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을 떠나 중국인들이 나를 통해 한국과 한국축구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앞으로 최소한 1년은 더 중국에서 활동하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겠다.”
중국 프로축구 갑급A조 충칭 리판(전 충칭 룽신)에서 활동하다 휴가를 맞
아 3일 귀국한 이장수 감독(44)은 5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중국생활과 앞으로의 설계를 밝혔다.지난 98년 6월 당시 충칭 리판의 전신인
첸웨이 환다오와 감독계약을 맺었던 이 감독은 올 시즌까지 외국인 감독으
로선 최장기인 2시즌 반을 한 팀에서 소화하며 지난해와 올해 갑급A조 전반
기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는 등 중국프로축구계에서 외국인으로는 보기 드
물게 ‘스타감독’ 반열에 오르는 성취를 거뒀다.이 감독은 지난해 갑급A조
4위(10승10무6패)에 이어 올 시즌에도 10승11무5패로 4위를 기록,2년 연속 4
위로 역대 중국 진출 한국인 감독 가운데 최고 성적을 남겼다.이 감독은 8일
중국으로 돌아가 11월 5일과 12일 베이징 궈안과 홈앤드어웨이로 FA컵 결승
전을 치른다.
―거취문제가 가장 관심사인데.
지난 2일 리판홍타오그룹이 5580만위안(약 75억2030만원)에 팀을 인수해
팀체제가 완전히 바뀌었다.귀국 전 새 구단주인 인밍샨 회장을 만나 계속 팀
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2주 안에 거취문제를 결정할 생각이다.사실 올
해 말로 충칭과 계약기간이 종료돼 재계약이냐,다른 팀으로 옮기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그동안 서너군데 구단과 접촉이 있었다.감독으로선 같은 조
건이면 선수층이 두꺼운 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만 충칭과의 인연이 워낙 깊어 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다.
―재계약 조건은.2년2개월 동안 얼마나 벌었나.
연봉액수를 발표하지 않는 것이 중국의 관례다.구단이 외국인 감독 최고대
우 보장의사를 밝혔다.그동안 큰 돈을 벌지는 못했다.(국내 감독의 연봉수준
을 물어본 뒤)수당을 합친 총액이 국내 감독보다 두세배 많은 것 같다.
―국내 팀을 맡을 생각은.
앞으로 1년간은 더 중국에서 활동하고 싶다.중국생활을 정리하면 우선 유
럽이나 남미에서 최소한 6개월 이상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살펴볼 생각이다.
국내 복귀는 그 이후의 일이다.
―FA컵 결승을 앞두고 있는데.
쓰촨성에 있는 갑급A조 2팀이 그동안 우승을 한번도 못해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팬들의 요구가 강하다.11월 5일 베이징과의 원정경기 결과
가 중요하다.우리 팀은 올 시즌 정규리그 홈 13경기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았
다.원정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중국 축구전문지 ‘티탄저바오’가 2일자에 ‘처세술에 능한 이 감독이
중국인을 무시하고 많은 연봉을 요구했으며 내가 없으면 충칭이 무너진다고
떠들고 다녔다.훈련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정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
수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언동을 했다’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는데.
기사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악의적인 시각이 배어 있다.돈문제는 구단 측과
합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훈련시간은 감독이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훈련장소문제는 우리가
훈련장이 없어 훈련 1∼2시간 전에야 결정되는 상황이다.구단 측에선 신경쓰
지 말라고 한다.그러나 다른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내가 중국인들을
무시했다는 것은 양국 우호에 금이 가게 할 수도 있는 문제다.변호사를 선
임해 분명하게 짚을 생각이다.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요인은.
98년 처음 갔을 때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술 담배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등 프로의식이 희박해 이를 바꾸는데 애를 먹었다.중국의 남방지
역인 충칭의 최근 기온이 30도를 웃돌아 체력보강이 절실했다.팬들에게 재미
를 줄 수 있는 공격축구를 펼치도록 선수들에게 주문했다.무엇보다 내가 비
록 외국인 감독이지만 선수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도록 하고,하고 싶은
것을 말리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터놓고 얘기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이
주효한 것 같다.
―중국과 한국축구를 비교한다면.
중국축구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높은 열기와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내가 중국축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
이 됐으면 다행이다.한국 중국 일본과 비교할 때 중국축구의 수준은 큰 차이
가 없다.조만간 한·중·일 3국이 이기고 지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중·일 모두가 과거처럼 체력이나 정신적인 면을 내세울 때는 지났다.
국내 지도자들이 승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재미있는 축구를 해 팬을 불러
들이려는 마음가짐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