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기행의 기본인 숨은 명소를 찾기위해 본인의 거주생활권인 대구광역시 행정구역중 유일한 군지역인
달성군이 아무래도 그러한 크고 작은 역사유적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어 읍면지역별로 조사를 한 후 기행계획을
세워 1차로 달성군 하빈면에 대한 마이크로기행을 시작했습니다^*^
지하철2호선을 타고 문양역(종점)에 내린후 바로앞 시내버스정류소에서 육신사행 성서2번을 타면 종점인 육신사
에 통상 15분이면 도착합니다(13개 정류소) 단,육신사행 성서2번은 하루 8회운행하므로 운행시간표 확인필요!
본인은 문양역앞에서 12:30에 성서2번을 타고 육신사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도 하고 역사유적 세군데를 느긋하게
꼼꼼하게 열심히 사진찍으면서 휴식을 취하면서 거북이처럼 도보로 탐방하고 육신사출발 18:14 성서2번버스를
타고 대구시내로 Go!! 나름 아주 즐겁고 뜻있는 역사탐방이었습니다^^
이 세곳은 모두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위치한 숨은 역사유적으로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도보하이킹
으로 탐방하기 아주 좋은 기행코스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물론 개인차량을 타고 둘러보면 편하겠지만 도보하이킹을 좋아하는 분이라도 김삿갓 방랑하듯이 편안하게 탐방
할수 있으며, 탐방코스는 육신사-~달성 삼가헌~낙빈서원으로 해도 좋고 그 반대로 해도 상관없습니다^^
#육신사(주차장)~달성 삼가헌간 거리 : 500m, 달성 삼가헌~낙빈서원간 거리 : 200m
(탐방코스)
육신사(사육신 사적공원)~달성 삼가헌고택~낙빈서원
#순천박씨 후손들이 지은 건축물
달성 삼가헌(三可軒)/충효당(忠孝堂)/금서헌(錦西軒)/도곡재(陶谷齋)/낙빈서원(洛濱書院)/추모재(追慕齋)
#박일산(朴一珊 : 박팽년의 손자)리 세운 99칸 종택과 묘골의 변천
박일산이 묘골에 입향하여 지금의 육신사일대에 99칸의 종택을 지었으나 임진왜란때 왜군의 방화로 소실되고
종택동편에 세운 정자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이것이 보물제554호로 지정된 태고정이며, 집전체는 흥자형으로
배치되어 안채,점화루,정자,창고,행랑채,곳간 등이 가득 들어서 있었으나 현재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이는 18세기말 박씨가문의 종손이 벼슬을 받아 충주로 이주하자 문중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자연스레 쇠퇴
하게 되고 태고정과 ㄱ자 안채만이 남았는데 이 안채는 종택철거후 있었던 10여호의 살림집중 하나로 여겨지며
태고정과 관계가 없다고 하나 묘골마을의 여러 안채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어 주목가치가 있습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으로 육신사가 건립되었고 지금은 대구광역시,달성군,육신사보존회,종친회,지역유림 등의 관심과 협력으로 유물관 건립과 한옥복원사업 등 유적지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옛 묘골을 재현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충효위인 학습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사육신을 육신사에 모시게 된 경과
절의묘 사당>하빈사 사당>하빈사가 낙빈서원으로 승격>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다시 재건
>1974년 육신사 건립>1981년 나머지 건물들 보완
#사육신(死六臣) 존호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매죽헌 성삼문(梅竹軒 成三問)/백옥헌 이개(白鈺軒 李塏)
단계 하위지(丹溪 河緯地)/낭간 유성원(浪玕 柳誠源)/벽량 유응부(碧梁 兪應孚)
1.육신사(六臣祠)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때의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처음 사당을 지을때는 충정공 박팽년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지냈으나 선생의 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부터 나머지분들의 음식도 장만하여 함께 제사지내
왔으며 하빈사를 지어 제사지내다가 숙종20년(1694) "낙빈(洛濱)"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고,
고종3년(1866) 서원철폐령으로 낙빈서원이 철폐되자 제사를 지내지 못하다가 유림들이 그 자리에 다시 사당을
세워 사육신을 봉안해 왔으며 1974~1975년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했고 2003년
부터 2011년까지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들을 복원하였습니다.
(육신사는 사육신관련 사적공원인데 왜 이름을 "육신사"라고 했는지 생각해 보니 본인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미
서울에 "사육신 역사공원" "사육신 사적공원"이 존재하고 있어서 이와 구별하기 위한 작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적공원내에는 사육신기념관, 충효당, 도곡재, 육신사(숭정사,충의사,태고정,송산 박준규 생가터), 순천박씨
집성촌,묘운(카페),삼충각이 있고 뒷산에 육신사숲길이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1)사육신기념관
*사육신기념관 외부전경과 내부모습
*박팽년 선생의 영정과 기록물들
*박팽년 선생의 시첩을 모아 7대손 통훈대부행 금산군수 박숭고가 기록하여 건립한 시비(詩碑)
*순천박씨 집성촌 전경(모형)
*사육신의 제사장면
2)삼충각(三忠閣)
"1456년 단종께서 손위하심에 박 충정공 휘 팽년께서 순절하시어 1755년 영조께서 사손의 집에 충신지려라고
정려하시고 1831년 순조께서 부 충정공과 함께 순절한 진사공 휘 순과 그의 아들 사복시정공 휘 일산 유복손이
자수한데 대해 아울러 정려를 명하셨다. 1834년 영남관찰사 안동인 김양순이 묘골을 순행하여 사육신 사당을
참배하고 3세에 걸친 정려는 성조에 보기드문 은전인데 어찌 실적을 기록한 비가 없어서 되겠느냐?
