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과 듣고 눈물…역할극으로 가정폭력 상처 보듬어
최영지 기자 2013-12-10 19:32:01
얼마 전 MBC 김주하 기자가 가정폭력 탓에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아나운서로 입사해 승승장구한데다 기자로 전직한 후 심야 뉴스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해왔던 터라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잘 배운 사람이 가정폭력 피해자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어떻게 참고 견뎌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정폭력을 대하는 세상의 시각은 엇갈린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이거나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등이다. 부산여성폭력예방상담소 홍명희 소장은 "맨 처음 대응이 중요하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폭력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여성폭력예방상담소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일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사이코드라마 실습이 마련됐다. 기자도 직접 참여해 사이코드라마의 진행 과정을 겪었다.
■ 워밍업으로 어색함 없애기
이날 교육은 부산사이코드라마연구소 '비움&채움' 김헌성 소장이 맡았다. 그는 20여 명의 참가자에게 우선 서로 손등을 비비며 인사를 나누도록 했다. 처음 본 사람과 손등을 마주치려니 많이 어색해했지만 '손등 정도야' 하고 넘어갔다. 그다음은 어깨, 다음은 발바닥을 서로 비비라고 했다.
김 소장은 "약간의 접촉으로 어색함을 없애는 단계다. 이 단계가 잘 진행돼야 마음이 풀어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두 겹의 원을 만들어 안쪽 원의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바깥쪽 원의 사람들이 옆으로 한 칸씩 이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여행, 싫어하는 사람, 최근 화가 났던 일 등을 1분 동안 이야기하도록 했다.
■ 주인공 정하고 역할 지명하기
사이코드라마에는 주인공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할 사람은 스스로 나서야 한다. 다른 이에게 이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 누가 있을까 싶었는데, 3명이나 손을 들고 나섰다. 셋 중 누가 할지도 셋이서 정해야 한다. 그중 한 30대 여성이 하기로 했다. 그녀는 가족 간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주인공이 자신의 보조자아를 고르고, 나머지 가족 역할을 맡을 사람을 골랐다.
김 소장은 "주인공이 자신의 가족 역할을 맡을 사람을 고를 때는 그 사람이 자신의 가족과 어느 부분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주인공은 복잡한 가족사를 자신이 항상 이해하려고만 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아버지, 어머니 등을 참가자 중 지명했다.
■ 큰 소리로 감정을 드러내고 화해하다
주인공의 가족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주인공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모두 처음에는 의자에 앉은 채 등을 주인공으로 향하게 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속 말을 있는 대로 꺼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강력한 비난의 말을 쏟아내지 못했다.
놀라웠던 것은 주인공이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자 이를 지켜보던 다른 참가자들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눈가를 빨갛게 물들이며 주인공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오고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김 소장이 주인공을 독려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일은 당신이 사과받을 만하다고 지속해서 응원해주자 그제야 신문지로 만든 막대기로 의자를 부서지라 내리치며 주인공이 감정을 토해냈다.
김 소장은 "목소리를 크게 해야 감정이 바로 드러난다. 그래서 역할을 맡은 사람이나, 주인공에게 계속 큰 목소리로 말하도록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 정리와 감정 나누기
마지막은 가족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깨와 팔을 두드리며 살짝 쓸어내리는 행동을 하며 자신이 그 캐릭터가 더는 아님을 선언한다. 그리고 주인공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게 한다. 대신 참가자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게 해 사이코드라마가 잘 끝났음을 알린다. 이번 사이코드라마는 성공적이었을까.
김 소장은 즉답 대신 "주인공이 마지막에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되레 질문했다. 생각해보니 주인공은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을 다 들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했다"며 눈물을 닦았다. 이번 사이코드라마가 주인공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까.
김 소장은 "물론이다. 좋은 상담자로서도 이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이 해결되어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치우침 없이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코드라마를 경험해본 상담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론으로 배우는 것 보다도 한 번 해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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