저 포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표선장은 그런 나를 오랜 기간 동안 복원하느라 무진 고생을 하며 결국엔 오늘의 나의 모습으로 되살려 놓았다.
표선장과의 나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어 근 오년에 걸쳐 정이 들었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홀로 제주 해협을 지나 부산을 오가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가족을 태우고 바다에 대한 꿈을 키우며 나와의 정을 돈독히 쌓아 나갔다. 나와 표선장과의 인연들, 또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나와 자신과의 사연이 머리에 떠 오르면서 유선장의 마음은 점점 서글퍼졌다. 선주인 자신의 불찰로 배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나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표선장에 대한 미안함이 그의 마음을 짖누르듯 아프게 하였다.
그는 거나한 체 홀로 난지 해수욕장을 들렀다. 서쪽 하늘엔 붉게 물든 석양만이 남아 있을 뿐 주변은 이미 어둠이 짖게 깔리고 있었다. 술 기운 탓인지 그의 가슴에 슬픔이 북받치며 빗줄기 같은 눈물이 얼굴을 따라 길게 흘러 내렸다.
평택 앞바다를 지나 경기만에 해당하는 바다 한 가운데를 떠 돌며 나는 썰물이 이끄는대로 유유히 흘러 내렸다. 이따금 통발과 어망이 보이곤 했지만 운명이란 인연은 나를 그곳에 걸리지 않도록 안전하게 유도 해 나갔다. 입파도를 지나 풍도를 향할 즈음 바다는 밀물로 바뀌어 나를 영흥도 쪽으로 밀어 내고 있었다. 서쪽 하늘엔 차츰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바람은 잦아들며 파도가 나를 육지를 향해 몰고 나갔다.
이제 난지도를 떠난지 12시간은 족히 지난듯 싶었다. 하늘엔 하나 둘 별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곤파쓰가 물러 나면서 구름도 함께 쓸어 낸 모양인지 밤하늘은 뭉개 구름 사이로 뻥 뚫린 창공을 들어내고 있었다. 점점 별들이 늘어 나면서 밤하늘엔 별들의 향연이 시작 되었다. 오리온 별자리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 오고 그 아래 동쪽 하늘에선 언제 떠 올랐는지 초생달이 동양 미인의 얼굴처럼 구름 사이로 매혹적인 얼굴을 살짝 드러내고 있었다.
밀물을 따라 어떤 섬에 이르면서 발라스트 킬이 갯벌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수심이 낮았다. 육지 까지는 아직도 500미터는 될 거리임에 불구하고 벌써 바닥이 닿는 것을 보면 갯벌이 길게 이어진 모양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암초가 육지에서부터 길게 이어져 보였다. 만일 운이 나빠 내가 암초밭으로 밀려들기라도 하면 밀물과 파도에 밀려 암초에 좌충 우돌하며 나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 하겠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나의 운명이라는 인연은 나를 암초로부터 멀리 인도하며 갯벌에 인연의 흔적을 길게 남기며 차츰 차츰 육지를 향해 몰고 나갔다. 파도에 실려 털썩 털썩 토끼 걸음을 하며 한발 한발 갯벌을 따라 기어 나아갔다. 이제 육지와는 불과 100미터를 남겨두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가르키고 바다는 다시 썰물로 돌아 선다. 나는 이젠 더 이상 썰물을 따라 돌아 나갈 수는 없었다. 들어 올 때는 파도에 실려 토끼 걸음으로 이곳까지 올라 왔지만, 바라스트킬이 갯벌에 닿은 상태에서 썰물로 돌아 나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이 줄어 들면서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썰물에 흔들 거리며 발라스트 킬을 갯벌에 내리 박으며 그냥 그 자리에 고정 되어 가고 있었다. 만일 그 곳이 갯벌이 아니고 자갈밭이나 아니면 단단한 돌 바닥이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 쓸어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 그곳은 갯벌이어서 나는 갯벌에 킬을 내리 박으며 마치 뿌리를 내려 나를 고정 하듯 반듯이 그곳에 머물 수 있었다.
