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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55)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7월 10일 국내 행사에 참석하여, "출산율 최저, 자살률 최고 등 한국의 각종 지표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수준"이라며 현 정부의 산업·경제에 대해 비판했다. 장 교수는 글로벌 베스트셀러『사다리 걷어차기』,『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책을 쓴 경제학자로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마련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의 대담에 참석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 동생인 장 교수는 이날 현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선 그는 "한국 경제는 지금 비정상이다. 기업의 혁신과 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가족 지배를 없애고 싶다는 이유로 삼성·현대차 같은 국민 기업을 엘리엇 같은 투기 자본에 넘겨주려는 건 큰일 날 짓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은 중국에 잠식당했고, 제약·기계·부품·소재 등 유망 산업은 선진국 장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1위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는 일본·독일서 수입하고 있다."고 "과거 고도 성장기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기준 경제성장률이 6%가 넘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2~3%대로 떨어졌다"며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럽지만, 이 같은 급격한 하락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정체 원인을 주주자본주의(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주주중심주의) 도입에 따른 기업의 투자 감소에 있다고 봤다. 그는 “‘외환위기’ 이전 14~16% 수준이던 국민소득 대비 설비투자 비율이 7~8%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며 "고(高)배당을 요구하는 단기 외국인 주주들 때문에 대기업의 장기투자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는 현 정부가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지주사는 과거에 불법이어서 기업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순환출자라는 재주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며 "어렵게 만들어놨더니 다시 지주사로 전환하라면서 기업의 존폐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교수들이 만든 이론에 목을 매며 왜 우리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느냐. 지금 중요한 게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기업을 일구고 있고, 포드 가문은 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창업자와 정부, 노동자 등이 복합적으로 소유한 구조"라며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으며 수단일 뿐이다. 목표는 기업이 혁신과 사업 다각화, 신산업 진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 주주에게 가중의결권을 주거나 자본 이득세를 감면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분야별 차등·금액 등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며 "그러나 물만 부어 놓고 펌프질을 안 하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 교수는 7월 17일 <최저임금제> 논란을 두고서도 쓴소리를 했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나쁜 사마리아인들―불온도서 지정 10년>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이날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자영업자의 아우성이 엄살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최저임금이 논란이 되는 건 단순히 자본가들이 마음이 나쁘거나 재벌들이 많이 빨아먹어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사회의 근본적인 구조 문제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세금을 걷어 복지정책으로 격차를 메워주기 전의 소득분배를 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제일 평등한 나라이지만 재분배 이후 수치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평균 이하가 된다"면서 "말하자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복지가 해야 할 역할을 많이 담당해 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 "소매업·서비스 부문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그런 부문은 대기업에 맡기고 복지 지출을 늘려서 생계형 자영업을 하지 않아도 기본 생활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구조적 문제를 보지 않고 '왜 너희는 말도 안 되는 임금을 주고 장사하냐. 엄살 아니냐'고 영세 자영업자에게 이야기하면 그걸 받아들이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선진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평균 12% 정도인데 한국에선 25% 이상이 자영업자다. 치킨집·편의점 하는 사람들이 자기 착취를 해도 생산성이 낮은데, 최저임금을 올리라고 하니 부담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자본가로 만들어놓고 '최소한 이 정도 임금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문제가 된다.”고 했다.
실제 각종 경제지표나 여러 현실적인 정황으로 볼 때 나라 경제 곳곳에서 적신호(赤信號)가 켜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 입안자들이나 경제를 이끄는 관료들은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충언(忠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 [오늘의 산행지] — 한강기맥 <청량봉>에서 분기한 ‘춘천지맥’의 능선 길
‘춘천지맥(春川支脈)’이란 한강기맥(漢江岐脈)의 홍천군 서석면과 평창군 봉평면 사이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로,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하뱃재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나아가 응복산(1,103m), 백암산(1,099m), 가마봉(1,192m), 소뿔산(1,118m), 가마봉(925m), 매봉(800m), 홍천 가리산(1,051m), 대룡산(899m), 응봉(759m), 연엽산(850m), 고깔봉(421m), 봉화산(515m), 새덕봉(488m)을 거쳐 경춘선 ‘경강역’이 있는 북한강 ‘춘성대교’ 앞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 <청량봉>은 바로 한강기맥에서 춘천지맥으로 분기하는 산봉이다. 우리의 산행은 율전의 하뱃재에서 춘천지맥을 타고 분기점인 청량봉 정상(頂上)에 오르고, 그 산줄기의 서쪽의 깊은 계곡인 <미약골>의 청정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여정이다.
