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는 지금 일본에서는 거대한 산업이다. 총 매출은 5조 엔이라고도 하는데 GNP의 2%, 방위비의 2배를
넘는다. 경마 등 4대 공영도박의 매출을 누르고 친숙한 오락으로서 계속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고 함께 기계의 발전도 현저하다.
파친코대의 무인화(無人化)부터 시작된 점내의 자동화는 컴퓨터 도입, 경화(硬貨)의 자동회수장치 등으로 정점에
달하고 있다.
게임기를 사용하는 오락으로 동으로 만든 작은 구슬을 상자모양의 게임기 안에 용수철로 튕겨 넣어 못 사이를
빠져나가 맞추어 구멍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많은 구슬이 나와 경품과 교환할 수 있다.
파친코의 역사
파친코 기원의 여러 설이 있다. 미국에서 전래된 코린트 게임 개조라고도 불리어지며, 영국 coin game이
그 전 단계라는 설도 있다. 이러한 코린트 게임이나 coin game대신 파친코가 일본의 도회 구석지에 생겨난 것은 1920년대. 빠찡코는 본래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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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30년초 백화점 옥상에서 주부나 어린이에게 인기를 모았던 것이 일전(一錢) 파친코. 또한 당시
성인들을 위한 놀이감으로 파친코는 노점영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전 파친코는 일전이라는 요금에서 유래된 것이라기 보다는 입상하면 일전
또는 이전, 삼전이 현금이 짤랑짤랑 나와 그 감촉과 매력이 인기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금지되고 메달이 나오도록 개량하여
경품을 주도록 되었다. 기계는 그 후 개량되었고 메달 빠찡코는 전후 30년대까지 일부에서 인기를 모아왔다. 전쟁 전 경품은 주로 담배와
캬라멜이었다. |
중국과 전쟁이 시작된 1937년 빠찡코는 전쟁중의 특별조치로 신규영업이 허가되지 않았다. 1940년에는
사치품과 같은 생필품이 아닌 물품의 제조판매제한에 의해 게임기계의 제조가 금지, 1942년에는 게임업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군부도시라고
불리어진 일부도시에서는 군부대의 위안용으로 존속을 인정한 업자도 있었지만 상업으로서는 성립되지 않았다.
패전 이후 연합군은 일본에 진주하였다. 진주군이 주둔하고 있던 1945년 11월부터 게임료 메달 1개에
5전으로 속속히 가계가 개업을 시작하였다. 또 1946년에는 나고야에서 빠찡코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게임요금도 5전에서 10전
그리고 여기저기서 50전(1946년 2월), 1엔(1947년 6월)으로. 더욱이 2엔(1949년 12월)으로 상승. 처음에는 구슬이 2~3개밖에
나오지 않는 하찮은 기계에 불과했지만 메달식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all 10, all 15의 all 기계의
등장과 개발에 따라 구슬을 위로 쏘아 올려서 집어넣는 재미가 증가하여 오늘의 빠찡코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1972년 3월경부터 전동식으로
바뀌었던 것이 지금은 디지탈화되어 의자에 편안히 앉아 즐길 수 있다. 또한, 빠찡코 점도 여러 곳으로 늘었으며, 점 내는 밝고 깨끗하며 누구라도
부담 없이 들어가 즐길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터로 변모했다. 단, 18세 이하는 이용할 수 없다. 현재, 동경 내에는 빠찡코 홀이
1,324점(1999도 동경도 상업통계)정도 있다고 한다.
파친코의 기원
현재의 파친코는 오랜 `진화'의 결과다. 1920년대에 처음 등장한 수평식 파친코는 핀볼(Pin-ball)과
비슷했다. 쇠구슬을 튕겨 정해진 구멍에 넣으면 경품을 받는 놀이였으며 구멍가게나 행상인이 아이들을 상대로 사탕이나 과자를 경품으로 주는
것이었다.
2차 대전 직후 나고야에서 수직형 기계가 개발돼 도쿄와 오사카 등에 파친코점이 들어서면서 파친코 산업이
싹텄다. 1950년에는 쇠구슬이 `꽝 구멍'이외의 구멍에 들어가기만 하면 20개의 쇠구슬이 나오는 `올(All) 20'이라는 기종이 나와 파친코
붐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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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파친코 기계는 쇠구슬을 일일이 손으로 집어넣고 손잡이를 당겼다가 놓아 쇠구슬을 쏘는
수동식이었다. 새총을 뜻하는 `파친코'라는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쇠구슬을 잇달아 쏘는 연발식이나 모터를 이용, 핸들만 잡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구슬을 튕겨 주는 전동식이
잇달아 개발됐다. 1960년에는 쇠구슬이 `안전 구멍'에 들어가면 기계 중앙 아래쪽에 붙은 튤립 꽃잎 모양의 받침이 양쪽으로 벌어져
구슬을 받아들이고 10배를 내보내는 튤립식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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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나온 `디지파치'(Digital Pachinko의 일본 약어)는 파친코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그때까지 파친코는 안전 구멍에 쇠구슬을 넣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디지파치는 이를 추첨 자격을 얻는 기본 절차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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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구슬이 제대로 구멍에 들어가면 3열의 슬롯 머신풍 드럼이나 숫자판(디지털)이 돌아가다가 정지하는 추첨이
시작된다. 동일한 숫자나 그림이 수평 또는 빗금으로 정렬하면 오아타리가 되고 어태커가 열리는 방식으로 이는 지금도 파친코의 기본형이 돼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피버'(Fever) 기종이 등장, 사행심에 불을 질렀다. 특정 무늬와 숫자로 당첨되면 추가로 2회의 당첨이
보장되고 그 사이에 다시 그런 숫자그림으로 당첨되면 계속 당첨 횟수가 연장된다.
이때는 드럼이나 숫자판의 회전이 빨라지는 시간단축 기능, 당첨 확률이 크게 높아지는 확률변동 기능이
동시에 작동한다. 튤립이 수시로 열려 구슬이 들어갈 때마다 5배로 뱉어내기 때문에 구슬의 낭비도 없다. |
1990년대 중반에 프리페이드 카드를 이용한 `CR'(Card-Reading)기종의 등장으로 파친코의 도박성은
더욱 커졌다.
숫자그림의 종류를 15종에서 14종으로 줄이는 대신 절반을 다음 당첨을 보장하는 고확률 무늬숫자로 배치했다.
연속 당첨을 감안, 당첨 확률은 330~380분의1 정도로 낮아졌지만 동시에 대박의 가능성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