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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60424210240756
16세기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지구 종말을 예언했다. 종말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고대 마야 달력이 끝나는 2012년 등 ‘지구 종말’ 공포는 면면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일부 사람의 미신적 불안으로 여겨지던 종말론이 이제는 전쟁, 기후재난, 팬데믹, 정치 갈등 등 현실 위기와 맞물리며 관련 시장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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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의 예언과 종말론의 실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기상이변과 지진, 해일 등의 각종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종말론이나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극락세계에서 대표로 내려왔다는 어떤 분은 석가모니불 이후로 자칭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능가할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2016년 전후로 지진, 화산폭팔, 해일 등의 큰 재난이 발생하여 지구는 30년 동안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 현 인류는 종말을 맞게 된다고 하였다.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한 해결책으로 영생을 얻는 깨달음과 냉동인간을 통한 영혼보존의 방법을 제시했지만, 그분은 아무런 뜻도 이루지 못하고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여젼히 존재한다. 만약 그분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분을 능가할 사람은 이 우주에 아무도 없기에 종말을 막을 방법이 없어 인류는 결국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분의 제자인 허씨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인용하며 예수께서 마치 종말론을 주장한 것처럼 곡해하고 자기 스승의 종말론을 두둔하면서 인류의 종말은 없다고 하신 李洪志 사부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24 : 1 ~ 30의 기록을 보면 말세의 징조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당부하는 구절이 있다.
"예수께서 감람산(橄欖山)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묻기를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主)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迷惑)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不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늘나라의 복음(우주의 진리)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創世)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減)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減)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인자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리라.” (마 24:42, 44)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때도 그러하리라…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느니라.” (눅 17:26–27)
위 구절을 요약해보면 우주의 진리가 세계 각지에 전파되고 나서야 큰 환란이 오는데, 그 환란을 감하지 않으면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환란의 정도를 감하여 종말은 면한다. 말세에는 성인을 자칭하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타나므로 함부로 믿지 말라. 핵심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세주가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환난을 감하므로, 인류가 종말한다는 주장은 예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바로 노스트라다무스나 마야문명의 예언들이다. 노스트라무스의 예언은 시의 형태로 씌어진 것인데, <고도 벤>이라는 일본인이 <제세기> 시편을 해석하다가 "99년 7월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앙골모아 대왕을 부활시킨다" 라는 부분에서 해석을 못하고 막혀버렸다. 이 구절 어느 부분에도 지구가 멸망한다는 언급이 없는데도, 대순000 같은 일부 사교단체들은 이 구절이 바로 99년 7월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시를 끝까지 해석했는데, 그 시들 중에는 핵폭팔에 의한 제3차 세계대전을 묘사한 글도 있는데, 주목할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예언이 거기서 끝난다' 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즉, 미래의 사건들은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왜 가변적일까?
한 사람의 운명은 생각과 말과 행위의 선악을 통해 길흉화복이 정해지기 때문에, 인생에 닥치는 행복과 불행의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라 인과의 법칙에 따라 그 자신의 마음이 창조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正法에 따라 탐욕과 분노심을 내려놓고, 건강하고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면 그의 운명은 변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성자들은 제자들에게 사주팔자나 관상, 풍수 등을 보라고 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닥치는 질병이나 불행한 사건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재난은 우연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70억 인류의 부정적인 마음과 기운들이 모여서 창조해낸 결과물이다. 지구의 운명도 개인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집단의식의 변화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집단의식이 선하게 변하면 어떤 시기에 발생할 재난의 강도가 대폭 줄어들거나 혹은 뒤로 늦춰지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노스트라다무스가 언급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과거 성자들의 계시에 따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바로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眞人(大覺者)이 출현하여 진리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참답게 수행하여 본래 성품인 사랑과 자비심을 회복하여 좋은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를 말할 것이다.
