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주(The Great Escape)
최용현(수필가)
‘대탈주(The Great Escape, 1963년)’는 ‘OK 목장의 결투’(1957년)와 ‘황야의 7인’(1960년)을 연출한 존 스터지스 감독의 전쟁 어드벤처 영화이다. 주로 남성적인 세계를 추구해온 감독답게 여자배우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38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1,170만 달러를 벌어들여 흥행에 성공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관객 25만 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엘머 번스타인이 작곡한 경쾌한 리듬의 주제곡은 아주 유명하다. 과거 국군에서 행진곡으로 사용했었고, 학교 운동회 때도 자주 틀어주곤 했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 음악교과서에 ‘행진’이란 이름으로 실려 있고, K리그 여러 팀의 응원가로도 쓰이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공수부대의 군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여러 포로수용소에서 여러 차례 탈주를 시도하여 독일군의 골머리를 앓게 하던 연합군의 항공기 조종사 포로들은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폴란드 땅의 독일군 점령지에 있는 특수 포로수용소 스탈라그 루프트 3(Stalag Luft III)로 이송된다.
‘한 번 더 탈출을 시도하면 목숨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포로수용소장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들 포로들은 자유를 향한 희망과 의지를 버리지 않고 대규모 탈주계획을 모의한다. 영화는 실제로 벌어졌던 연합군 항공기 조종사 포로들의 치밀한 탈주 계획과 긴박한 탈주 장면,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담고 있다.
포로들은 ‘빅 엑스(Big X)’라 불리는 로저 소령(리처드 애튼버러 扮)를 중심으로 250명 규모의 대탈주 계획을 세우고 땅굴파기, 신분증 및 서류 위조, 공구 제작, 물품 조달 등으로 역할을 나눠서 준비한다. 이들은 독일군의 감시망을 피해가며 수용소 바닥에서 철조망 너머 숲까지 약 100m 정도 길이의 톰과 딕, 해리라는 이름의 3개 땅굴을 판다. 이 중에서 톰은 1943년에 독일군에 발각되었고, 딕은 이용 불능으로 드러난다.
1944년 3월 어느 날 밤, 드디어 포로들은 한 사람씩 해리 땅굴을 통해 빠져나가 숲으로 도망친다. 5명, 10명, 20명, 30명, 40명, 50명….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다가 독일군 경비망에 발각되는데, 이미 76명이 빠져나간 후였다.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1인 혹은 2인씩 기차역으로, 자전거로, 배로, 도보로 도망친다. 그러나 시내와 기차역에는 이미 독일군이 쫙 깔렸다.
독일군의 물샐틈없는 포위와 추적 끝에 탈주자 73명이 며칠 만에 체포되어 로저 소령을 포함한 장교출신 조종사 50명은 산중턱에서 게슈타포에 의해 무참하게 총살당한다. 체포된 나머지 포로 23명은 포로수용소에 재수감되는데, 그중 11명은 탈주했던 수용소로 되돌아오게 된다.
탈주에 성공한 포로는 모두 3명으로, 배를 타고 탈주한 2명과 현지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으로 탈주한 1명이다. 2명은 노르웨이 출신이고 1명은 네덜란드 출신이다. 재수감된 23명은 전쟁이 끝난 후에 모두 살아서 나왔다. 그 포로수용소는 현재 관광지로 꾸며져 있고, 탈출 관련 안내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엔딩 자막에 ‘이 영화를 고인이 된 50명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재수감자 23명 중에서 살아서 돌아온 호주 공군출신 폴 브릭힐이 1950년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The Great Escape’를 원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23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인 영국 공군출신의 딕 처칠은 탈주 후 벌목공으로 위장했으나 이틀 만에 적발되어 재수감되었다가 살아서 돌아왔는데, 2019년 2월 12일 99세로 세상을 떠났다.
연합군 포로들은 왜 그토록 탈주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일까? 일반 범죄자를 가둬놓는 감옥과 전쟁포로들을 가둬놓는 포로수용소의 결정적인 차이는 탈주의 적법성 여부이다. 감옥에서의 탈옥은 불법으로 간주되지만, 포로수용소에 있는 전쟁포로는 제네바 제3협약에 의거하여 탈주권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포로들은 탈주가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탈주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수용소에 혼란을 조장하여 적의 군사력을 낭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존 스터지스 감독은 러닝 타임 172분 동안 긴장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는 탁월한 연출과 함께 출연배우들의 앙상블을 이끌어내고, 특히 탈주 이후에도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이어가면서 이 영화를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영화는 영웅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 전쟁영화와는 달리 포로들이 바지에 따로 주머니를 달아서 파낸 흙을 담아 일사분란하게 화단이나 운동장에 흩뿌리는 장면 등에서 드러나듯이 공동체적인 저항과 연대(連帶)의 힘을 보여주는 새로운 전쟁영화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대탈주’에는 당시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남자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혀서 계속 독방에 갇혀도 굴하지 않는 힐츠 대위 역의 스티브 맥퀸, 소매치기도 마다하지 않는 물자조달 전문가 역의 제임스 가너, 탈주 작전을 구상하고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총괄 리더 역의 리처드 애튼버러, 땅굴파기에 탁월한 실력을 가진 굴착전문가 역의 찰스 브론슨, 호주 출신 중위 역의 제임스 코번, 영국군 중령 역의 제임스 도널드 등….
마지막에, 항공기를 탈취하여 눈먼 동료와 함께 스위스로 향하는 제임스 가너와 오토바이를 탈취하여 국경으로 향하는 스티브 맥퀸의 탈주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탈주에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지만, 둘 다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되돌아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