갯벌에 킬을 박아선 요령을 말하자면 이렇다. 썰물이 되면서 킬이 갯벌에 닿아 더 이상 밀려 나가지 않아 나는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비록 이곳 갯벌은 손으로 파기에도 단단한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파도에 배 전체가 흔들 거리며 물에 젖은 갯벌을 킬이 흔들며 파 들어가게 된다. 결국 썰물에 수위가 낮아 지면서 킬은 차츰 차츰 모래를 파 들아가 비록 1미터 50쎈티미터의 깊이인 킬이지만 갯벌에 수월하게 박혀 고정되게 마련이다.
아침 여섯시가 되어 간조에 이르면서 주변은 넓은 갯벌을 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머문 곳은 갯벌을 따라 300미터는 족히 바다로 나아가야 물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갯벌 깊숙한 곳이었다.
김선장 댁에서 민박을 한 유선장은 다음날 아침 일찌기 일어났다. 그는 아침 배를 타고 육지로 나아가 다시 해변을 따라 나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은 터였다. 그는 섬 사람들의 생각이 옳을성 싶어 그들의 예측 대로 Orion을 찾아 나설 방향을 왜목과 장고항을 거쳐 서해대교 그리고 화성을 지나 대부도와 영흥도까지 잡았다.
유선장은 해변을 따라 어부들과 해양 경찰대 파출소를 들러 표류했을 Orion의 출현을 물었다. 혹시 어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를까 싶어 이를 찾기 위해 서해 대교의 행담도 휴계소에 들러 망원경도 구입했다. 그리고 다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평택항을 향했다. 평택항에서 남양만 방향으로 해변을 따라 Orion을 찾을 요량이었다.
바다에 표류하는 어떤 것도 결국은 조류와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들어 온다. 밀물과 썰물 때 치는 파도는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고 육지로부터 흐르는 경사진 갯벌이나 백사장이 또한 밀물과 썰물의 파도와 어울려 표류하는 모든 것을 결국에는 해안에 이르게 한다. 이것도 일종의 정화작용이라 할수 있겠다. 오물과 같은 모든 잡것을 육지로 밀어내 바다의 청결을 유지하는 대자연의 섭리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가 버린 모든 것이 응보처럼 우리에게 되돌아 온 모습을 해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경악스러운 온갖 쓰레기들, 비닐, 스치로폴, 펫트병, 밧줄, 깡통, 옷가지들, 나무 토막 등등....
마찬가지로 Orion도 결국은 표류를 마치고 해안에 이르게 마련이다. 이미 실종된지 만 하루가 지나 Orion도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듯 싶었다. 혹 어장으로 표류 해 어망에 걸려 있을지도 모르고, 갯벌로 들어 와 갯벌에 누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우선은 평택항의 파출소에 들러 실종 신고 겸 목격을 확인하기 위해 유선장은 평택항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때는 오전 11시 30분 정도 였다. 그떼 전화가 걸려 왔다. 한 남자가 해양 경찰대 영흥 파출소라며 Orion M42의 주인이냐고 물었다. 영흥 발전소 옆 갯벌에서 Orion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머문 곳은 영흥 발전소 옆에 있는 수산연구소 사택 앞 갯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묻고 물어 결국은 나를 찾아 오고야 말 주인을 속절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바닷물은 썰물을 따라 모두 빠져 나가고 내가 서 있는 주변은 갯벌이 온통 들어나 육지에서 직접 걸어 들어 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눈 앞의 사택에 사는 사람들인지 몇몇이 내게 다가와 신기한 듯 주변을 기웃거리며 수근 거린다. 그도 그럴것이 이렇게 썰물이면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가 배가 다닐 수 없을 광활한 갯벌에 이곳에선 보기 드믄 요트가 들어와 인적 없이 서 있으니 신기 할 수 밖에 없었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당시의 나의 몰골을 보자. 주인없는 배 안은 인적이 없고 길게 늘어진 굵은 동아줄 같은 닻줄엔 황색빛 스치로폴 덩어리의 커다란 부이가 매어 달려 있고, 갯벌에 이리 저리 늘어진 닻줄 저 끝엔 바위가 빠져나가 뭉태기를 이룬 동아줄 더미가 달려 있었다. 영낙 없는 집 떠난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라고나 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내 스스로도 창피한 마음이 들어 변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내몫이 못되는, 그러기에 나를 이 처지로 만든 장본인인 주인님이 더욱 야속하기만 했다.
