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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장 사랑과 야망(野望) ① "태화현신(太華現身)! 척사위정(斥邪爲正)!" "태화천하(太華天下)! 무혈신화(無血神話)!" "와아아! 쳐라!" 천외천 총단 곳곳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나왔다. 증축공사를 벌이던 현장이나 숙소 등에서 천여 명이 넘는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연장이 아니라 병기가 들려있었고 다른 손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밝혀져 있었다. 이 갑작스런 사태에 천외천은 발칵 뒤집혀졌다. 눈을 비비며 헝클어진 옷차림으로 천외천의 무사들이 뛰쳐나왔다. "적이다! 막아라!" 그들은 뜻밖의 기습에 우왕좌왕했다. 기습, 그것도 천외천의 한가운데서 기습공격이 감행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무사들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모두들 침착해라! 각자 제 위치로 돌아가 적들을 물리쳐라!" 고막을 울리는 웅후한 외침이 터졌다. 무사들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대공인 광목왕이었다. 그의 내공이 실린 노갈은 이백만 평에 달하는 운귀고원 전역에 울려퍼졌고,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혼란 속에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던 천외천의 무사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응전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그러나 이번에는 천외천의 외곽으로부터 천지를 무너뜨리는 듯한 함성이 울렸다. 태화천의 고수들이 일제히 공격해 온 것이다. 사대천왕을 위시하여 지난 수십 년간 칼을 갈고 닦았던 태화천이 총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꽈르르릉! 차차차창! 폭음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음, 호통과 비명소리....... 마침내 무림사에 한 획을 그을 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천외천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피아간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둠 속에서 벌어진 혼전(混戰)은 시간이 흐를수록 처절해져 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오직 이 한순간에 달려 있었다. 정과 사도, 흑과 백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무림계의 끝없는 순환의 역사에 몸을 던진 채 그들은 피보라 속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했다. ② 푸스스스스! 뇌옥의 거대한 석문이 한 가닥 부드러운 잠력에 의해 모래알처럼 부스러져 내렸다. 뻥 뚫린 구멍으로 쏜살같이 날아들어간 인영은 급격히 신형을 멈추며 부르짖었다. "모용부인!" 관운빈이었다. 그는 뇌옥 안의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뇌옥 중앙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탁자 위에 한 여인이 누워있었다. 그녀는 바로 모용부인, 즉 모용정이었다. 꼽추노인이 그녀의 몸을 흰 명주천으로 덮어주고 있었다. 모용정의 윤기나는 흑발은 해초처럼 풀어헤쳐져 있었고 명주천 밖으로 약간 드러난 양팔과 어깨는 눈부시게 흰 속살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명주천 아래로 그녀의 몸매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보였다. 풍만하게 솟아오른 두 개의 육봉과 가느다란 허리, 둔부에 이르러 갑자기 풍요로운 곡선을 그리는 하반신까지 여실히 육감적인 육체가 그려졌다. "......." 모용정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는 관운빈을 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반가움과 부끄러움,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어서 오게, 괴수신의." 꼽추노인이 기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관운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눈앞의 꼽추노인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꼽추노인은 탁자 옆에 서서 모용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의 그런 행동은 침착하고 자연스러워보였다. "내가 바로 천외천의 주인일세." "......!" 관운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외천의 주인! 이런 곳에서 그와 조우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경이에 찬 눈으로 꼽추노인, 즉 천외천주를 바라보았다. '설마... 꼽추일 줄이야......!' 천외천주의 눈빛은 물처럼 담담했다. 그는 하얗게 센 눈썹을 몇차례 들었다 내렸다 하며 관운빈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기괴한 웃음이 그려졌다. "뜻밖인가 보군. 어쨌든 자네와 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네. 기왕 왔으니 몇마디 얘기를 나눔세." "......." 관운빈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역천지계의 집행자이며 천하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무림뿐 아니라 황실까지 넘보던 광오한 몽상가요, 냉혹무비한 성품의 야심가로 알려진 천외천주가 이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얼굴에는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수십 가닥의 주름이 패여져 있었으며, 등은 활처럼 굽은 곱사등, 일신에는 곤룡포를 입고 있었으나 위엄스럽기는커녕 발치께에 끌리는 헐렁한 옷으로 인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만할 뿐이다. 이런 자가 어찌 천외천의 주인이란 말인가? 관운빈은 뜨악한 눈으로 꼽추노인을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빈 의자가 있으니 앉게. 자네의 동료들은 이곳에 접근하지 못할 거네. 팔대봉공 중 사공과 팔공이 밖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네." "좋소. 어디 얘기를 들어봅시다." 관운빈은 되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빛나는 시선을 천외천주에게 고정시켰다. 