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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명산 내장산은 암릉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팔방미녀 산이다.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으나 암릉미의 극치를 이룬 건 단연 서래봉이다.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고 해서 서래봉이며 내장산 산행에서 가장 인기 있는 봉우리 중 하나다. 아래에서 보면 써레처럼 바위가 길쭉하게 생겼으며 드문드문 틈이 벌어져 있다. 이렇듯 보기에는 험산이지만 국립공원답게 정비가 잘 돼 있어 막상 오르면 위험한 데는 없다.
산행은 일주문에서 서래봉으로 올라 능선을 따르다 불출봉 지나 내장사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내장산 아홉 봉우리 중 가장 전망이 좋다는 두 봉우리를 모두 오를 수 있고 원적계곡으로 내려오며 진한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라 해도 능선은 단풍의 색깔이 선명하지 않고 일찍 진다. 사진에서 본 대부분의 내장산 가을 풍경은 내장사 인근의 계곡 풍경이다.
단풍의 하이라이트는 서래봉과 불출봉에서 산 아래 계곡의 단풍이 물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과 원적계곡 단풍 아래를 직접 걸으며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풍철에는 굳이 내장산 여덟 봉우리(월령봉은 비법정 구간)를 종주하느라 하루 종일 땀 빼기보다는 내장 9봉의 핵심인 서래봉과 불출봉만 올랐다가 계곡의 단풍을 느리게 즐기는 게 내장산을 더 맛있게 맛보는 방법이다.
산행은 일주문에서 시작한다. 오른쪽 벽련암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이 들머리다. 포장된 길을 꼬불꼬불 올라 벽련암에 닿으면 오른쪽 화장실이 있는 계단으로 오른다. 흙을 밟는 산행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일주문의 고도는 219m, 벽련암은 334m, 서래봉은 624m다. 벽련암에서 고도 300m만 올리면 된다. 그러나 산세가 가팔라 길은 사면을 직선으로 올라치지 못하고 굽이굽이 꺾어 오르도록 되어 있다. 법정 등산로를 지키는 착한 산객들은 앞사람을 따라가지만, 내장산을 제법 다녔다는 사람들은 서래봉을 약간 다르게 오른다.
커다란 바위에서 길이 왼쪽으로 꺾는 지점이 있는데 여기서 바위를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다. 서래봉 바위를 제대로 맛보려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코스로 서래봉 암릉의 처음부터 탈 수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뚜렷해 비등산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파른 자갈너덜을 직등으로 오르는 화끈한 길이다. 능선에는 서래봉의 성벽 같은 바위가 있다. 아래에서 보면 어찌 올라가나 싶지만 살펴보면 홀드가 충분한 크랙이 있다. 그러나 산행 초보자가 동행하기엔 무리일 수도 있다.
크랙을 오르면 널찍한 마당바위가 있어 땀 빼며 올라온 수고로움의 보상을 한방에 다 갚는다. 서래산 바윗길은 마당바위 같은 데가 곳곳에 있어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경치를 자주 볼 수 있다. 고정된 쇠사슬을 붙잡고 벽을 내려와 다시 오른다.
몇 번을 오르내리면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바위 사이 안부를 만난다. 다시 오르면 서래봉의 대표적인 넓적바위인, 정상이다. 북쪽의 정읍 풍경도 좋지만 절벽 아래로 펼쳐진 남쪽의 내장사계곡 단풍을 바라보는 게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서래봉의 남은 암봉들은 워낙 뾰족하게 솟은 통에 철계단은 우회하도록 길이 나있다. 능선을 이어가면 서래약수를 만난다. 서래약수는 갈수기에는 물의 양이 적고 수질이 안 좋다. ‘음용수로 부적합하니 음용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다.
불출봉이 가까워 오면 다시 암릉이 나타난다. 여긴 그나마 나무데크로 계단을 깔아 편하다. 서래봉보다는 경사가 덜하다는 뜻이다. 불출봉 정상은 바위 위에 나무데크를 깔아 놓았다. 여기서 내장사 쪽을 바라보면 예쁘장하게 패인 원적계곡이 발아래에 있고 북동쪽으로는 산등성이가 겹쳐 있어 첩첩산중인 듯 경치가 새롭다.
불출봉을 내려서서 능선을 버리고 불출암터를 지나 내려가면 원적계곡이다. 계곡길은 내장사로 연결된다. 능선에서 단풍을 멀리서 봤다면 아래에서는 머리 위로 펼쳐진 형형색깔의 단풍을 즐기게 되어 있어 진짜 단풍놀이가 시작된다. 내장사는 자연과 워낙 조화로운 절이라 절도 자연의 일부 같다. 절 앞으로 108나무 길이 있고 우화정의 환상적인 가을 풍경에 젖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