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9 - 야마가타성을 나오면서 하나가사 마쓰리등 여러 축제를 떠올리다!
11월 5일 일본 북서부 야마가카현의 야마가타역 서구의 호텔을 나와 10여분을 걸어서 가조공원 에
도착해 해자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 야마가타성 으로 들어가 성벽과 혼마루 (本丸)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발길을 돌려 새로 중건한건지..... 문이 거의 온존한 형태로
남아있는 동문 을 빠져 나가서는 다리로 해서 해자 를 건넙니다.
이 홍예교 형식의 나무 다리를 자전거 를 타고 멈추지 않고 바로 지나가려면
자전거 타기에 상당히 숙달된 실력 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 해자 건너편은 나무가 우거진 숲인데 거기에 바위 배치가 멋진 연못을 갖춘
건물이 있으니..... 바로 번주 모가미 요시아키(最上義光) 역사관 입니다.
모가미 요시아키 (最上義光) 는 데와국 모가미 가문 출신으로 11대 당주가 되어
후일 사타케 요시노부 대신에 야마가타번 초대 번주 가 되었던 인물 입니다.
모가미 요시아키 는 전국시대 말엽인 1571년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 을 물려받았으나
4년후 가독 상속 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였던 동생 요시토키를 죽이게 됩니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반항적인 가신단을 토벌 하고 권력을 강화하였으니 오슈에 등장한
강력한 패자 다테 마사무네 가 도요토미 가에 복속 되자 요시아키 도 뒤를 따릅니다.
1594년 히데요시에게 아들 이 태어나면서 후계자로 삼았던 조카 히데쓰구 에게 할복
명령을 내릴때 히데쓰구 의 첩이 요시아키의 딸 이어서 용서해 줄 것을 탄원합니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거부하여 딸이 죽게 되자 모가미 요시아키 는 격분 하여 등을
돌리고는.... 이후 에도의 야심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히데요시가 죽고 1600년 18만 대군이 격돌한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다테 가와 연합 하여
우에스기군 과 맞서 싸운 공적 으로 1601년에 57만석의 야마가타 다이묘 로 봉해집니다.
이시다 미쓰나리 는 아이즈번(후쿠시마 서부) 우에스기 씨 가 남하해 에도(도쿄) 의
도쿠가와 본국을 쳐 줄것 을 기대했는데.... 정작 우에스기군 은 서북쪽에
모가미군 과 동북쪽에 다테군 이 배후를 위협하자 남쪽으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지요?
모가미 요시아키 는 1603년 자신에게 반항적이던 장남 요시야스를 할복 시키고
차남 이에치카 를 후계자 로 내세우니 그가 야마가타번을 계승 하게 됩니다.
조슈번이나 사쓰마번 처럼 260여년간 번주 가문이 바뀌지 않는 번도 많이 있으나....
모가미씨 후손 은 내부 다툼 으로 막부에 의해 쫃겨나니 이후 주인이 자주 바뀝니다.
야마가타번 은 도쿠가와 막부 요직에서 밀려난 중진이 좌천당하는 번 이 되어 메이지 유신 까지
무려 12명의 신판과 후다이로 주인이 바뀌게 되니 아이즈번 보다 더하다고 하겠습니다.
야마가타번 은 1868년 메이지유신 보신전쟁 때에는 무쓰나 에치고의 여러 번과 동맹 을
맺어 바쿠후(막부) 측 을 도와 조슈나 사쓰마등 천황(일왕)파 신정부군 과 싸웠는데....
직후에 이웃 사타케 집안이 배반 하고 다른 번들도 하나하나 격파되니 패한지라....
전후에는 사카이ㆍ우에스기 등의 집안과 더불어 영지가 대거 삭봉 되게 됩니다.
그러고는 다시 동문 으로 들어서서 성 안으로 들어와서는 야구장을 끼고 성을 한바퀴 돌기로
하는데..... 북문 밖을 잠시 살펴보고는 성벽을 따라갑니다. 야마가타성 내에는
발굴을 하는 곳이 있어 잠시 살펴보고는 계속 걸어서 남문 으로 해서 야마가타 성을 나옵니다.
야마가타는 8월 초순 3일간 열리는 하나가사 축제 (花笠まつり) 가 열리는데 하나가사( 花笠) 퍼레이드
는 자오 여름 마츠리의 이벤트 중에 하나였으나...... 1965년 부터 단독으로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1993년 부터는 시민 참가형의 축제 로 크게 변모하게 되었으며 8월 5, 6, 7일의 3일간...
야마가타의 여름을 수놓는 동북지방을 대표하는 마츠리로 100만명이 참관 한다나요?
오후 6시 부터 3시간동안 구호와 花笠太鼓 (화립태고, 꽃사깟쓴 여인과 큰북)
의 웅장한 음색과 화려하게 치장된 마츠리 山車(산차) 를
선두로 하여 화려한 의상과 花笠(화립) 을 손에든 무용수들이 군무 를 펼칩니다.