붓다는 《 장아함경 대본경 》 에서 우주의 성주괴공의 순환이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람들의 惡業이 점점 성하면,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강과 바다가 마르고, 별이 떨어지며, 해와 달도 빛을 잃고, 불과 바람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워 마침내 세계 전체가 파괴(壞)된다."고 하였다.「人民惡業漸熾,則山崩地陷,江河涸竭,星辰隕落,日月無光,火風齊起,焚燒一切,乃至世界俱壞。」
즉, 세상의 재난은 자연재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생들의 타락과 악행에 따른 결과라고 강조한다.
인간 세상이 파괴되는 시기에는 도둑질, 음행, 살생, 거짓말 등의 악업이 만연하고, 대규모의 전쟁, 기근, 질병이 발생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함께 지은 악업(공업)의 결과로 집단적인 고통이 생기는 것이기에 모든 악행을 금하고 선행을 권했다.
《디가니카야 차카바티 시하나다경 》과 《미륵하생경 》 기록에 의하면 붓다는 일부 제자들에게 "佛法이 쇠퇴하고 사회가 타락에 빠질 때 미륵불이 다시 등장하여 법(道)을 펼칠 것이니, 그 때를 기다리라" 하였다. 즉, 석가모니 불교가 쇠퇴하는 말법시기에 미륵부처의 출현으로 새로운 佛法이 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여러 예언가들이 언급한 3차 대전이나 여러 재난들에 대한 예언이 1990년대 후반부터 잘 맞지 않는 이유는, 첫째는 그 예언 자체가 부정확한 정보일 수도 있을 것이며, 둘째는 바로 노스트라다무스가 어떤 일이 생기면 자신의 예언이 끝나버린다고 언급한 것 처럼, 현재 대각자가 우주의 진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60년대 말 시중에 국선도 단전행공을 처음 전한 청산선사는 '나는 道의 씨앗을 뿌리러 온 사람이고, 거둘 사람이 따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거둘 사람이 나타나면 당신처럼 도를 닦기 위해 속세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고, 세속에서 수련해도 과거 산중의 수련보다 빠르게 성취된다 하였으며, 난세의 피난처는 바로 마음을 닦는 道場이라며 心田善化(마음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것)를 강조했다.
격암유록에서도 진인의 출세와 사람들의 수행여하에 따라 말세에 닥칠 전염병에서 살아남는 사람의 수가 千祖一孫이 될 수도 있고, 一祖十孫으로 될 수도 있다고 하였으며, 피난처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진리 아래 머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군계일학(群鷄一鶴) 즉, 가짜 구세주들의 무리 속에 한 명의 眞人이 숨어있는데, 진인은 시비구설에 휘말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바, 예수와 석가모니불이 진리를 전할 당시에 기존 종교였던 유대교나 바라문교가 자기들 종교의 교리를 고수하며, 예수와 부처님이 진리를 전하는 것을 교란시키고 핍박했던 것처럼, 그와 비슷한 일들이 마찬가지로 발생할 것이기에, 진인은 당연히 시시비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종교가 변질되어 사람을 깨달음을 얻어 해탈시킬 수 없게 된 작금의 말법시대야말로 온갖 가짜 구세주와 재림예수, 수련으로 돈벌이에 치중하는 사이비 기수련과 사이비종교, 난잡한 수련단체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 속에 군계일학처럼 숨어있는 진인(대각자)는 과연 누구이며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
진인은 반드시 2가지를 겸비해야만 한다. 하나는 마음의 해탈(청정심)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의 해탈(깨달음, 開悟)이다.
마음의 해탈이란 탐욕과 분노로 인한 일체의 번뇌가 소진되어 청정심을 회복한 상태를 말한다. 지혜의 해탈이란 業에 의해 봉폐되었던 지혜가 다 열려서 우주 각 공간의 실상과 생명의 존재방식을 보고, 우주의 진리를 원만하게 아는 것이다.
한편 깨달음의 경지는 층차가 있기에 깨달은 성자들마다 지혜와 법력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지식이 다르고, 같은 대학생이라도 지식과 능력은 서로 다른 것과 같다. 1.0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 만큼만 보고, 2.0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더 멀리 더 미세하게 볼 수 있듯이 우주의 실상도 자기가 깨달은 경지까지만 볼 수 있고, 깨달은 층차가 높을수록 법력도 높다고 한다.