그럴 즈음에 해안가를 넘어 갯벌을 따라 두 사람이 내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의 주인인 유선장과 평소에 낯이 익은 왕년의 'Mistic X'의 선주인 박선장이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 서운했던 생각에 반가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기엔 내키지 않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모른척하고 다가오는 주인님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주인님의 얼굴은 반가운 마음에 얼굴이 상기된 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박 선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주변을 살펴 보았다. 예상치 못했던 이곳에 이렇듯 안정된 자세로 갯벌에 반듯이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에게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대난지도에서 백리는 될 먼 거리를 홀로 표류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렇게 서 있는 나, 운명이라는 그 길을 따라 인연의 끈을 거듭 잇고자 하는 나의 숙명적 모습을 하긴 그가 어찌 이해 할 수 있을까.
이곳의 갯벌의 특징은 미세한 모래 갯벌이어서 물이 빠지고 나면 발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표면이 견고했다. 그런 갯벌이 넓고 펀펀하게 바다 저 멀리까지 펼쳐 있었다. 이제 바다를 통해 탄도항이던 아니면 대난지도이던 다시 돌아 가기 위해선 물이 가득 들어 올 만조의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만조는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의 주인은 야간 항해를 위한 경험도 없는 터에 자정이 지난 한 밤 중에 이곳을 빠져 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이곳에서 배에서 나와 함께 하룻밤 지내고 다시 내일 정오가 지나 있을 만조의 시간을 통해 이곳을 빠져 나갈 생각이었다. 그들은 이곳 갯벌에 앵커를 설치 한 후 박선장은 돌아 가고 유선장만이 남아 야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난지도에 머무를 때면 유선장은 늘 배에서 밤을 보내며 나와 함께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오늘 그가 Orion인 나와 함께 밤을 지내고자 하는 생각은 실종되었던 나를 되찾은 기쁨과 그의 관리 부실에 따라 내가 격은 고통에 대한 죄스러움에 사죄하고자 하는 그의 각별한 배려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별과 달 그리고 나와 함께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고자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에 비한 나의 마음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에 비하면 그의 잘못을 그렇게 쉽게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나의 주인으로서 그의 몫을 다 하지 못했다.
한 배의 선장이 선장으로서 갖추어야 기본적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배에서 일어 날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고, 또한 그 책임 질 일에 대한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일이다. 그런데 당시의 나의 주인은 겨우 선장 경력 이년이 되지 않는 풋내기인 터에 이번 사건에 있어서 태풍이라는 천재지변을 대비함에 있어서 너무나 안일했다. 확인되지 않은 것에 요행수를 기대 했고, 안일함에 빠져 보다 나은 안전책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외면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잘못을 내가 한 잔의 술을 마시듯 쉽게 용납을 한다면, 그것은 공평치 못한 일 일 뿐만 아니라 차후의 안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열시가 넘으면서 밀물은 뱃전에 까지 이르렀다. 파도가 높은 탓인지 밀물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느껴졌다. 그런 사이 유선장은 밤을 지새기 위해 밖에서 사온 백세주 한 병을 꺼내 들고 홀짝 홀짝 마시며 밤바다를 즐기기 위한 준비에 빠져 있었다. 하늘은 짖게 낀 구름으로 검게 물들고 파도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연실 해안으로 몰려 들어 가고 있었다. 바닷물의 수위가 점점 오르면서 Orion은 서서히 물에 떠오르며 파도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다. 킬이 파도의 부력으로 갯벌에서 빠져 나와 배가 위로 솟다가는 이내 다시 킬이 갯벌에 부디치며 요동을 치기 시작 했다. 때로는 갯벌에 킬이 얹혀 배가 심하게 기울기도 하고 연실 전후 좌우로 흔들리며 점점 그 강도를 더 해 갔다. 유선장은 메인 쉬트를 붙잡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멀미를 이기기 위해 심호흡도 하면서 견뎌 내고 있었지만 멀미는 여간해서 가시지를 않았다. 유선장은 결국 멀미에 구토를 참을 수 없어 그나마 먹은 것 모두 토해 냈다.
