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끝나고 난 뒤
오늘 편지 제목은 오래 전 대학가요제 입상곡에서 따왔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그런데 검색하다 보니 같은 제목의 드라마도 있더군요.
연극과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객석에 혼자 남은 배우는 정적과 고독이 남는다고 했는데, 저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간 여러분의 자리에 이런저런 흔적들이 남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그날의 주보입니다. 남겨진 주보들을 들춰봅니다. 거의 다 깨끗합니다만, 어떤 이들은 낙서를 했고, 어떤 이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떤 이는 설교 말씀 한 줄이나 단어 몇 개를 적어놓은 것도 있습니다. 저 혼자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보는 무엇일까? 제대로 읽기는 하는 것인가? 왜 이렇게 두고 가는 것인가? 아예 종이 주보를 없애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쓰레기 봉투에 빳빳한 주보를 구겨서 넣습니다. 주보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는 순간이어서 제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주보 한 장에 말씀과 공부와 소식 그리고 편지가 들어있습니다. 정성과 생각도 들어가 있습니다. 합하면 우리들의 신앙의 여정이 기록으로 남는 것이지요.
금년부터는 주보의 체면을 좀 세워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깨끗하게 대하지 마시고 여백에 뭐라고 한 줄 써보시기도 하고, 두고 가지 마시고 모아보시지요. 그리고 일년이 끝날 때쯤, 아니면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시지요.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어떤 분이 말하기를 기록은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런 의미를 가지고 살면 삶이 풍성해진다고 했습니다.
주보는 단순히 예배순서를 적은 종이 한 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체면이라는 말을 하다 보니 주보는 저와 여러분의 얼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첫댓글 주보 안 읽기..두고가기.. 등등은 글을 안 읽는 습관탓인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