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스카이폴’의 주인공 주디 덴치(왼쪽)와 대니엘 크레이그. 밀랍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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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자동차로 악당을 함께 추격하던 본드의 동료는 최후의 방법으로 저격수 총을 꺼내 들어 두 사람 사이를 겨눈다. 망원경 가늠자를 통해 악당을 조준하지만 단 1㎝만 빗나가도 총알은 본드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귀에 꽂은 라디오 수신기로 상부의 엄중한 명령이 떨어진다. “타깃을 빨리 제거하라” 탕~. 하지만 총알은 우려했던 대로 본드에게 날아가 꽂히고 본드는 기차 위에서 그대로 추락해 다리 밑 강물에 처박힌다. 방금 전 그 무모한 명령이 유능한 요원 하나를 잃게 만든 것이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MI6 조직의 최고 사령탑 M이다. 짧은 은발,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 작지만 차돌 같은 이미지의 명배우 주디 덴치(Judi Dench)다.
007 시리즈와의 인연
영국의 해외정보국인 MI6의 M국장을 연기한 주디 덴치는 1995년 ‘골든 아이(Golden Eye)’부터 007 시리즈와 인연을 맺었다. ‘골든 아이’는 17번째 시리즈다. 영국 출신의 마틴 캠벨 감독이 연출하고 숀 코너리,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에 이어 역대 5번째 제임스 본드로 발탁된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을 맡았다. 영국이 자랑하는 성격파 배우 주디 덴치가 할리우드 최고의 오락영화인 ‘007’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큰 화제였다. 게다가 그동안 당연히 가장 남성적인 인물로 표현됐던 M을 여배우가 연기한다는 점도 시선을 끌었다.
덴치가 구축한 M은 여러모로 독특했다. 출연 비중으로 볼 때 제임스 본드나 본드 걸, 혹은 악당 캐릭터에 비해 등장하는 장면이 턱없이 적었으나 존재감이 흘러넘쳤다. 최고의 스파이 본드를 마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조종하는 모습에서 출연 분량 이상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누가 봐도 겉모습은 아줌마인데 첨단 정보국의 수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는 설정도 반전의 묘미를 줬다.
덴치의 키는 155㎝에 불과하다. 요즘 한국의 여배우들보다 작다. 영국 여배우 평균 키에도 한참 못 미칠 게 뻔하다. 짧은 다리, 통통한 몸매가 ‘영국의 전원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고보면 덴치는 사실 미인형 배우도 아니다. 파란 눈동자는 배우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얼굴과 목을 뒤덮고 있는 주름살은 가히 ‘일반인 포스’에 ‘무방비’ 상태다. 키는 작고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여배우는 어떻게 영국의 국민배우이자 세계적 명배우가 됐을까? 그리고 환갑이 넘어서도 활약하고 있는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주디 덴치는 누구?
주디 덴치는 1934년 영국 노스요크셔 요크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78세. 1995년 ‘골든 아이’에서 처음 M을 맡았을 때가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의사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아마추어 배우로도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풍을 따라서 퀘이커교 주니어 스쿨을 다녔고, 런던의 스피치 드라마 센트럴에서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을 했다. 이후 왕립셰익스피어극단, 국립극단, 올드빅극단에서 활동했다. 그의 데뷔 무대는 연극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57년에 연극 ‘햄릿’의 오필리아 역으로 데뷔했다. 지금의 M 이미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캐스팅이다. 비극의 여주인공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덴치를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도 그때는 20대의 꽃다운 처녀였다.
주디 덴치의 외모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왕립셰익스피어극단에서 활동할 때다. 주디 덴치는 당시 극단의 총연출자였던 피터 홀 감독으로부터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의 주인공을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우선 연극으로 제작하고 곧이어 TV로도 방송될 작품이었다. 신인으로선 매우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주디 덴치는 섭외를 거절했다. 그는 “(내가 하는) 클레오파트라는 아마도 ‘폐경기의 난쟁이(menopausal dwarf)’처럼 보일 것”이라며 고사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소신이 분명하고 겸손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홀 감독은 주디 덴치를 클레오파트라로 섭외하는 데 성공했고, 그는 팬과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얻어냈다.
후일 주디 덴치는 한 인터뷰에서 성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성형수술을 고려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걸 고려하기엔)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해 개념 있는 배우로 남게 됐다.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주디 덴치가 영화로 옮겨간 것은 1965년이다. ‘포 인 더 모닝(Four In The Morning)’이란 작품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그후로는 연극보다 스크린 작업이 더 많았다. ‘헨리 5세’(1989), ‘햄릿’(1996), ‘미세스 브라운’(1997)이 그런 작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왕, 집안의 어른, 귀부인 같은 이미지는 이때부터 생겨났다. ‘미세스 브라운’에서 빅토리아 여왕 역,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역, ‘아이리스’(2001)에서 중년의 아이리스 머독 역, ‘오만과 편견’(2005)의 카트린 드부르 부인 등 그는 매번 지위 높은 중년 여성을 연기하며 권위와 카리스마의 상징이 됐다. M을 연기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영국 아카데미상 10회 수상
주디 덴치는 화려한 필모그래피(출연 작품 목록)만큼이나 수많은 트로피를 받았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카데미상, 로렌스올리비에상 등 연기 인생 50여년 동안 모두 82회 후보지명 돼서 28회 수상했다. 2년에 한 번씩은 트로피를 거머쥔 셈이다.