이미 시간은 새벽 두시를 가르치고 만조가 지나면서 바다는 썰물로 바뀌어 갔다. 파도가 차즘 줄어 들면서 배의 요동이 줄어 들었다. 유선장은 잠을 청하기 위해 선실의 긴 쏘파에 누웠다, 한결 멀미가 덜해졌다. 배는 여전히 흔들거리며 선미 쪽에서 퉁탕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러더가 갯벌에 닿는 소리였다. 파도가 선수를 치면 러더가 개벌에 박히며 배를 치고 다시 빠지면서 또한 배를 치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잠을 자기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저러다 러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또한 큰 낭패를 보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유선장은 다시 일어나 러더 쪽으로 기어가 러더의 위부분을 해채한 후 러더 축의 고리에 밧줄을 메어 이를 묶어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쏘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물이 빠지면서 갯벌이 드러나고 Orion은 다시 킬을 갯벌에 깊숙히 내리 박으며 안정을 찾아 갔다. 유선장은 그제서야 깊은 잠에 들며 나로 인해 시달렸던 그의 늙어가는 육체를 쉬어 가고 있었다.
아침 8시가 지나서야 유선장은 잠에서 깨어나 눈부신 햇살을 피하며 선실 구멍에서 밖으로 나왔다. Orion에 대한 죄값을 사죄도 하고 그와 함께 한 밤의 낭만을 즐기고자 기대했던 꿈은 산산히 깨어지고 오히려 호댄 그의 앙갚음에 곤혹을 치르고 난 유선장은 어젯 밤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황갈 빛 갯벌이 해안에서 저 멀리 바다까지 이어지고 일찍부터 한가로이 갯벌을 따라 조개를 줍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내겐 악몽 같았던 지난 밤의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아침날의 평화로운 정경 탓인지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 일은 그냥 꿈속에서나 있었을것 같은 하찮은 작은 사건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떠 오를 뿐이었다.
세상에 벌어지는 숫한 사건들이 다 그렇게 속절 없이 기억 속에 멀어져 간다. 월남전에서, 킬링 필드에서 혹은 아프리카 루안다의 어느곳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사람들의 일들도 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인간의 기억이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만을 우선 기억한다. 불필요한 것은 적당히 얼버무려 그냥 유아 무아하게 소진 시키고 만다.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자신의 한계에 대한 본능적 인식에 기인한 한편 섭리적인 모습이겠다. 기실 우리가 듣고 본 모든 것을 우리가 늘 기억한다면 우리의 뇌는 심한 혼란에 빠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므로 망각이란 방법으로 자신을 정리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심각성에 대한 각자의 인식이다. 우리의 두뇌는 자신의 생존에 관한 일들처럼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는 탁월할 정도로 기억을 잘한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일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루안다의 양민 대량 학살 사건은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 타자에 대한 한 사건으로 잠시 경악 스러울 뿐 결국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만다. 이러한 인간적 심리를 잘 알고 이용할줄 아는 지극히 영악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정치인들이 아닌가 싶다.
낮에 다시 든 들물을 이용해 갯벌에서 빠져 나오려는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유선장은 만조 시 수위가 턱 없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요행 심리에 해경 보트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직도 바다에 대한, 아니 자연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탓임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자연에 대한 신뢰란 곧 섭리에 순응하는 마음 가짐 일 터인데 역시 풋내기 선장의 설익은 면목을 그날 함께 한 박선장에게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 되었다.
