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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생 역사문화 답사 서귀포시 보목동 편
제주문화유산답사회 제354차 답사 ‘보목동(볼목리)를 알다.’ 라는 주제로 윤아 강영순 선생님의 안내로 답사가 시작되었다.
상견례를 시작으로 고미선님의 시인 한기팔님의 ‘보목리 사람들’이리는 시낭송이 보목마을 이야기를 다해주는 듯하였다.
보목마을은 제주문화유산답사회에서 2014년 가을 신당답사를 다녀왔었고 그후 몇 차례 다녀왔었는데 이번 답사처럼 마을 곳곳을 다녀본 것은 오랜만이다.
제주읍성에서 한라산 백록담을 지나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한 보목동은 1896년경 정의현 우면에 속한 곳으로 큰 마을이었다.
보목리는 볼레낭(보리장나무)이 많은 개(浦口)라는 데서 볼레낭개 또는 볼레남개라 불려오다 한자화 된 이름이 보목리(浦木里)이다. 현재도 볼목리로 부르는 이가 많다. 북쪽으로 신효리와 접해 있는 서귀포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해안마을이기도 하다. 한씨와 강씨의 집성촌으로 여름철에는 자리돔(자리물회)로 유명한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정술내를 중심으로 동동네와 섯동네로 나눠지며, 동쪽 끝 바닷가에는 제지기오름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앞 바다에는 섶섬은 국내 유일의 아열대 식물인 파초일엽 자생지이기도 하다.
1. 보목포구 (배개)
서귀포시 보목동은 원래 네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마을마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을 정하고 포구를 축조하여 ‘ᄉᆞ래개’ ‘구두미개’ ‘큰머리개’ ‘배개(배캐)’라 하였다.
보목 포구는 ‘배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남사록(南槎錄)』[1679~1680]은 보애목포(甫涯木浦)라고 하면서 병선을 붙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제주삼현도(濟州三顯圖)」는 지금의 ‘정술내’ 하류에 있다고 하였다. ‘배개’는 고깃배의 선착장으로 입지적인 조건이 좋아서 선박들이 정박하고 배를 매는 포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보목 포구 일대는 자리돔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연유로 이 고장 출신 고 현기팔 시인니믜 자리물회 시비가 세워져있다.
지역 특산 수산물인 자리돔을 주제로 매년 5~6월경 ‘보목 수산 일품 자리돔 큰잔치’라는 수산 관광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 보목포구 도대불
보목포구 도대불은 1937년경에 주민들이 축항공사를 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하단부가 넓고 상단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제주 현무암을 이용하여 사각형으로 다듬어서 층 쌓기를 하였다.
북쪽에는 3단의 계단을 위로 올라 갈 수 있게 만들었으며, 사용당시 마을 이장이 관리하였고, 불을 피울 연료는 복어기름을 사용하였고, 1960년대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3. 재지기오름 절터(수행굴)
제지기오름은 분화구가 없는 산방산처럼, 조면암질 화산암과 화산쇄설성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용암원정구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남사면은 매우 가파르고 소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커다란 조면 현무암 바위가 위용을 떨치며 드러나 있다.
오름 남쪽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보목포구를 향해 입을 벌려있는 듯 한 바위굴이 나다난다.
이 굴은 1930~1940년 경에 한 승려가 수도를 행하였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오름 중턱에 위치한 바위굴은 입구 쪽이 폭은 6~7m, 깊이 5m, 천정이 가장 높은 곳은 6m 가량으로 아치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바위굴속 바닥과 벽면은 후추등덩굴이 가득 뒤덮고 있고 가파르고 비탈진 입구는 잡목들이 우거지고 양옆으로도 벼랑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4. 보목마을 4.3성
보목리는 서귀포에서 가장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로 4.3당시 지리적인 여건으로 마을에는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나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경찰파견소가 들어서고 마을을 무장대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 부락민을 동워 마을주위 밭이 돌담을 운반하여 마을 주위에 3.5m 높이로 성을 쌓았었다고 한다.