야마가타현에는 야마가타시의 하나가사 마쓰리 말고도 유명한 것은 요네자와시에 우에스기 축제 가 있으니
우에스기신사의 봄철 축제로 4월 29일부터 닷새간 가마를 중심으로 갑옷을 입은 무사들을 볼수 있는데
우에스기 겐신의 출전 의식이 펼쳐지며 가이국 다케다 신겐과 5차례 싸운 가와나카지마 전투 가 재현 됩니다.
야마가타현 신조시에서는 매년 8월 24일부터 3일간 신조 축제 를 벌이니 250여년전 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름 축제로 가부키의 역사이야기의 명장면을 재현하면서 만든 산차가
거리를 질주하며 산차 퍼레이드 다음은 하 기노, 나타아마시의 춤 등이 잇따라 펼쳐집니다.
사카타시에서는 5월 19일부터 사흘간 사카타축제 를 벌이니 히에 신사의 “아마오우 마쓰리” 로 오래
전인 1609년부터 이어져 온 축제로 시시마이와 도교 행열에 사카타시의 심볼인
오오지시라 불리는 산차 가 퍼레이드를 벌이고 그와 여러 종류의 가마 와 산차가 그 뒤를 따릅니다.
매년 2월 상순에 자오 온천 에서는 수빙 축제 가 벌어지며 스키스쿨, 인스트랙트
의 퍼포먼스와 불꽃 축제 그리고 가위바위보 대회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또 여기 야마가타시 에서는 매년 9월 첫째주 일요일에 일본 최대라는 이모니 페스티벌
이 벌어지니..... 직경 6미터 무게 3톤의 거대한 솥에다가 3만명 분의
이모니(토란탕) 를 끓인다고 하는데... 야마가타시 마미가사키 강변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야마가타를 구경하면서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30명 에 이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다가 문득 동아일보
‘오늘과 내일’ 칼럼에 박형준 산업1부장이 쓴 “괴짜 기초 과학 연구도 지원 해야 하는 이유,
노벨상 받은 日 과학자들의 공통 주장, 100년을 보고 기초과학에 투자 하라”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는 ‘오스미 기초과학창성재단’ 이란 공익재단이 있다. 홈페이지에 밝힌 연구비
지원 기준은 3가지. 선견지명과 독창성 이 있는 기초과학, 국가 지원을 받기 힘든 기초과학,
정년 등으로 인해 계속 연구하기 힘든 기초과학이다. 즉, 돈 안 되는 괴짜 연구 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재단을 2018년에 설립한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를 지난해 1월 인터뷰하며 이유를 물었다.
“재미있는 연구를 하지만 연구비가 부족한 사람을 돕는다. 도전하는 이를 지원하자는 취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유망 분야를 선택해 지원한다. 하지만 과학은 1000엔
을 투입했다고 반드시 1000만 엔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며 정부 지원책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오스미 교수 는 효모 세포를 이용한 ‘오토퍼지(Autophagy· 자가 포식)’ 연구로 2016년 노벨 생리
의학상 을 단독 수상한 일본 생물학의 권위자다. 도쿄 특파원 시절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3명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의 주장이 묘하게 일맥상통 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과가 나올 것 같으니 연구비를 지원하자’ 라는 식으로 과학을 육성할 수 없다. 과학에선 실패의 경험 도
쌓이면 지식 이 된다. 결코 낭비가 아니다. 노벨상 수상 연구도 의외로 ‘우연한 발견’ 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곧바로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등 인류의 기초 지식을 풍부하게 해준다. 한 국가가 가진 역량의
종합판이 기초과학 이다. 실용화 까지 100년이 걸릴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셋째, 일본이 노벨상 강국 이 된 것은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서 일어서려면 과학에 승부 를
걸어야 한다’ 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당시 시작한 연구가 지금의 노벨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런 노력이 노벨상 수상자 30명으로 이어지니 평화상 한명 에 불고한 한국과 다른점 입니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을 보면서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과 진행했던 과거 인터뷰를
떠올렸다.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16.6% 줄였다. 기초연구 예산의 경우 6.2%
삭감했다. 과학계 연구비 카르텔을 깨부수고 핵심 전략기술을 중점 육성 하겠다는 정부 설명에 동의
한다. 하지만 예산 절감이란 이익보다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오스미 교수는 1970년대 부터 효모 연구 를 파고들었다. 당시 다른 과학자들은 효모에 별 관심
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오토퍼지 현상을 주목 하고 있다.
암, 알츠하이머병 같은 노인성 질환 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을 약 50년 연구 했더니 이제 실용적인 성과를 기대할 만한 단계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와 인터뷰 하며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유망 과학 분야와 오스미 기초과학창성 재단이 지원
하는 새로운 과학 분야 중에 어느 측이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으냐” 며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 신문에 소개하지 않았던 답을 그대로 옮긴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내 사례를 보면 오토퍼지라는 새로운 분야 를 개척하는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새 연구 를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효과
가 있을 것 같으니 지원한다’ 고 하면 과학은 육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 시키는 기초연구 까지 지원하는 게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