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어야!
「허허, 애끼다가 뙹이 돼야부렀구나!」
「문딩이 콧구녁에서 마늘씨를 빼묵어라 이놈아!」
할아버지 웃음소리에 이어 아버지가 동생을 나무란 척 하신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보릿고개시절이었는지라 너 나 없이 가난했기 때문에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고깃국을 먹을 수 없었다. 나와 바로아래 남동생은 평소에 밥 먹는 습관이 달랐다. 나는 고깃국을 먹을 때 맛있는 고기건더기는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먹는 편이고, 동생은 고기건더기부터 먹었다. 그런데 식사 끝 무렵에는 내가 아껴뒀던 고기건더기를 동생이 한 숟가락 날쌔게 훔쳐갔기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하신말씀이다.
한센병(문둥병)은 코가 내려앉기도 하는 병인데, 그 코를 좀 세워보려면 콧구멍에다 무언가 넣어야했고 예로부터 약효가 좋다는 마늘씨가 적당했을 것이다. 약도 없던 시절, 혹시나 해서 콧구멍에 넣어둔 마늘씨까지 빼먹은 사람이야 말로 질 나쁜 인간의 대표 격이라는 뜻에서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 빼먹어라’는 어감도 안 좋고 의미도 나쁜 속담이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국내유일의법정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사랑의열매)의 각종비리가 드러난 뒤, 이를 확인하기위한 보건복지부의 종합감사결과, 단란주점과 유흥주점은물론 노래방 등에서 무려 2100여만 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스키장, 레프팅, 바다낚시 등에도 분별없이 경비를 집행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더 놀라운 것은 기금을 빼돌리기 위한수법으로 직원을 임명하지도 않고 예산을 집행하고, 임원과 직원들의 임금을 지난 3년간 공공기관의 임금인상률보다 3배가 높은 9%까지 인상해 비리의 온상 속에서 배를 불려왔다는 보도(남도매일,11.23자)가 있었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보다 더 기가 막힌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를 빼먹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시민들의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모금단체가 시민이 믿고 맡긴 돈을 마치 공것인양 이렇게 흥청망청 탕진하여 신뢰를 잃어버린 지금, 누가 무슨 염치로 모금 통을 들고 나설 것이며, 누가 흔쾌히 지갑을 열어 모금 통에 돈을 넣을 것인가? 실제로 지난11월초 올가을 절정의 단풍을 보기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던 백양사 옆 빈터에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모여든 인파가 무색할 만큼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러다가는 정작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어려운 이웃들이 제때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진 않을는지 심히 염려스런 바이다.
지난5일,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500억 규모의 사재를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고, 엊그제는 한 농민이 올해 농사지은 쌀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 놓아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자신만을 세상의 가치기준의 중심에 두고 있는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기부자들을 천사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TV에 출연하는 사람마다 가슴에 빨간 ‘사랑의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린,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 빼먹은 자들이 원망스러워 그저 분통이 터질 뿐이다.
하지만, 어쩌랴!
연말연시, 크리스마스트리의 휘황한 조명 뒤에서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떠는 불우이웃이 여전 할 텐데….
‘사랑의 열매’가 조직쇄신안을 내 보이며, 한번만 봐달라고 머리를 숙일 텐데….
그리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또다시 울릴 텐데….
첫댓글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