4.3성은 제지기오름 선반에서 시작하여 혜관정사, 독그물, 노조기 입구를 거쳐 큰동산 현재 보목초등학교 남쪽 울타리로 구두미까지 2km나 이어졌고, 현재 보목초등학교 동쪽정문 부근에 제1초소를 큰동산 바로 옆에 제2초소를 설치하여 밤마다 보초를 세웠다. 이 때 마을에서는 17세부터 50세까지 조를 편성하여 매 시간마다 초소의 구간을 돌면서 경비를 철저히 했다.
당시 보목리에서는 놀이 3.5m 규모로 2km 길이의 城을 쌓았다. 그 성담의 일부가 1967년 항공사진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동동내의 성담이 상당부분이 남아 바다까지 이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보목리 4.3성은 제지기오름 서편에 주택과 밭이 경계담으로 남아있다. 이곳은 오름기슭이라 경사가 심해 오름쪽에서 보면 높이가 1m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성담서편에서는 상당히 높다. 현재도 도로확장 등으로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4. 보목동 본향 조노깃당(조노궤당,조노기당)
혜관정사에서 서쪽 보살길을 따라 남쪽으로 390m 올라가면 보목교가 나오고 다라 서쪽을 지나서 농사용 폐비닐야적장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당 입구에 노조깃당을 소개하는 안내판과 본향신을 상징하는 ‘조노깃한집바람웃도’ 조형물이 익살스럽게 서있다.
정술내(川) 계곡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우거져있어 계곡의 신비감을 준다. 이곳이 ‘조노기궤’라 불리는 바위굴 바로 ‘조노깃당’이다.
정술내를 건너는 좁은 시멘트다리는 마치 유명사찰로 들어서는 새심교를 닮아 있다.
예전에 이 궤 주변에는 ‘조래기낭, 조로기낭’(조록나무의 제주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나 조록낭은 안 보이고 수백년된 재밤낭(구실잣밤나무)이 바위굴 상단에 뿌리까지 들어내 놓고 자라고 있다.
정술내(보목천) 계곡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해 구실잣밤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이 곶자왈을 연상케 한다.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조면현무암을 병풍삼아 ‘신남밑할망당’을 조성하여 놓았다. ‘신남밑할망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골목어귀에 있었는데 불과 2~3일 전에 조성해 놓았다.
2008년에 마을 안에 '신남밋할망당'을 정비하여 당 입구에 오석 판에 당 이름을 붙여 놓았었으나 그 석판은 이곳으로 옮겨 달았고 마을 안에 있는 '신남밑할망당'은 지금은 찾는 단골이 없는 듯 쓰레기와 잡초 등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조노깃당 입구에는 우천시 치성을 치르던 당집이 있고 좁은 당 올레 위로 바위굴 입구가 보인다.
아름드리나무들과 어우러진 바위굴 입구에 나무문을 달아 놓았었으나 낡아 떨어져있고 그 바위굴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설수 있을 정도 높이에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바위굴 안에 예전에는 3단으로 높은 제단이 마련돼 있고 앞에 몇 개의 양초가 세워져있고 오른편에는 무구로 사용했던 동자바라를 비롯하여 놋쇠향로가 징속에 올려놓았다.
제단 뒤쪽으로 함실에 보목동 본향 조노깃당이 당신은 ‘조노깃한집바람웃도’와 ‘새금상또심’으로 부부신이 좌정하였다.
워낙 센 당이라 아무나 당을 매지 못하고 하효동 고태송 심방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왔었으며, 예전에 당팟 제지기오름 동북쪽에 좌정해 있었던 당은 하효동 무당 고태종씨 선조가 보목리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현재의 정술내 조노궤로 옮겨 왔다고 한다.
4. 마을의 무사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보목동 포제단
정술내 건너 혜관정사 북쪽 100m 과수원 앞 주변보다 높은 '포젯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나지막한 언덕위에 자리 잡은 포제단 울타리 시멘트 블럭으로 높이 1m가량으로 쌓고 시멘트로 미장하였다.
정문 출입구 말고도 제단 양옆과 오른쪽 아래쪽에도 좁은 출입구가 세 곳에 나 있는데 특이하다.
제단울타리 왼쪽에 아름드리 곰솔 2그루와 제단 뒤쪽으로 참식나무 2그루가 병풍처럼 서있고, 높이 1m 정도의 제단은 시멘트 위를 대리석 판석으로 마감하였고, 앞쪽 길이 256㎝, 폭 160㎝, 높이 62㎝의 비교적 크게 만들었고, 상성 중앙 뒤쪽에는 신위를 붙일 수 있게 오석으로 만들어 세웠다.