* [산으로 가는 길] — 강원도 홍천의 깊은 오지(奧地)의 <청량봉-미약골>
우리는 서울 군자역에서 오전 7시 35분에 출발했다. 오늘의 산행지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의 깊은 오지(奧地)인 <청량봉>-<미약골>이다. 우리의 금강버스는 작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개통한 <서울-양양간고속도로>를 타고 쾌조의 질주를 했다. ‘동홍천’을 지나 <홍천휴게소>에 잠시 숨을 고른 뒤 계속 진행, 내촌I.C에서 내려와, 408번 지방도로로 서석을 경유하여 56번 국도를 타고, 율전의 하뱃재에 도착했다. 오전 9시 35분이었다.
서울-양양간 고속도로 <홍천휴게소>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공작산>
산으로 가는 우리의 금강버스(권용길 기사님)에는 김준섭 회장, 한영옥·장태임 부회장, 민창우 기획위원을 비롯하여 유형상·김재철 대장이 포진하고, 호산아·장병국·남정균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 오수정 님, 전진국·안상규·강재훈 님, 강완식·신시호 님, 그리고 정석희·신동희·김희태·유경 님도 함께 했다. 박현주 님, 하회탈의 선배님, 지평의 지기 강우신 님, 꽃구름 지기 이철호 님, 나천옥·이명자·장영서 님 등 많은 분이 동행하게 되었다. 특히 오늘은 권용길 기사님의 지기인 박창우 님과 친구 분이 처음으로 참여하여 매우 반가웠다.
* [산행의 들머리] — 국도 56번 도로가 넘어가는 하뱃재
오전 10시 50분, 하뱃재에서 오늘의 산행(山行)에 돌입했다. 하늘은 청정하고 원색의 햇살이 따갑게 쏟아지는 여름날이다. 청랑하고 화창한 날이다. 처음 산행이 시작되는 길을 가파르게 올라가는 경사로 이어진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는지 우거진 풀숲 속에 겨우 길을 찾아가야 한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땀이 나기 시작하지만 그렇게 가슴이 팍팍하지는 않았다. 산으로 일단 들고 나니 울창한 녹음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 태양의 불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더운 여름날이라도 일단 산에 들면 서늘한 촉감을 느끼며 산행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여름산의 매력’이다. 춘천지맥 <청량봉>으로 가는 능선 길은 바위가 전혀 없는 토산(土山)이요 완만하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덕산(德山)이다.
* [산행의 첫 구간] — 활엽수가 우거진 숲길,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
일단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난 후 완만하게 올라가는 능선 길에 접어들었다. 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한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길은 사람의 키에 육박하는 풀들이 빽빽하게 자라서 길을 덮고 있고,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지나는 길손을 괴롭혔다. 청량봉 산길은 특별히 춘천지맥을 종주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아주 울창한 수림(樹林)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활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오지의 산이다. 길이 외길이라 모든 대원들이 자연스럽게 열(列)을 지어 산행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약 30분 간을 꾸준하게 올라갔다. 장대한 소나무 사이로 남쪽의 깊은 산곡과 건너편의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에 따라오는 대원들을 기다리면서 잠시 숲 그늘에서 서서 휴식을 취했다. 상기된 대원들이 얼굴이 화사하게 빛난다.
