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혼란기에 유출돼 국외재단 모니터 과정 중 발견 “19세기 대표하는 작품” 평가 불교계·전문기관 협력 모범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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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협력으로 경매에서 낙찰받아 환수한 조선 칠성도 불화. 왼쪽부터 ‘치성광여래 일광보살 월광보살도’, ‘제5광달지변여래 염정성군도’, ‘제6법해유희여래 무곡성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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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등 한국사회의 혼란기인 1950~60년대 초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후기 불화 3점이 문화재청 산하 재단과 원래 봉안되었던 사찰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됐다.
금정총림 범어사(주지 수불)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 이하 국외재단)은 6월 3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진행된 한 옥션에서 1861년(철종 12) 제작된 뒤 부산 범어사 극락암(極樂庵)에 봉안되었다가 사라진 ‘칠성도(七星圖)’ 3점(비단에 채색, 84×55㎝)을 7만8500스위스프랑(한화 9400여만 원·경매수수료 포함)에 낙찰받았다.
‘칠성도’는 이날 경매에서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였다. 조선후기에 많이 조성된 ‘칠성도’는 칠성과 북극성 신앙이 반영된 불교회화로, 당시 사찰에서 매우 중요한 예배대상이었다.
국외재단은 해외 경매시장에 출품된 한국문화재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취리히 소재 콜러 옥션(Koller Auktionen)에 출품된 ‘칠성도’를 발견했으며, 곧바로 전문가에게 불화의 진위와 가치에 대한 평가했다.
특히 ‘칠성도’ 하단에 적힌 그림의 조성경위를 적은 화기(畵記)를 통해, 이 불화 3점이 1861년 밀양 표충사(表忠寺)에서 제작된 뒤 범어사 극락암으로 옮겨 봉안된 ‘칠성도’ 11점 가운데 3점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불화 제작을 주도한 선종(善宗)은 19세기 중·후반 경남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畵僧)이다. ‘칠성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소장 ‘칠성도’ 2점도 범어사 극락암에 함께 봉안됐던 11점의 일부였다. ‘칠성도’ 11점이 봉안되었던 극락암도 1960년대 후반에 훼손돼 철거됐다.
이에 대해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칠성도’는 조성연대와 제작처, 화승, 봉안처 등 조성유래를 확실히 알 수 있고, 짜임새 있는 구도와 단아하면서 건장한 불상의 형태, ‘칠성도’의 중심인 ‘치성광삼존도’가 남아있는 점 등으로 볼 때 19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경매를 앞두고 스위스 현지에서 ‘칠성도’ 3점을 조사한 불교회화 전문가인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은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11점 구성의 칠성도로 국내 입수 후 범어사로 봉안 시, 본래의 종교적 기능 또한 회복할 수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불화 3점의 원래 봉안처를 확인한 국외재단은 범어사 측에 이 사실을 알렸고 범어사는 불화를 확인한 즉시 환수에 적극 나섰다. 이에 따라 국외재단은 해외에 유출된 불화의 발견부터 평가위원회 개최, 원 소장처와의 정보공유, 경매 대응, 낙찰받은 문화재의 안전한 인계 등 환수의 전체 과정을 주관했다.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은 “이번 환수를 계기로 앞으로 ‘성보보존’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환수된 ‘칠성도’는 본래 봉안처인 극락암을 재조성해 안치하고, 나머지 ‘칠성도’도 되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외재단은 “국외로 유출된 시기와 이유를 특정할 수 없는 불교문화재를 해당 사찰과 해외 경매에서 매입을 통해 원래 소장처로 되돌려놓는 문화재 환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사찰 등 불교계와 협력하여 해외에 유출된 불교문화재 환수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외재단은 2014년 문화재청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한 미국계 기업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기부금을 받아 ‘기증-박물관 운영기금 기부’의 형식으로 진행한 미 허미티지박물관 소장 ‘석가삼존도’ 환수를 이뤄낸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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