가장 많이 받은 상은 영국아카데미상(BAFTA)이다. 23차례 후보에 올랐고 10회 받았다. 다음은 로렌스올리비에상이다. 영국 웨스트엔드의 뮤지컬과 오페라, 연극 등 공연계를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미국에 브로드웨이의 토니상이 있다면 영국에는 로렌스올리비에상이 있다. 연극무대 출신답게 이 상을 6회 수상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든글로브상, 토니상도 각각 2번 받았다. 남들은 한 번도 받기 힘든 영예로운 상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6차례 후보지명 된 중에 얻은 값진 수확이었다. 1999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엘리자베스 여왕 역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주디 덴치가 이 작품에 출연한 장면은 고작 4개, 시간은 8분. 어쩌면 단역에 지나지 않은 비중일 수도 있었으나 그는 신들린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건 역대 아카데미 수상자 중 두 번째로 짧게 등장하고 받은 진기록이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주디 덴치는 1988년 일찌감치 영국 왕실로부터 남자의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그는 실제로 왕실이 인정한 귀부인이었던 것이다. 주디 덴치는 이처럼 주변의 편견과 상식을 깨고 영국이 자랑하는 국민여배우가 됐다. 작은 키에 평범한 외모,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까지 배우로서 핸디캡이 적잖았으나 이를 장점으로 승화하는 노력과 열정으로 전 세계 팬들이 주목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연기란? “할수록 공포심이 커지는 일”
지금의 명배우 주디 덴치가 되기까지 그에게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은 많았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본을 미리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본을 읽어야 작품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그래야 캐스팅과 캐릭터 설정이 이뤄진다는 게 통념인데, 그는 좀 달랐다. 대본을 읽지 않는 이유는 글을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벼랑에서 떨어지기 직전과 같은 수준의 공포감을 갖도록 스스로 밀어붙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얘기다.
대신 그는 주변 지인에게서 작품의 줄거리를 전해듣는 방법을 취한다. 이 일은 그의 남편이자 같은 배우인 마이클 윌리엄스의 몫일 때가 많았다. 윌리엄스는 2001년 암으로 죽기 전까지 주디 덴치의 가장 큰 조력자이자 조언자였다. 덴치는 몇 년 전 아주 특별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50여년간 연극을 해오면서 딱 세 차례 빼고는 거의 매 연극마다 넘어졌다는 것이다.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연극에 임하는 그의 긴장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연기하는 걸 공포심과 아름다움의 혼재로 표현했다. “연기를 한다는 건 매우 두려운 일이다. 하면 할수록 공포심이 커진다. 그런데 이 공포심에는 뭔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게 있다.”
이밖에도 주디 덴치는 굉장한 동물 애호가이자, 열렬한 프리미어리그(EPL) 서포터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주마를 비롯해 개 한 마리, 고양이 네 마리, 기니피그 두 마리를 기르고 있다. 외동딸 핀티 윌리엄스 외에는 자식이 없는 외로움과 적적함을 동물을 통해 위로받는지도 모른다.
“연기는 말로 가르칠 수 없다”
박지성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프리미어리그에선 에버튼의 서포터를 자처하고 있다. 에버튼은 현재 리그 순위 5위권을 달리는 전통의 강호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리버풀FC의 팬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에버튼과 리버풀은 모두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라이벌 팀이어서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주디 덴치는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개념 발언을 많이 했다. 또 정직과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퀘이커교도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화려한 여배우의 삶 치고는 아주 안정된 결혼생활을 했다.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었고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는 독신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남편 윌리엄스와의 결혼생활에 대해 “우린 그저 함께 방을 나눠 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면서 “결혼생활에서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게 있다면 아이들을 더 낳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대니얼 크레이그가 선정됐을 때는 그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 응원했다. 기존의 본드 이미지에서 한참 벗어나는 우락부락한 외모 때문에 시작하기도 전에 벽에 부닥쳤던 크레이그를 두고 그는 “(크레이그가 발탁됐을 때) 주위 사람들이 했던 혹평을 무척 싫어한다. 나는 크레이그와 프라하, 바하마에서 같이 영화를 찍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배우”라며 “그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분명히 새로움과 차별화를 불어넣었다. 그를 혹평했던 비평가들이 잘못됐다는 게 곧 입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안목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크레이그는 시들해지던 007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어느 때보다 박력 넘치는 액션과 리얼리티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왔다. 그리고 반세기 동안 해온 연기에 대해 덴치는 또 한번 의미 있는 말을 꺼냈다. “그 누구에게도 연기하는 방법을 말로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몸소 겪어가면서 스스로 그 방법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게 연기다.”
007과 영원히 작별하는 주디 덴치
이번 ‘스카이폴’은 23번째를 맞는 007 시리즈 역사에서 많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M의 퇴장이다. 클라이맥스로 가는 엔딩에서 M은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동안 아늑하고 안전한 정보국 사무실에서 ‘입으로만’ 연기를 하다가 이번엔 직접 총을 들고 악당들과 싸우다가 총상을 입는다.
이 같은 결말은 사실 처음부터 예고됐다. 이야기의 갈등이 M으로부터 비롯했다. 그에게서 버림받은 과거 요원이 M에게 복수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이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도 M의 역할이 컸다. 잠깐씩 얼굴을 비치던 M은 마치 본드 걸이 된 듯 스크린을 지배하며 본드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7편 만에 영예롭게 퇴진하는 주디 덴치에 대한 감독의 헌사가 느껴졌다. 007 시리즈 7번 출연은 1970~1980년대 본드를 맡았던 로저 무어의 7회와 같은 최다 출연 기록이다.
본드의 변신도 숙제다. ‘카지노 로얄’(2006)과 ‘퀀텀 오브 솔러스’(2008)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도 그 사이 벌써 노쇠해버렸다. 아직 주디 덴치의 차기작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스카이폴’의 월드 프리미어에서 여왕 같은 드레스 자태를 보여주는 것을 빼곤 정중동이다. 하지만 주디 덴치를 기억하는 팬들은 많다.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은발, 깊은 주름, 갈라진 목소리가 또 어떤 작품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