* [춘천지맥의 울창한 숲 길] — 이정표도 없은 풀숲을 헤치고 오른 산봉
10시 34분,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산길도 깊은 풀숲, 울창한 수림 속을 지나가는 산길이다. 숲길의 경사를 가파르게 치고 오르다가, 다시 내려오고 평탄한 안부의 길목을 지나고,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그렇게 또 한 참을 걷다보니 뒤에 오는 대원과의 간격이 벌어졌다. 산길에 이정표도 없고 표지석도 없다. 한 산봉에 올랐다. 도면상의 908봉 쯤 되는 곳이다.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뜨거운 숨을 돌린다. 속속 도착하는 대원들의 얼굴이 초록의 숲 그늘에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선채로 쉬었다. 은은한 바람결을 느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울창한 숲, 활엽수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곱다.
* [미약골로 내려가는 갈림길] — 높다란 송신(送信) 철주
미약골로 가는 첫 갈림길이 있는 곳을 통과했다. 우리는 청량봉을 오르고 미약골로 내려가기로 했으므로 그냥 그대로 전진해 나아갔다. 한 여름의 숲은 더 짙어지고 풀들도 더욱 빽빽하게 길을 덮고 있었다. 오늘 청량산은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지만 울창한 숲길과 풀숲이 갈 길을 더디게 했다. 그렇게 숲을 헤치고 한참동안 오르막을 치고 올랐다.
* [정상을 향하는 발길] — 안부에서 정상을 오르는 몇몇 대원들
또 하나의 산봉에 도착했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송신탑이 있는 곳이었다. 산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청량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이다. 잠시 길을 잘못 들었지만 이내 바로 잡아 나아갔다. 산길은 여전히 풀숲으로 이어져 나아갔다. 아래로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나서 안부(鞍部)에 도착했다. 미약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이다. 일단 이곳에서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정상을 갔다 올 사람은 그대로 전전했다.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많은 대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전진국 님과 호산아, 박현주과 이명자 님이 정상을 향하여 길을 잡았다. 그리고 뒤을 이어 김준섭 회장과 강완식 님이 뒤를 따랐다.
* [청량산 정상에 오르다] — 한강기맥에서 춘천기맥이 갈라지는 분기점
울창한 풀숲을 헤치고 산행은 계속되었다. 이제 발길을 서둘렀다. 필자는 어제 문경의 <대야산>을 오르고 난 뒤라, 다리가 무척 무거웠다. 그러나 전체의 진행을 생각하여 빠르게 걷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이 가벼운 전진국 님이 앞서 나가고 이명자, 박현주 대원이 뒤를 따랐다. 정상을 향한 막바지 고비, 온몸의 옷에 땀이 범벅을 이루었다. 그렇게 약 30분을 올라가니 정상이었다. 울창한 숲속의 <청량산> 정상(1,053m), 거기에는 ‘한강기맥’에 관한 안내판이 녹슬어 있고 그 옆에 최근에 세운 듯한 스텐레스로 만든 정상 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청량봉은 한강기맥이 통과하는 산봉이고 춘천기맥이 분기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 주변의 나뭇가지에는 이곳을 지난 산악회의 형형색색의 리본이 많이 매달려 있었다. 우리 대원들은 다같이 모여 인증샷을 누르고 그대로 하산을 했다. 아래에 있는 대원들과 가능하면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 [정상에서 다시 내려오는 길] — 풀숲의 동자꽃 한 송이, 뒤늦은 점심식사
이제 올라왔던 산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는 길이다. 내리막길에서는 거의 뛰다시피 내달렸다. 숲 속 능선의 산길이라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동자꽃 한 송이가 풀숲이 외롭게 피어있었다. 조금 내려가다가 산길을 올라오는 유경 님을 비롯한 일군의 대원들을 만났다. 뒤늦게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우리 뒤에 아무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 거리이므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대로 내려왔다. 안부까지 내려오는 데는 20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왕복 한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안부에 내려오니 대부분의 대원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미약골로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지평 위원을 비롯한 신시호, 정석희 님 등이 점심을 먹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에게 일단 먼저 내려가기를 권했다. 정상에 다녀온 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는 갈림길을 알고 있으므로 지평 대장에게 먼저 내려가게 권했다. 식사 하는 동안 뒤에 정상에 올라간 대원들도 합석을 했다.
