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올해 유난히 가뭄이 심한 남부지방에서는 단비가 될 터다. 나무들이 자라는 만큼, 풀들도 예상외로 잘 자라기 때문에 복숭아 밭에 커져 있을 풀이 걱정되었다. 제법 자랐을 복숭아나무가 풀에 덮여서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3년째 키우고 있는 복숭아나무는 품종에 따라 키가 큰 것은 2m, 작은 것은 1m 정도로 자랐다.
블루베리 하우스에서 일하느라 경황이 없어 복숭아나무 쪽에 오랜만에 갔더니 온갖 종류의 잡초가 자유롭게 춤추고 있었다. 두 주전쯤 비가 그친 후, 풀들이 어렸을 때 제거하기가 수월해서 복숭아나무 주변의 풀들을 뽑아 주었다. 그곳을 제외한 고랑과 두둑엔 심하다 싶게 풀들이 자라 있었다.
작년에 임대사업소에서 승용예초기를 대여해 사용하며 제초작업의 효과를 체험했기에 큰 걱정 없이 임대사업소에 전화했다.
"승용예초기 이틀만 대여할 수 있을까요?"
"네, 언제 필요하신가요?"
"제일 빠른 날짜가 언제일까요?"
"4월 말까지는 트럭이 없어 배송이 어려운데 가져가실 수 있으실까요?"
"배송을 해주셔야 되는데요."
"그럼, 5월 초로 예약해 드릴까요?"
그렇게 해서 승용예초기로는 제초의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했다.
풀들의 기세를 두고 볼 수 없어 곧바로 예초기를 이용해 일을 시작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수형을 잡기 위해 설치한 시설 때문에 예초기가 철골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결국, 나무 주변과 철골이 박힌 주변의 풀 뽑기는 내 차지가 되었다. 그 일은 승용예초기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 손이 필요할 일이다. 이번 제초작업을 위해 꼬박 사흘 동안 복숭아 밭에 매달려야 했다.
풀들이 크게 자라 습기와 영양을 주고 있어 땅바닥엔 개구리, 굼벵이, 달팽이, 공벌레, 개미, 버레기 등이 천국인양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큰 풀을 제거하자 갖가지 곤충들이 피난처를 찾아 부산하게 움직였다. 굼벵이는 나무의 뿌리를 상하게 하고, 개미는 진딧물을 옮긴다고 한다. 올초에 나무가 잘 자라도록 뿌려 주었던 거름 덕분에 곤충과 풀들이 더 잘 자랐다.
나무에 좋지 않은 것들은 제거해야 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풀과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풀들은 어렵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왔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여러 생명들이 공존할 수 있으니 우리 땅은 건강하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험로의 작업이 끝나고 손에 잡힌 물집과 몸에 생긴 퍼런 자국을 보며 진짜 농부가 되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예초기를 쓰느라 무릎아래까지 보호대를 했건만 돌이 튀어 여러 곳에 멍이 든 남편은 다리의 멍자국들을 자랑했다. 벌겋게 탄 피부, 갈라지고 거칠어진 손과 발, 발목과 무릎의 뻑뻑함, 허리와 어깨의 통증, 양손에 물집까지 가졌는데 진짜 농부가 아니고 뭐겠냐며 실실거렸다. 언제부턴가 집에 있을 때보다 농장에 가 있을 때가 마음이 더 편안해졌으니 우리는 분명 농부가 맞다.
귀농해서 농사지으며 살 계획이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지인들은 "뭐 하러 힘든 농사일을 해?"라며 극구 말렸고, 어떤 지인들은 "회사 다니는 것보다 낫지!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비 오면 쉬고!" 라며 놀리 듯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니 누구 눈치 볼 것 없다는 말은 맞지 않다. 하늘의 기상에 민감해져 날씨에 따라 일과가 정해 졌으며, 옆밭의 주인들과 관계도 중요했다. 비가 오면 쉰다는 말도 맞지 않다. 비가 오기 전후에 농부는 더 바쁘다. 씨 뿌리고, 풀 매고, 수로 점검하고, 병해충 대비 등 한꺼번에 할 일들이 몰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블루베리 화분에 나무를 심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블루베리가 새 흙에서 뿌리내리기를 잘하면 좋겠다. 복숭아나무도 뿌리가 더 강해져 풀의 세력을 이길 만큼 튼실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봄비에 두 달 전에 심었던 막대기 같은 유실수들에서 이파리가 나왔다. 땅의 풀들은 뽑아내면서도 나무의 이파리들은 이다지도 반갑고 예쁘다. 농장의 진입로에 초록으로 짙어지며 커가고 있는 은행나무만 봐도 반갑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풀들에게는 나도 반갑지 않겠지만, 사람들한테는 생명을 살리는 봄비처럼 반가운 사람이면 좋겠다.
첫댓글 와!
농부가 쉽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땅도 생물도 가꾼만큼의 보답이 올것에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반드시 결실을 거두실겁니다!
응원합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들이 건강히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와 소통하면서, 식물들의 생태를 알아가면서, 스스로의 생각이 많아지고 지혜의 폭이 넓어지고 힘듬과 감사의 시각차도 느껴짐을 터득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농부들의 삶이 작물과 풀을 상대로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란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러나 자연으로부터 얻는 즐거움과 보람이 적지않아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마주하게 되는 걸요. 조금 더 용기 내시고 힘 모아 하고자 하는 일 성취하시길 응원합니다. 다만 건강이 걱정되네요.
회장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에서 저절로 배워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놓여진 상황에서 여유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길인 듯 합니다. 조급하게 생각해도, 겁부터 먹고 힘들어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천천히 해 나가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풀과의 전쟁 속에서도
흙에 살리라
하는 노랫 구절이 생각날 정도로 애정이 없이는
시작도 못하는 일이지 싶어요
정직한 땅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
하는 믿음의 열매를 가져다주겠죠
풀을 보니 땅이 기름진 옥토인가봅니다
파이팅!!하시면서 쉬엄쉬엄 요
시골 태생이라 땅의 일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막상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니 모른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수가 생소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열심히 알아가면서 기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