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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입니다.(눅9:51-62)
2015, 4/12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눅9:51-62절 말씀으로“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지요? 밖에 봄꽃들이 만개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하수상해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우리도 주님께 갈 날이 그만큼 가까워졌습니다.
가는 세월을 아껴서 주님 만날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항상 준비하고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또 건강하시고, 이 땅에서 누리는 복도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누가복음은 헬라출신인 누가가 주님을 가까이서 보고 경험한 것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진정한 구원자이자 메시야 되심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초막절을 지내고, 마지막여정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사마리아를 지나던 중, 사마리아의 어느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교만한 욕심을 장사지내고 주님을 따라야합니다.(54-56절)
둘째로, 세상에 미련두지 말고 주님을 따라야합니다.(59-60절)
사랑하는 여러분!!!
며칠 전 TV에 조립식건물을 짓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집에 수많은 캐릭터인형들을 전시해두고, 누가 들어와서 만지거나 훔쳐 갈까봐 불안하여 CCTV를 설치해 두고 핸드폰으로 감시하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일에 집중하던지, 집에 가서 캐릭터만 지키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데 다하려고 합니다. 욕심이 과한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이사람 이러다 짤릴 것 같습니다.
세상일도 이럴진데 하나님나라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마음이 둘로 나뉘어져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을 간통으로 생각하고 정말 싫어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교만한 욕심을 버리고 주님을 온전히 따를 것을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 말씀을 따라 세상에 욕심을 버리고 주님만 온전히 사랑하며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말씀을 따라가면서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교만한 욕심을 장사지내고 주님을 따라야합니다.(54-56절)
본문54-5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아멘.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다. 이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승천하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사마리아지방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보내 잠시 묵을 방을 구했지만, 예수님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방 내주기를 거절합니다. 왜냐면 옛날 앗수르가 갈릴리와 사마리아지방을 침공하여 강력한 혼혈정책과 이주정책을 펴서 이방사람들과 피가 섞여버립니다. 혈통을 중시하는 유다사람들은 이런 사마리아사람들을 같은 형제로 인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경멸하자 그때부터 서로 원수처럼 지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사람들이 거절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크게 분노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다시 말해 이런 뜻입니다. ‘주님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데 저들이 감히 우리요청을 거부합니까? 지금 우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저들을 태워버리겠습니다.’ 여러분!!! 저들의 자신감을 보십시오. 놀랍지 않습니까?
저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겠다는 이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요?
물론 그동안 제자들이 전도하러 다니면서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쳤던 경험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로마를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고, 그러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높은 자리에 서로 앉게 해달라고 청탁도 하고, 논쟁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제자들의 이런 무모한 행위의 출처는 바로 그들의 우월감입니다.
형제를 무시하고, 형제위에 군림하려는 교만에서 나왔습니다.
‘감히 너 따위가 나를 무시해!!!’‘나는 너와 달라’ 이런 우월감이 오늘제자들의 맛을 확 가게 만들어 하늘에서 불을 내려 형제를 태우겠다는데까지 나갔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제자들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클로즈업됩니다.
우리도 조금 위치가 좋아지고 형편이 나아지면 당장 마음이 교만해져서 갑질하려는 욕망이 꿈틀됩니다. 여러분 주변을 한번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편이 좋아지고 돈이나 권력이 생기면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보다 못한 형제를 무시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봅니까? 교회 안에서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큰 교회서는 스스로 을을 자처하지만, 작은 교회서는 갑이 되어 불순종하고, 불평불만으로 목자와 형제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예수를 잘못 믿은 겁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신앙인은 믿음이 성숙할수록 겸손해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신앙과 행동이 일치하는 법입니다.
ex) 제가 아는 집사님, 모태신앙으로 남들이 볼 때 아주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잘 함.-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물론이고, 수요, 금요심야까지 참석하며, 성경공부도 빠지지 않고, 성가대원으로, 교회학교교사로 아주 열심히 봉사함.
그런데 집에만 들어가면 독선과 독단을 일삼고, 가족들의 실수나 잘못을 지나치질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말하지만, 아내나 자녀가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감정이 격앙되면 고함을 지르면서 온갖 험한 욕들을 거침없이 쏟아 붓습니다.
여러분!!!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이런 행동은 주님말씀에 대한 불순종이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그의 신앙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이고, 그에게는 믿음도 사랑도 없으며, 나만 옳다는 독선만 가득해 내 가족과 형제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겁니다.
살후3:14-15절에 말씀에“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면하라.”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형제들이 잘못하면 권면하고 경계는 하되,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오늘 제자들이나 그 집사님은 교만에서 나온 우월감 때문에 버림받게 생겼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예수 믿는 참 기쁨이 없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이 작은 위안은 될지 모르지만 믿음의 참된 기쁨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사마리아의 한 촌을 태워버리자는 말에 예수님이 크게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지만 어떻게 꾸짖으셨는지, 그 꾸짖으신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주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마5:44)”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켰으리라 생각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너희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배웠음에도 자기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한 마을을 불태워버리자고 말합니다.