6톤이 넘는 Orion의 무게와 거침 없는 바다 그리고 파도의 힘에 맞선다는 것은 상식 외의 일임을 그제서야 깨닫고 유선장은 박선장의 의견에 동의하며 수위가 충분 할, 내일이나 모래에 있을 그 날까지 기다린 후 갯벌에서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앵커를 단단하게 고정 시킨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유선장은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식구가 함께 있는 집은 휴식을 주기에 충분한 무엇이 있었다.
조석표를 보니 월요일 새벽 2시 53분에 있을 만조 수위가 824로 예정되어 있었다. 첫날의 690에 비하면 134가 높은 수위이고, 이는 그날 수심이 80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수심이 214에 이른다는 얘기가 된다.
박선장과 상의한 끝에 월요일 새벽 시간에 배를 빼내기로 하고 유선장은 미리 배에 가서 물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몇일 전 멀미로 고생했던 기억이 다시 떠 오르며 이에 대한 대비를 생각했다. 그에 대한 대비란 오직 기운을 확보하는 일이란 생각이었다. 만조의 시각이 새벽이니 저녁을 충분히 먹어두어 기운을 확보하면 비록 만조시에 구토를 한다 해도 야간 항해에 염려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유선장은 배에 오르기 전 충분한 식사를 마치고 저녁 8시나 되어서 배에 올랐다. 바다는 한참 간조 시간이어서 갯벌만이 넓게 펼처져 검은 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고 주변은 인적이 없는 갯가에 홀로 생뚱맞게 올라 선 Orion의 모습은 마치 우주선과도 같았다. 유선장은 우주선에 외계 여행을 위해 탑승하듯 살며시 올라 앉아 지난밤 마시다 남은 백세주를 입에 물었다. 멀미로 다시 한번 산수갑산을 간다한들 우선은 거나한 기분에 도취되고 싶었다.
석양이 검붉게 물들던 날 배를 잃은 슬픔에 난지도 해수욕장에서 길게 눈물을 흘리던 일, Orion을 찾아 해안을 따라 정처 없이 헤매이던 일, 지난 밤 나의 투정에 멀미로 혼줄이 나던 일, 불과 모두 엇그제 일어난 일들이지만 주인님의 머리 속엔 벌써 오랜 추억처럼 아스라히 떠 올랐다.
9시가 넘어 해안가로부터 말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검게 다가왔다. 한 사람은 박 선장일 것이고, 그럼 또 다른 사람은 누군가. 그는 블루라군의 Skeeper로 배를 타던 JG씨였다.
처음 요트를 배우기 위해 탄도를 찾아 늘 블루라군에 동승을 했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JG씨였고 그를 통해 Sailing을 배우기도 한 터였다. 박선장은 오늘 갯벌에서 탈출을 위한 도전을 위해 JG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했다. 그리고 그는 집에 들를 일이 있어 돌아가야 한다며 내일 혹시 있을지 모를 재도전에 임하겠다 약속하고 돌아 갔다.
JG씨는 역시 노련했다. 우선은 잠을 자 두어야 한다며 그는 잠을 청했다. 유선장도 덩달아 잠을 청했지만 잠이 쉽게 들리는 만무했다.
자정이 기까워지면서 다시 밀물이 들어 파도에 배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조 시각은 아직도 두시간은 족히 남아 있었다. 과연 조석표에 기록돤 것처럼 오늘 충분한 수위가 만들어 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약간의 조바심이 들었다.
조석표란 조석의 때와 수위를 기록한 표를 말하는 것으로 달력에 일년치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매일 매일의 조석의 때와 수위가 이미 일년 전에 예측되어 표로 만들어 뱃 사람들이면 모두 이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예측이 과연 맞을 수 있는 것인가. 매일 매일의 바다의 수위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변화에 따라 밀물 썰물이 이루어 진다는 것은 이미 아는 바이긴 하지만 그 수위와 때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맞을 것이란 사실에 대해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몸소 경험하거나 이를 활용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바다에 대해서 주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지만, 결국은 혼줄이 날 정도의 경험을 통해서만이 이를 절감하며 받아 들인다. 인간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어서 '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 마음을 알게된다.'는 말 또한 남의 말이 아니겠다.
