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국세청장이 취임 첫날부터 뇌물을 받은 것보다 자기 아들에게 회사를 넘기기 위해 주식을 부정 처리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어린 입시생들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 문제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미래의 희망인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일찌감치 참된 가치를 우습게 알도록 학습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편법의 요령주의와 불법의 결과주의가 판을 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 속에서 겨우 연명해가고 있는 판에 이 무슨 짜증스러운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지루한 이 난국을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에 젖어있을 줄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문득 `쾌도난마(快刀亂麻)’ 이야기가 떠오른다.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벤다’는 뜻이니 곧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정황을 명쾌하게 재빨리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모순이 들어있을 수 있다.
옛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제(北齊)를 일으킨 고환(高歡)은 원래 한족이었지만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북방 변경지대의 선비족이었다. 선비족 군사는 난폭했지만 전투에는 용감했기 때문에 고환은 이러한 힘을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암투가 있기 마련이어서 고환의 여섯 아들도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환은 이 아들들에게 서열을 정해주기로 하고 재주를 시험하고자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는 추려내어 보도록 하였다.
그러자 모두가 한 올 한 올 뽑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양(洋)이라는 아들은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득의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 `어지러운 것은 단숨에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쾌도난마’라는 성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말을 만들어낸 고양(高洋)은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백성들을 못살게 군 폭군이 되었다. 뒷날 임금이 된 그는 무슨 일이든지 복잡하게 여겨지면 칼부터 빼어들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술김에 재미로 사람을 죽이곤 했기 때문에 예삿일이 아니었다. 사람보다 칼이라는 수단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신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머리를 짜낸 것이 사형수를 술에 취한 고양 옆에 두는 것이었다고 하니 사람을 중히 여기지 않은 쾌도난마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여겨지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이 `쾌도난마’와 같은 맥락의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가 소아시아 서해안 에 있는 고르디움 왕국을 함락시켰을 때에 그곳에는 풀지 못하는 매듭이 있는데 그것을 푸는 사람이 세상의 왕이 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현자로 이름 높던 옛 고르디우스 왕이 자신의 수레를 신전에 바치면서 아주 복잡하게 얽힌 매듭으로 수레를 신전 기둥에 단단히 묶어 놓은 것이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매듭을 푸는데 도전했으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전설도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이에 알렉산더는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자 그만 칼을 뽑아들고 단칼에 매듭을 잘라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과 아시아대륙에 걸치는 대제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처럼 명쾌한 사리판단에도 불구하고 오랜 정복 생활에 따른 부하들의 반란과 정복 지역의 민란으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모후와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또다시 아라비아 원정을 꿈꾸다 33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가 바쁘게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그의 제국은 모조리 흩어지고 말았다. 물론 그가 건설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는 지금도 전 세계에 칠십 여 곳이나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쾌도난마도 좋지만 사람을 떠나서는 아니 된다. 오늘도 우리 사회에 쾌도난마를 꿈꾸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