동자꽃
* [미약골로 내려가는 길] — 가파르게 쏟아지는 능선길
오후 1시 55분, <미약골>로 내려가는 산행에 돌입했다. 길을 아주 가파르게 아래로 내리꽂았다. 미약골은 동쪽의 춘천지맥의 산줄기와 그 맞은편 서쪽 산줄기 사이에 있는 계곡이다. 골짜기로 내려가는 능선 길은 무지막지하게 가파른 길이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오지의 산길이다. 길은 다행히 부드러운 토산(土山)이고 길목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아주 쾌적했다. 그렇게 약 30분 동안을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약골로 내려가는 길목
* [원시의 깊은 계곡, 미약골] — 홍천강의 발원지
오후 2시 30분, 물이 흐르는 계곡에 도착했다. 이제는 산길이 아니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처음의 깊은 계곡은 물이 많지 않았다. 이곳은 <홍천강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미약골에서 발원하는 홍천강은 북쪽으로 서석-내촌을 경유하고 난 후, 방향을 남서로 바꾸어 동홍천을 지나 홍천(읍)에 이르고, 이어서 금학산과 팔봉산을 굽이굽이 휘감아 돌면서 청평댐으로 유입되는 길고 긴 강줄기이다. 한강기맥과 춘천지맥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홍천군 모든 산곡의 물들이 합수(合水)하여 이루는 강이다.
홍천강이 발원(發源)하는 미약골의 깊은 골짜기
* [미약골, 오지의 깊은 계곡] — 짧은 시간에 맛본 차가운 물맛!
<미약골>은 있는 그대로 깊은 산골짝이다. 이름난 바위나 절경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깊은 소(沼)나 절벽이나 폭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산골짝 흔한 바위와 나무들이 뒤엉킨 원시성(原始性)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박한 계곡, 깊고 깊은 오지(奧地)의 계곡이다. 계곡을 넘나드는 너덜길과 오르고 내리는 산길이 험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계곡을 깊고 길을 길었다. 특별한 명소(名所)도 없고 흐르는 물의 양도 많지 않았으나, 바라만 보아도 서늘하고 맑은 물이다. 계곡의 아래로 내려오면서 수량도 조그씩 불어났다. 옷은 땀에 흠뻑 젖어 있고 몸은 뜨거운 열기로 휩싸여 있다. 그냥 물속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워낙 깊은 계곡이라 하산점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걸었다.
바위의 낙차가 크고 수량이 많은 <바위폭포>를 지나, 맑고 물이 제법 많이 고인 곳에서, 앞서 가던 전진국 대원이 걸음을 멈추었다. 거의 하산점에 가까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이다. 배낭을 벗어놓고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다. 물은 맑고 차가웠다. 뜨거운 몸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 미약골에 와서 맛보는 기막힌 물맛이다. 맑고 청정한 계곡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은혜로운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몸에 엉긴 땀을 씻어내고 뜨거운 열을 식힐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베푸는 생명력이다. 한여름,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깨끗하게 씻어진다.
* [산행을 마치고] — 복중(伏中)의 여름 산행, 원시의 숲과 계곡에서
56번 도로의 길목에 맞닿아 있는 계곡의 하산점은 <미약골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그 숲 속의 그늘에 ‘들마루’를 여러 개 시설해 놓았고 ‘해먹’도 매달아 놓았다. 앞서 내려온 대원들도 모두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모두 말쑥한 얼굴이다. 버스의 냉장고에서 수박을 가져와 들마루에서 갈랐다. 수박은 달고 차고, 아주 시원했다. 대원들은 산행의 열기와 피로를 물리고 신선한 수박을 나누면서 환담했다. 한 여름 복(伏) 중의 산행이었다. 아낌없이 땀을 흘리고 청정하게 물맛을 본, 상쾌한 하루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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