그래서 깨달은 경지가 높은 대각자라면 마땅히 사람들의 심성이 선을 향하도록 이끄는 자비심뿐만 아니라, 우주의 元力 즉 창조력도 겸비해서 물질을 개변시키고 순수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법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지혜가 일부분 열려서 세상의 이치에 대해 아는 소리는 좀 하는데 명예, 재물, 애욕을 추구하는 욕심이 남아 있다면, 그는 마음의 해탈을 이루지 못한 증거이며, 우주의 특성과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아울러 창조력도 생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자신을 대각자라고 주장한다면 마땅히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 그리고 자비심과 창조력을 구비하였나를 살펴보면 된다.
아울러 진인의 가르침이 현실에 그대로 실증되는지는 제자들의 수련결과에 드러나게 될 것이니, 어떤 단체나 국가, 또는 다른 사람들이 비방하는 말이나 고정관념에 끄달려 진위를 판단하지 말고 가르침을 직접 확인해보고 진아의 직관에 의거해 진위를 판단하면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처한 상황은 과거 붓다, 노자, 예수가 출현했던 인류 문명의 초기와는 다르기 때문에, 비록 수행의 기본원리는 같을지라도 수행의 방편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종교나 수련방법들은 크게 보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불교와 기독교처럼 마음만을 닦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몸과 마음을 같이 수련하는 것(性命雙修)이다.
성명쌍수는 주로 도가에서 많이 채용하는데 단전호흡이나 호흡주시를 통해 하단전에 丹을 형성하고, 소주천과 대주천을 이룬 후, 양신을 만들어 출태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세속에서 보통사람들처럼 생활하여 수련해서는 道를 이룰 수가 없고, 대부분 건강관리 차원으로 호흡수련을 보급하는 경우에 속한다. 특히 단전수련으로 道를 이룰려면 상근기가 산속에서 스승의 보살핌 아래 하루 온종일 전심전력으로 수련해야만 가능하다고 하니, 丹道로는 전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만 닦는 마하르쉬의 진아탐구법이나 선종의 간화선 등도 주로 業이 아주 적고 덕이 많은 소수의 상근기들에게나 적합한 방법이지, 業이 많아 질병이 많은 중근기의 현대인들에게는 적합하지가 않다. 그리고 마음만 닦는 방법만으로는 병이 든 사람을 건강한 사람으로 개변시키기도 아주 어렵다.
그러므로 만약 진인이 진리를 전한다면 현 시대에 맞게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세속에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련할 수 있는 방편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며, 질병에서도 벗어나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기에 몸과 마음을 같이 닦는 성명쌍수 수련법을 가르쳐 주겠지만, 스승과 제자간의 개인지도가 필수적인 丹道는 분명 아닐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전 세계에 과연 우주의 이치와 삶의 진정한 목적, 몸과 마음을 같이 닦아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방법 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스승과 단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제자들의 수행결과가 과연 결과로 입증되고 있는지 등을 잘 살펴본다면, 난세에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피안으로 안내하는 正法과 인연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正法을 인연하여 마음을 선하게 개변하여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미래에 어떤 재난이 있든 말든 인과의 법칙에 따라 그의 미래는 틀림없이 밝아질 것이다. 그러나 正法을 인연하더라도 집착심을 내려놓는게 아니라, 수련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 하거나 혹은 신통한 능력을 얻어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한다면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거나 도리어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특히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개변시키는 체계적이고 진리적인 가르침도 없이 이런 저런 비결 중에서 특정구절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꿰맞춰서 스스로 진인임을 내세우는 가짜에게 속거나, 저차원적인 심령현상이나 채널링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따르거나, 체계적인 수련법과 진리적인 가르침도 없이 짜깁기로 급조하여 만든 명상단체나, 수련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치중하는 기수련 단체들을 가까이 한다면 돈 버리고 몸 버리고 인생을 허송세월하게 될지도 모르니 마땅히 경계해야 될 일이다.