보목동 포제는 정포제(正酺祭 라 불라며, 정월(음력 1월)에 정축(丁丑), 정해(丁亥), 정묘(丁卯)날 중에 택일하여 지내는 마을제로 집안에서 하는 토신제와 중복되거나 앞서 지내거나 뒤로 밀려 지낼 때도 있다.
조노깃당에서는 정월 정해일에 여성 중심의 무속식 마을의례는 당굿이고, 마을제사인 정포제(正酺祭)는 남성 중심의 유교식으로 지내는 제사다. 정포제의 대상신은 포제지신(酺祭之神)으로 줄여서 포신(酺神)이라고 부른다.
보목동 정포제는 제관과 집사가 제청에 입제하는 첫날부터 제사가 실행되는 넷째 날까지 모두 나흘간 이루어진다.
포제일이 정해지면 제관과 집사가 제청에 입제하면 먼저 금줄을 치고 서로 인사를 한 후 집사방을 작성한다.
이때 금줄에는 감귤나무의 잎을 꽂아둔다. 다음으로 포제동산을 청소하고, 제사 예행연습을 한다.
둘째 날에는 제물을 구입하고, 마을사람들이 제청에 참관을 한다.
셋째 날은 제관과 집사가 목욕을 하고 제사에 쓸 검은 수퇘지를 준비한 후 축과 지방을 작성하고, 제물을 확인한다. 넷째 날은 마지막으로 제사 예행연습을 한 후 포제단으로 이동하여 정포제를 지낸다.
포제가 끝나면 상을 치우고 음복을 한 후 제사에 대한 결산하고, 마지막으로 희생 제물이었던 돼지고기를 24개로 분육하여 동일하게 나눈다. 보목동 마을 포제 奉享시 특이한 점은 제복을 갖추지 못한 청년회원들은 당 밖에서 참시하는데 이 풍습은 제주에서 보목동이 유일하다.
5. 범화도량 혜관정사
혜관정사는 대한불교법화종 소속 사찰로 범화도량(법화경의 도리)으로 1960년 3월 18일에 창건되었다.
보목동은 예로부터 불교와 관련된 지명과 설화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지명은 볼레낭(보리장나무)에서 파생된 ‘보목동’이라고 하며, 보목동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옛길은 지금도 ‘보살길’이라 불리며, 이곳 ‘정술내’라는 큰 내는 승려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라 해서 ‘중통’이라 불리는 지명도 있다.
혜관정사 대웅전 지붕 위에는 사방으로 부처님이 우뚝 우뚝 서있고 건물배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를 하고 있다. 남쪽 대웅전 위에는 누워있는 부처님 그림 위에 전서체로 쓴 ‘ 如來全身七寶妙塔(여래전신칠보묘탑)’ 현판이 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김광추 선생의 작품이다. 대웅보전 좌우로는 주지실은 작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집이란 뜻을 같은 소소소(小笑所)와 요사채인 향적실(香積室)과 일여당(一如堂) 등이 들어서 있다.
1974년 9월 9일에 대웅보전을 중창하고 1987년에는 법화신앙의 상징체인 여래전신칠보묘탑은 불국사 다보탑을 재현한 모습으로 탑안에는 스리랑카에서 증여받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의 모습은 독특한 건축형태로 밖에서 보면 2층 구조로 보이나 안에는 1층이고 벽면은 직사각형이고 지붕은 팔각형이다.
'여래전신칠보묘탑' 위쪽 천정은 천창으로 하늘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였다.
대웅보전에는 삼존불로 목조 비로자나물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과 아미타불 함께 모셔 놓았다.
재지기오름을 병풍으로 삼은 향적실 오른쪽 울타리 앞에는 60여개의 석불이 눈길을 잡아 끈다.
혜관정사 뒤뜰에서는 3층석탑 뒤로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는 서귀포칠십리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창건주 혜관스님을 기억하게 하는 빛바랜 一如堂 현판은 땅바닥에 놓여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6. 보목동 환해장성
환해장성(環海長城)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전역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축 성곽으로 제주특별자치도 해안선 300여 리(약 120km)에 쌓여진 석성을 말한다. 1998년 1월 7일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보목동 환해장성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있으나, 환해장성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있었다.
