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1편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며, 영원히 영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과정이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계속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이 이삭에게 넘어가고, 그 복이 혈통의 관계성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까지 연결되었다가 이젠 온 이방 민족까지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이미 확정되어 진 것을 말합니다. 이스마엘과 같이 육신의 혈통으로
한정된 사람은 겨우 먹거리를 부르짖음으로 구하는 정도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공평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는 이미 그 관계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된 새 피조물들은 stop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리 안에서는 stop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 곧 결정이
되었지만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어서 진보를 계속합니다(롬8:10)
1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 하리이다”
이 고백은 구원을 경험하고 주의 권능을 아는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여기서 힘(히:오즈)이란 무한한 능력을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속에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에너지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힘(권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늘 묵상하며 그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자신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므로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영적인 조건을 만들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을 발동시켜야 하는 겁니다.
2절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셀라)”
하나님은 마음의 소원을 먼저 주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입술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를테면 기도제목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탄식하며 간구하시며 우리의 기도제목을 알게 하십니다(롬8:27)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그를 영접하다는 말은 '여기 있다, 갖다 먹어라’고 쑥 내미는 모습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 복을 인색하게 주시지 않습니다. 후하게 주시고 이미 주신 것을
어떻게 했느냐고 따지시지도 않으십니다(약1:5) 그리고 순금 면류관을 씌우십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면류관이 나옵니다.
1) 지혜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면류관이 됩니다(잠4:9)
2) 어진 여인은 지아비 곧 남편의 면류관이 됩니다(잠12:4)
3) 지혜로운 자에게는 재물이 그의 면류관이 됩니다(잠14:24)
4) 의로운 길에 얻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입니다(잠16:31)
5) 자손들은 노인의 면류관이 됩니다(잠17:6)
6) 바울에겐 성도들이 자랑의 면류관이 됩니다(살전2:19)
7) 사역을 마친 그 날에 받을 의의 면류관입니다(딤후4:8)
8) 시험을 참고 시련을 견딘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약1:12)
9)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습니다(벧전5:4)
하나님의 구원의 권능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이런 복이 쑥 나타나서 앞장을
선다는 뜻인데 각종 면류관은 파워풀한 프라이드이며 자격지심이 됩니다.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이 구할 내용은 생명입니다. 영생은 단회적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4절)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의 간증이 바로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입니다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5절)
그래서 욥에게는 인간적으로 의로운 자였지만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으라 하십니다(욥40:10)
다시 말하면 욥과 같이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사람은 행위는 깨끗하고 단정하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주의 영광으로 인한 존귀와 위엄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복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으로 받는 복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이 다 그와 같은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성인들의 그림을
보면 배경을 찬란하게 그리는데 그건 그 사람에게 그런 후광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좋은 집보다 주의 영과 생명으로
그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이 나타나는 얼굴을 지녀야 합니다.
이런 복을 받는 사람의 영원한 소망 곧 장래는
"그가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6절)
영영토록 지극한 복은 영생 복락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쁘고 즐거운 복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부를 찬송은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13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은 찬송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여호와여 높임을 받으소서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나이다 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우리는 오늘도 여호와여 높임을 받으소서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어 젔습니다.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사는 날 동안 주의 구원을
간증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