< 眞中有假 假中有眞이니 眞假難別이라! >
이는 진리인 것 같은데 그속에 거짓이 숨어 있고, 거짓처럼 보이는데 그 속에 진실이 숨어 있으니 진가를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이다. 바로 거짓과 진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세상의 인류가 처한 현실이다.
노자께서 가라사대 "상사(上士)가 진리를 들으면 근면히 행하고, 중사(中士)가 진리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하사가 진리를 들으면 미신이라 비웃거니 만약 비웃지 않으면 진리라 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근과 혜근이 뛰어나 볼 눈과 들을 귀가 있는 선량한 사람일수록 진리를 알아보기 쉬울 것이다.
붓다께서 재세시에 인도 마가다국의 왕사성에서 심각한 역병(전염병)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부처님은 이 상황을 보고 “이것은 사람들의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인해 쌓인 共業의 과보”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선업을 쌓은 자는 고통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했다.
이는 자연재해나 전염병도 자연현상이 아닌 공동체의 집단 업력에 따른 결과임을 말한다.
1992년부터 성명쌍수의 佛法(法輪大法)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도하고 있는 李洪志 선생께서는 90년대 초반부터 여러 나라의 설법에서 지구의 종말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전염병으로 나쁜 사람들이 도태될 거라고 강조하신 바 있으니, 참고하시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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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나는데 일부 사람은 늘 일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일은 무엇에나 다 무관심하고, 이 겁난(劫難)이 오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또 나에게 묻는다. 이 겁난은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내가 학습반을 열 때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무슨 겁난인가? 하고 물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겁난은 누구를 향해 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겁난 속에 있지 않다. 정말로 겁난이 있더라도 좋은 사람은 모두 남겨야 하고, 나쁜 사람을 도태시킬 뿐이다. 그런데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제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상관해선 뭘 하겠는가. 그것이 어떤 난(難)이든 당신과는 상관이 없다. 만약 정말로 겁난이 있다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명확하게 알려 줄 수 있다. 이 겁난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사람들이 말한 무슨 지구 폭발이며, 무슨 위성 충돌이며, 무슨 홍수가 난다고 하는 이런 난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데, 예전에 정한 하나하나 잇따른 난, 부동한 층차에서 정한 난은 모두 지나갔다.
혜성은 목성에 부딪쳤고 지구에 부딪치지 않았다. 그 물(水)은 이미 지나갔다. 작년의 그 물은 굉장히 큰 것으로 세계적이었지만, 이미 아주 작아졌고 그 정도로 작아진 것마저 지나가 버렸다. 많은 일이 모두 지나간 것으로 이제 이러한 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무슨 숨길 것이 없는바,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면, 장래에 많은 사람들이 도태되는 일일 것이다. 아주 좋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일종의 강력한 질병 중에서 도태될 것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한다. 일부 사람은 늘 이런 일을 담론하는데 당신은 그러한 일을 상관하지 말라. 이런 재난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자신을 제고할 것인가 하는 이것이 관건 문제이다. "
(출처 : 북경 설법 (1994. 12. 17))
"여러분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아주 많은 예언가, 아주 많은 기공사, 아주 많은 종교 중에서 개오한 사람들이 인류사회 금세기 말에 나타날 이런저런 재난에 대해 아주 많이 말했으며, 심지어 인류는 곧 훼멸 될 그런 상태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그 예언가들이 한 말이다.