한곳은 보목포구 동쪽 제지기오름에서는 남동쪽 해안가에 돌가시덩굴을 비롯한 잡풀에 뒤 덮힌 돌무덕이를 살펴보면 인근 바닷가에서 나온 둥근 돌들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약 50m 정도 남아 있으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었고 또 한 곳은 보목동하수종말처리장 서북쪽 국궁장 동쪽 올레길에서는 허물어진 돌 무덕이 처럼 보였으나 밭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높이 1.5m~2m가량으로 20여m가 남아있었다. 이곳도 인근 바닷가에서 나온 둥근 돌들을 이용하여 쌓았다.
보목동 환해장성 흔적은 제주올레 6코스 최고의 경치를 느낄 수 있는 소천지를 지나 검은여 마을에 있는, 국내 유일의 바닷가에 있는 궁도장인 백록정 동편에 형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안내문이나 사료에 기록되지 않고 있으며, 인근 몽돌를 이용해서 쌓은 환해장성은 해안가 쪽은 허물어져 원형을 잃어버렸으나 안쪽은 높이 2m 길이 50m가 남아있었다.
7. 연디기 여드렛당
진동산을 지나 별장사이에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수풀 속 오솔길이 나있다. 높은 언덕위에 전망대에 오르면 보목포구와 섶섭이 바로 눈앞이다.
낭떠러지처럼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험한 길을 내려가면 바위아래 작은 시멘트 제단만이 남아 있다.
이 당은 어부들을 위한 선왕(도채비신)과 잠수들을 위한 요왕당(용왕)이다. 바다에 들고 날 때마다 와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다. 까만 현무암의 날카로운 바위 위에 소박하게 시멘트를 발라 만든 제단에는 거친 바닷길을 순하게 열어 주십사 빌었던 간절함이 남아 있다.
유명 연예인 별장 남쪽 높은 언덕은 보목연대 터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고 지명만으로 연대 터임을 추정할 뿐이다.
8. 구두미포구
구두미개는 섶섬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구두미개의 이름 유래를 보면 서쪽 전경초소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 하여 ‘구두뫼’(龜豆山)라고 부르던 것이 ‘구두미’가 되었다고 한다. 구두미개는 방치되어 오다가 최근 들어 전망대를 만들고 주변에 데크도 만들고 카페도 들어서 있다.
9. 제주의 숨은 비경 소천지
화산암 지대로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이곳은 용암이 바닷물에 식으면서 생성된 아아용암 지대로 다양한 모양이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곳이다.
특이 이곳은 겨울철 파도와 바람이 없는 날 소선지에 비춰진 는쌓인 한라산 백록담이 바다에 비쳐지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10. 보목동 늬알당
늬알당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소천지에서 남동쪽 해안가 ‘속칭 ’늬알‘에 위치한 당으로
해안가로 내려가면 촛대바위가 북쪽에는 용바위가 위용을 드러내고 커다란 바위틈 시이로 넘어가면 기암들로 둘려 쌓인 곳에 자그마한 바위궤 주변에 당이 마련되어있다.
2014년 10월 답사사진과 비교해 보니 신목인 보리장나무도 없어졌고 분위기가 많이 변해있었다.
현재는 지전이나 물색 등은 걸려있지 않고 바닷가 몽동을 이용하여 낳으막한 돌탑으 쌓아 놓았다.
작은 바위틈이 양초가 켜져 있고 돌담을 쌓아 양초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모르지만 매일 비원 차 이곳을 찾는 듯하다.
11. 보목연대 추정터
보목연대 추정터는 두 곳이 있다,
연디기 동산과 연디기왓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이 두 곳은 마을에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특징이 있으며
연디기 동산은 해안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고 연디기왓은 소천지 동쪽에 조망이 잘되었을 법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주변에 건물들이 들어서고 거타란 나무들이 시아를 가리고 있지만 연대가 들어설 만한 곳들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없어진 곳들을 보니 세월이 흐름을 세삼느끼게한 하루였던 같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보목마을 답사 후
멋진 사진과 자료를 정리해 주셔서
고맙게 살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