1시가 지나면서 배는 이미 많이 떠 올라 있었다. 그동안 킬과 러더가 연실 갯벌에 부딛치던 소리도 이젠 거이 없어졌다. JG씨는 그제야 잠 자리에서 일어나며 준비를 해야겠다 했다. 엔진을 시동하고 각종 스윗치를 올렸다. 수심계가 듣지 않았다. 실내등을 제외한 모든 항해등도 불이 들어 오지 않았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뒤지며 문제점을 찾고 있었다. 파도가 만만치 않아 유선장은 약간의 멀미를 느끼며 컨디션 조절을 위해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멀미는 아랑곳 없다는 듯 여기 저기 전기 배선을 살펴보며 문제 해결을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다행히 수심계는 작동하게 되었다.
1시 반이 되면서 그들은 닻을 걷어내고 출발을 시도 했다. 수위는 역시 조석표대로 충분했다. Orion은 거침없이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 갈 수 있었다. 영흥 발전소의 눈부시게 반짝이는 불빛과 멀리 평택항 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이용해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수심이 깊을 바다를 향해 점점 더 나아갔다. 검게 물든 바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잔뜩 구름 낀 하늘 그 사이 Orion의 모습, JG씨는 우리가 마치 간첩선과 같다며 웃으면서 혀를 찾다.
파도가 2미터는 족히 넘을 듯 싶은 바람이 넉넉한 밤이었다. JG씨는 쎄일링하기에 좋은 날이라하며 아쉬워 했지만, 항해등도 없이 또한 제대로 된 항해지도가 든 GPS도 없이 돛을 편다는 것은 이 한밤 중에 무모한 일이어서 기주 항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멀고 먼 항해였다. 가도 가도 밤 바다는 끝이 없었다. 멀리 반짝이는 등대불, 묘박을 하고 있는 외항선들, 항로 표시등을 통해 대략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마냥 앞으로 나아갔지만 영흥 갯벌을 떠난지 몇 시간이 지났어도 우리는 늘 그 자리를 떠도는 듯 했다.
새벽 다섯시가 되면서 멀리 기다랗게 불빛이 이어진 곳이 제부도임을 확인하고 어망을 피해 항로를 잡아 갔다. 탄도항에 접어들면서 동녘엔 서서히 여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탄도에 도착한 후 적당한 앵커를 잡아 Orion을 묶어 놓은 후 그들은 잠부터 자야 했다.
오늘은 무슨 꿈을 꾸게 될 것인가. '바다와 노인'에서 한 노인처럼, Orion이라는 대어를 낚아 다시 탄도에 돌아 오는 꿈일게다. 20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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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걱정했던 태풍에 그만하기 다행이군요 참 수고 하셨습니다 너무 실감나고 감동적인 글 잘보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녀한테 앞으로 열배 백배 갚으셔요.. 주인없이 태풍속을 헤쳐나가느라 얼마나 고생하였겠습니까? 오리온 수고하였습니다. 열심히 아끼고 사랑하세요. ㅎㅎ..
고생하셨습니다.......저 또한 간접 경험으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감사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오리온이 저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있다고 말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배가 수년전 테풍에 마리나에서 지옥을경험한적이있어 이번Swing Mooring중엔 용왕님이 살려주솄네요.
아무나 부활하는게 아닌가봄니다 ㅎㅎㅎ 잘보살펴주시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오리온의 부활을 축하 드립니다.....
성원에 감사 합니다. 오리온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정말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태풍을 이긴 후 또 다시 불평않고 일어서는 그녀가 정말 매력있어 보입니다..
하필 전화한 날마다 바뻐 함께 가보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오리온이 무사히니 다행입니다
고생이 많으셨네요.
선주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감정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글을 이리 잘 쓰시는 것을 보니 참 감탄하게 됩니다.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