이런 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쭐하고 싶고, 감정이 상해도 그렇지, 어떻게 마을을 불태워 저들을 죽일 수가 있습니까?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혹시 충동조절장애가 아닐까요?
여러분!!! 저들이 어쩌다 충동조절장애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 나오지만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언제나 저들처럼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언제든지 하나님영광을 가릴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생각들은 우리 마음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기회가 되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우리를 옛날 사단의 종이었던 시절로 끌고 가려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속에 두 세력이 있는데 이것이 서로 싸운다고 말합니다.
롬7:18-19절 말씀에“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경우, 우리는 영락없이 악한본능에 이끌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려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서로 싸울 때 성령이 충만해야 내 안에서 하나님말씀이 육체의 악한본능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롬8:2절에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든지 보혜사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요16:7절에서 말씀했기 때문에 그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 가르쳐준다고 요14:26절에서 말씀합니다. 하지만 원수마귀는 우리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악한본능을 타고 들어와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우리를 아주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힘을 내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이미 못 박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제자들이 가졌던 영적우월감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영생의 복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세상에 미련두지 말고 주님을 따라야합니다.(59-60절)
본문61-62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하시고”아멘.
어떤 사람이 열성적으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어느 날 주님이 그에게“나를 따르라”고, 정식으로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겠죠.
하지만 때마침,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와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하자 주님이 그에게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장례하게 놔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버지장례를 못 지내게 하냐? 저거 호로자식 아니야?’ 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말씀은 부모와 가정을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는 것이나, 하나님이 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성경 여러 곳의 말씀들을 봤을 때,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일은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고 오직 성도들은 하나님나라에 전심전력하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 중 어떤 것을 먼저 할 것인가 우선순위를 말씀하신 겁니다. 이 말씀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그 의미가 더 확실해집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다”무슨 뜻입니까? 주님의 제자로써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정말 매정할 정도로 세상의 욕심과 욕망을 과감하게 끊으라는 뜻입니다. 양다리 걸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이 말씀을 전도라는 미명으로 아이도 버리고, 이혼도 하고, 학업과 직장도 그만두게 합니다. 또 반대하는 가족을 마귀로 몰면서 가출을 부추깁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전도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원하실까요? 이건 너무 무책임하고 고난 받지 않으려는 책임회피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벧전3:17절에“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말씀하시고, 딤후3:12절에“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앙 때문에 가족들이 핍박한다면, 가족이 이해해줄 때까지 더 기도하며, 더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견디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북쪽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엘리야선지자가 호렙산에서 다메섹광야로 가던 중에 종들과 함께 밭을 갈고 있던 엘리사를 만나 그를 후계자로 삼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먼저 부모님께 작별을 하고 선생님을 따르겠다고하자 허락합니다. 엘리사는 밭 갈던 소를 잡아 이웃들에게 대접하고 엘리야를 따랐는데, 소를 잡았다는 것은 더 이상 농사일을 하지 않고 선생님만 온전히 따르겠다는 다짐입니다.
부모와 가정을 단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욕심과 집착을 단절하라는 것입니다.
사이비들은 성경 한 두 군데를 가지고 전체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통교회는 성경전체를 보고 한 두군데를 해석하기 때문에 바른 해석을 하는 겁니다.
어쨋던 세상의 이런저런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주님 뜻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자녀가 되는 것은 목숨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도 행복을 누리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 수 있고, 그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영원한 지옥 불에서 고통당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때문에 영생을 위해서라면 미련이나 욕심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제자가 되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한다면, 정말 천국을 소망한다면 세상과 양다리는 안 됩니다. 주님은 세상과 양다리 걸치며 살았던 라오디게아교회에 이렇게 말씀합니다.“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3:16-17)
여러분!!!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거듭난 주의백성들에게 참된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강한 사람은 이 세상에 미련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악한영이 잘 건드리지 않지만, 세상욕심이 많은 사람은 악한영이 심하게 유혹합니다.
물론 믿음이 신실해도 육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악한영의 유혹으로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옛사람의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그 못된 옛사람의 소욕과 싸워 이기기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술람미여인처럼 주님께 상사병이 날 정도로 주님과 연애를 해보십시오.
그러면 신랑 되시는 주님생각이 궁금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게 되고, 그 안에서 성령의 조명을 받아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주님과 연애하면 마음이 열려 찬양이 기뻐지고, 예배 참석하는 것이 기다려집니다. 기도가 저절로 되고, 기도가 방언으로 바뀝니다. 신앙생활자체가 즐거워집니다.
이럴 때 성령은 자동으로 충만하게 되고, 여러분들은 권능을 받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악한 자가 근처에 얼씬도 못합니다.
아무쪼록 성령 충만하여 절대 세상을 돌아보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심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