발생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답해 줄 수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내가 『전법륜』에서 말한 그 예와 마찬가지다. 썩은 사과 한 알, 지구는 이 방대한 우주 중에서 마치 우리가 보는 사과 한 알과 같은데, 그것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사과 안의 매 분자는 마치 매 사람과도 같이 모두 이미 썩었다. 그렇다면 이 사과 그것을 없애 버리고, 던져 버리고,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인류사회, 그것의 도덕이 모두 그런 정도로 저하(低下)되었다면 신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마치 그 썩은 사과와 같아 그것을 없애 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신으로서는, 우리 여러분이 알다시피 특히 인류와 근접해 있는 이 한 층의 신, 그들은 사람에 대해 모두 慈悲(츠뻬이)한지라, 그들은 곧 사람을 구해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썩은 사과 그것을 구해내려 하며, 당신이 이 썩은 사과를 버리려 하지 않고 방 안에 놓아두지만, 그것은 갈수록 더욱 썩어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당신이 그 깨끗한 방 안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사과 한 알을 놓았는데, 당신은 왜 그곳에 놓으려고 하는가? 기어코 그곳에 놓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 이 지구가 이미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래도 그것을 훼멸시키지 말아야 하는가?! 어느 신이 그것을 훼멸하지 않는다면 그 신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과 사람은 같지 않다. 그는 이 사과를 그의 가장 원시적인 입자에서부터 신선한 것으로 개변시켜 다시 신선한 사과로 만들 능력이 있다. 그의 구조를 개변시킨다면 그것은 좋은 사과로 변한다. 그럼 누가 그것을 버린다면 누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1억 명의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자신의 사상을 개변하고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해지고 있으며, 진정하게 우주의 부동한 층차 표준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구, 그것을 폭발시킬 수 있겠는가? 훼멸시킬 수 있겠는가? 그 예언가가 말한 그러한 예언이 실현되겠는가?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
내가 말하건대 그 어떤 예언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의 예언이 더는 영험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는 오늘날 대법이 전해졌으며 인심(人心)은 되돌아 올라가고 급속하게 되돌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제 한 기자가 와서 나에게 물었다. 현재 1억의 사람들이 배우고 있고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아주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또한 더욱 많은 사람이 배우려 한다고 했다.
지금 1억이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을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 1억의 사람들 매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와서 배우도록 알려준다면 곧 2억이 될 것이다. 그 숫자는 순식간에 배로 늘어날 것이며, 대단히 크다. 사람마다 모두 착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며 자신의 도덕 표준을 제고한다면 인류사회를, 내가 든 그 예와 같이, 이 사과가 신선한 것으로 변했는데, 그 누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인류사회의 발전, 우주 중의 일체 상태는 모두 신이 안배한 것이고 모두 법칙이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 나타나는 좋지 못한 상태는, 전쟁이나, 지진ㆍ홍수ㆍ유행병ㆍ전염병 등등과 기타 많고도 많은 자연재해를 포함하여, 사실 모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사람의 업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은 신에 의해 지휘를 받는다. 사람은 여태껏 자신의 사상의 내원(來源)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어떻게 하고자 생각하여 그의 사상이 움직이기만 하면, 그의 이른바 영감(靈感)이 나올 때, 그는 갑작스레 그 무엇이 생각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사실 아주 많은 것이 그렇지 않다. 신은 인류사회의 일체를 단단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이 우주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한 개체로서 그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이 사상을 보아야 한다. 그가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좋다, 내가 당신의 수련을 돕겠다.”라고 하고, 사람이 좋아지려고 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곧 몹시 나쁘게 변한다. 그러나 인류사회 전체를 신이 통제한다. 그래서 사람이 좋아진다면 그는 곧 좋은 미래가 있고 밝은 앞날이 있을 것이다. 좋지 않다면 그에게 좋지 않은 미래가 있으며 암흑과 악업(惡業)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방금 나는 여러분의 수련을 말했다. 이 법을 말함에 한 단락을 끌어내어 말했다. 목적은 여러분에게 그를 소중히 여기라고 알려주려는 것이다. 오늘 1억의 사람이 배우고 있고 당신들은 이미 역사를 개변시켰다. 이는 기쁘지 않은가? 이는 위대하지 않은가? (박수) 그러나 아직도 아주 많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비록 예언가들이 말한 그렇게 큰 재난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국부적인 지역은 여전히 몹시 좋지 않은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 (출처 : 미국동부법회설법 李 洪 志 (1999년 3월 27~28일, 뉴욕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