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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에릭 로메르, 드라마, 프랑스, 97분, 1986년
두번 봤지만, 역시 두번 다 좋다. 에릭 로메르는 내가 제일 좋아 하는 프랑스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감성이 풍부하다. 사람의 내면과 생각의 결을 가장 잘 잡아내는 감독이다. 에릭 로메르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사당역 근처 모 영화모임에서 상영하는 로메르 특별전에서 본 사계절 시리즈였던 것 같다. 프랑스인 특유의 수다 속에 사람들의 감정변화가 손에 만져지듯 다가왔다. 그의 영화는 사건이 아니라 정서를 다룬다.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감정의 섬세함 때문이다. 로메르가 유럽인 특유의 대화와 잡담 속에 인간의 고독과 따스함, 그리고 심경의 물결을 잡아낸다면, 오즈는 절제된 화면과 동작, 대화에서 근대화에 직면한 동양인들의 심경을 섬세하게 드러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냉소적인 홍상수가 이 계열에 속할 것이다. 아무튼 로메르와 오즈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미학적인 격조는 탁월하다. 이 영화의 묘미는 역시 내성적이고 민감한, 어딜 가든 소외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절망하고 우는 외로운 여자 델핀의 느낌과 공감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어쩜 늦도록 저렇게 부적응일까? 하지만 우리들도 그런 내성이 없지 않아 모두 있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 파리와 근교 휴가지를 왔다갔다 하다가, 드디어 녹색에 대한 그녀 특유의 미신이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을 통해 일몰의 녹색광선을 만나면서, 그 실낱같이 작은 초록빛을 보며 탄성을 지르는 순간! 지극히 주관적이고 작은 것이 이토록 위대하구나 하는 것을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다. 민감한 내성녀의 남자친구 찾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마감 된다. 남자도 천상 내성적인 쑥맥인 점이 있으니 그래서 둘이 힘들긴 해도 섬세하게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사람도 서정적인 사람이 있고, 서사적인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스스로를 서정적인 사람이다. 이래서 인생을 아름답다고 하는가보다.
= 시놉시스 = 내성적이고 소심한 델핀느는 여름 휴가를 혼자 보내야 하는 외로운 처지에 놓인다. 남자 친구가 생기기를 내심 기대해보지만 자신의 성격 탓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델핀느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얼마전 한 친구로부터 녹색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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