71주의 수령에게 비 세우는 비용을 돕도록 하였고 후임관찰사 달성인 서희순이 이일에 힘써서 선비들과 상의
하고 각 읍에 통첩하여 많은 협조를 얻어 1835년 사복시정공의 유허인 묘골에 비를 세우게 되었다"
삼충각의 비각은 정측 한칸의 익공집이며 맞배지붕으로 높이는 약 4m이고 비석은 전면에 순천박씨 3세 정충
기실비라 쓰여있고 오석으로 높이 1.7m, 폭 0.6m, 두께 0.3m이며 홍문관 교리 박승현이 비문을 지었다.
*삼충각과 비문의 전경
3)카페 묘운(妙雲) : 한옥식 카페(영업시간은 11:00~20:00)
4)명경지담(明鏡之潭)
마음을 비춰보는 맑은 거울이란 의미로 충효당의 누마루에서 마당을 거닐다 내려다보며 사색하기위한 박은 못
5)충효당(忠孝堂)
인조22년(1644) 충정공 박팽년의 7대손인 금산군수 박숭고 선생이 별당으로 건립한 후 충효당으로 이름을 바꿔
청년에게는 예와 음악,궁도,미술 등을 실습시키고 부녀자에게는 법도를 가르쳤던 곳으로, 1916년 후손 박최동이
중수했으며 본래 정면5칸, 측면2칸의 목조 와가의 팔작집이었는데 오랜시간 돌보지않아 건물이 무너지려고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후손 박우순 선생이 묘골마을입구에 다시 옮겨와 세웠으며 돌출된 누마루를 부설하여 현재의모습을 갖추었습니다.
6)육신사 전통한옥(한옥체험을 할수 있음)
7)도곡재(陶谷齋)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
박팽년 선생의 14대후손 서정공 박문현이 1798년 건립한 것으로, 1900년대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되면서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불렀는데 원래 솟을 대문을 세우고 정면 4칸, 측면 단칸인 건물로 태백산지역 재실
(증,묘에 있던 전각이나 유생들이 공부하던 집으로 재각으로도 불림)의 일반적인 사랑채형태였으며, 그후 툇간
(집채의 원칸에 잇달아 붙인 물림칸)을 달아내고 대청을 넓혀 높은 다락집처럼 꾸몄습니다.
각 방의 뒷벽에는 기둥밖으로 조그맣게 달아낸 개흘개가 설치되었고,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납도리(민도리:기둥
과 기둥위에 건너얹어 그위에 서까래를 놓는 나무)를 돌린 팔작집으로 소박한 구조를 보이는 건물입니다.
(아래 나머지 2개의 건물은 안채입니다)
8)순천박씨 집성촌 전경
옛날에는 상당히 큰 마을이었으나 점차 현대로 오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가면서 현재 30여가구가 거주중임
9)육신사
(육신사 정문)
(홍살문/충정공 박선생 추모비/제13~15대 국회의장 송산 박준규 생가터)
(성인문과 사육신 위패를 모신 숭정사)
(충의사와 문민공 간석당 박선생 유적비)
#태고정(太古亭) : 보물 재554호
조선 성종10년(1479) 사육신중 한사람인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정자로, 원래는 종가안에 붙어있던 별당
건물이었는데 선조25년(1592) 임진왜란때 불타서 일부만 남아있다가 이를 광해군6년(1614) 다시 지었습니다.
현재 대청에는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 정유재란후 이곳에 온 명나라 선무관이 남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앞면4칸, 옆면2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각가 두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꾸몄고 서쪽에는 온돌방과 부엌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궁이만 두는 정자건물에서 부엌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태고정은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가구나 세부가공이 정교한 편이며 조선전기 건축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달성 삼가헌 고택(三可軒 古宅)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15
*육신사 주차장 길건너편 이정표에 '삼가헌고택까지 0.5Km(500m)'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길건너 조금 걸어가면
왼쪽으로 아주 낮은 동산고갯길이 있어 가볍게 넘어가면 작은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100m쯤 계속 가면 오른쪽
으로 삼가헌고택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옵니다.
1)삼가헌고택 안내도
2)대문채와 대문채 왼쪽에 있는 화장실과 간이부엌
3)앞마당 전경(사랑채와 오른쪽에 문간채가 보임)
4)사랑채
5)문간채
6)안채(문간채 안쪽에 있음)
7)하엽정(荷葉亭)과 연지
삼가헌고택의 별당으로, 원래 파산서당으로 쓰던 일자형 건물을 1874년 ㄱ자로 돌출된 누마루 한칸을 늘여붙여
지금의 모양으로 다시 지었는데 연당에 연꽃이 만발하는 여름날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감상하는 연지의 풍경
은 그야말로 절경입니다!
8)파산서당
3.낙빈서원(洛濱書院)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795
*삼가헌고택에서 안쪽길을 따라 200m정도 들어가면 낙빈서원이 나옵니다.
숙종5년(1679) 창건된 서원으로, 최초 하빈사를 세워 사육신을 모셔오다가 숙종17년(1691) 별묘를 지어 봄과
가을에 향을 사르고 제사를 올리게 되어 이 사당을 낙빈서원이라 하였으며, 숙종원년부터 대구의 유생들이
춘추로 조두(곡식)을 올린 이 서원은 고종3년에 내려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없어졌습니다.
그후 유림에서 1924년 원래의 서원터에 사당을 다시 세웠는데 정면4칸, 측면1칸으로 된 팔작집이며 흙으로
구워 만든기와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