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오르다 보니 보리 수확 농작업료와 건조비도 지난해보다 40% 이상 올라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27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회령리 일대 보리 건조장. 농업인들이 갓 수확한 보리를 가져와 건조를 맡겼지만 한결같이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지난해 10a(300평)당 5만원 하던 콤바인 수확 작업료가 7만원으로 오른 데다 40㎏ 한포대당 3,500원 하던 건조비용도 5,000원으로 껑충 뛰었다는 것이다.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농촌이 술렁이고 있다. 각종 농자재값이 줄줄이 오른 데 이어 농산물 운송비도 치솟아 고유가에 따른 직격탄이 농업·농촌을 강타,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농가가 늘면서 본격적인 농사철임에도 농촌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면세 경유값, 1년 새 2배 치솟아=농가 전체 면세유 사용량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면세 경유값은 26일 현재 전국 평균 1,217원이다. 2007년 5월 650원 수준이던 경유값은 지난해 12월 807원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해 올해 들어 3월 850원, 4월 966원, 5월26일 현재 1,217원으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보리 수확, 모내기 등 농기계작업 대행료 급등=보리 2,314㎡(700여평)를 재배한 이봉원씨(80·보성군 회천면 회령리)는 “지난해 10a당 5만원씩 하던 보리 수확과 모내기 작업 대행료가 7만원으로 올랐다”면서 “인건비도 못 건지게 생겨 이젠 농사짓기가 겁난다”고 털어놨다.
벼농사 9,900여㎡(3,000평)를 짓는 김재수씨(70·전북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는 “지난해 4,000㎡(1,200평)에 논갈이와 모내기 비용을 합쳐 40만원을 지불했는데 올해는 50만원 이상 들어갈 것 같다”며 “비료·농자재값과 기름값 폭등 여파로 경영비가 가파르게 올라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기계나 건조기를 보유한 상당수 농가들은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다며 농작업 대행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농작업 대행 20년째인 조정식 회령위탁영농조합법인 대표(43)는 “자고 나면 기름값이 올라 보리 수확과 트랙터 로터리 작업은 인건비 건지기도 힘들고, 보리 건조는 손해보면서 기계를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농작업 대행사업을 해온 이석준씨(55·전북 김제시 만경읍 소토리)는 “기름값 인상분을 대행료에 즉각 반영할 수도 없어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농기계를 부리면 부릴수록 손해가 나 농작업 대행 면적을 지난해보다 60%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사료값 폭등 여파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축산농가들은 기름값마저 올라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돼지 2,800마리를 키우는 김계한씨(54·경기 여주 북내면 외룡리)는 “요즘에도 분만실은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면 난방을 해줘야 한다”면서 “겨울철에는 전체 돈사에 난방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운송에도 큰 영향=시설채소 재배농가 원성숙씨(60·경기 포천시 소흘읍 이가팔리)는 “소형 트럭으로 서울 가락시장에 매일 출하하는데, 한달 기름값만 60만원이 더 든다”고 했다.
이종훈 충남 태안 원북농협 조합장은 “5t 트럭을 임차해 매주 15차례씩 서울로 쌀을 공급하는데, 운송비가 지난해 이맘때보다 한대당 3만원이 올라 매주 45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서 농민과 농협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수박 생산단지에 속하는 경북 고령군 우곡면의 박규이 우곡원예영농법인 유통이사는 “지난해보다 5t 트럭 한대당 2만원씩 올려 계약했는데, 운송업자들이 또다시 올려달라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영수 성주 선남농협 조합장은 “화물차주들이 서울 한번 갔다가 오면 7만~8만원 밑진다고 아우성”이라면서 “기름값 때문에 농산물 유통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2차 피해 우려=5,280㎡(1,600평) 규모의 시설토마토 농가 이종수씨(60·경기 이천 설성면)는 “기름값 부담이 너무 커 난방시간을 줄인 결과 성장이 더디고 잘 익지도 않는 등 2차 피해도 나타났다”면서 “출하시기도 10일쯤 늦춰져 가격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