천외천주는 물처럼 고요한 시선으로 그의 눈길을 받았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었다. 형태조차 확실치 않은 추괴한 입술이 열렸다. "자네는 천외천... 아니 그 이전의 파천황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들어본 적이 있나?" 천외천주는 허리춤에서 순금으로 된 곰방대를 꺼내더니 담배를 눌러넣고 부싯돌을 켰다. 한 모금 연기를 빨았다가 내뿜자 자욱한 연기가 석실 안을 맴돌았다. "관심 없소.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신의 야망이 천하를 어지럽혔다는 것뿐이오." "허허허! 그런가? 그렇다면 노부도 구구하게 말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최소한 유래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 "지금으로부터 약 오십 년 전의 일이네." 융경제(隆慶帝)가 용좌를 지키고 있던 시절이었다. 자금성이 있는 순천부(順天府:지금의 북경)의 부사로 막 취임한 조득표(曹得標)는 입신양명을 위해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 즉 순천부 성내의 부랑자들을 모두 잡아 성밖의 일정한 지역 안에 몰아넣은 것이다. 그의 명목은 지엄하신 황상이 머무르는 황도를 정화한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부랑자들의 삶은 그날부터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척박한 황토와 더럽고 냄새나는 성밖에 울타리를 치고 집단으로 갇혀 있다시피한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영위할 수가 없었다. 비만 내리면 그곳은 시궁창처럼 철벅거렸고, 식량은 늘 부족하여 굶주리기 일쑤였으며, 더러운 환경 속에서 돌림병마저 돌아 죽어나가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설사 알려졌다해도 당시의 권세가들은 아무도 이런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이런 조치를 내린 조득표의 배후에 황후(皇后)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득표는 황후의 사촌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런 배경을 논하지 않고라도 거리의 부랑아들과 거지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만으로도 그들은 흡족해 했던 것이다. 특히 부랑아들 중 많은 숫자는 신체에 결함을 가진 잔결인(殘缺人)들이었다. 팔다리가 없거나 등이 굽은 자, 애꾸, 봉사, 문둥이, 벙어리, 귀머거리 등...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하는 잔결인들이 하루 아침에 황도에서 사라졌으니 귀족들이 보기에는 도리어 속이 시원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 지역을 세인들은 잔결부락(殘缺部落)이라 불렀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토양에서 잔결인들은 굶주린 배를 시궁창 물로 채워가며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물론 허기와 돌림병으로 인해 죽는 자들이 속출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몰살을 할 게 분명했다. 결국 한 사람이 거사(擧事)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한 꼽추 젊은이였는데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죽고 만다는 것을 잔결부락 사람들에게 알리고 부락을 탈출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결국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의 말에 찬동하고 나섰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천외천주인 담세백(潭世伯)이었다. 담세백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 가운데 젊고 행동이 날랜 자들을 선발하여 은밀히 방책(防柵)을 뛰어넘었다. 그는 성내로 잠입하여 고관대작의 곳간을 털어 식량을 가져와 우선 급한 환자나 기아자들을 구제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기아자들을 구제할 수가 없자 점차 인원을 늘려 수시로 도적질에 나서기 시작했다. 담세백은 비록 선천적인 불구인 꼽추로 태어났으나 그의 지혜와 뛰어난 통솔력, 분석력, 인내력 등은 타인의 추종을 불허했다. 수십 회에 걸친 식량조달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잔결부락의 구제주이자 영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점차 대규모로 인원을 늘려가던 그의 행동대 중 여덟번째 조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팔조의 조장 전석방(錢石方)은 담세백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미 수십 차례나 담세백의 통솔이 없이 임무를 수행한 전력이 있었다. 그 날도 전석방은 열세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수월하게 성내에 잠입했으나 애초의 목적지로 가던 중 계획을 변경했다. 한 거부의 저택으로 향하던 중 조득표의 관사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이 조득표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는 수하들에게 조득표의 관사를 털자고 제의했고, 수하들은 전원찬동했다. 그들은 기척없이 담장을 뛰어넘었다. 이미 수십 회나 월담한 경험이 있어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전석방 일행은 곳간을 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득표에 대한 증오심을 억누르지 못한 나머지 그만 내실까지 침입한 것이다. 마침 내실의 규방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잠들어 있었다. 전석방을 위시한 수하들은 그녀가 필경 조득표의 처첩이거나 딸일 것이라 믿고 그만 이성을 잃어 버렸다. 복수심에 불탄 그들은 그 여인을 집단으로 윤간(輪姦)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부락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능욕당한 여인을 죽이지 않았다. 그것은 사대부집의 여인이 부랑자들에게 윤간당했다는 사실을 감히 토설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의 예상은 깨지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 해가 뜨기 무섭게 자욱한 흙먼지를 날리며 몰려오는 어림군들을 그들은 공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전석방 일행이 윤간했던 여인은 조득표의 친족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황제의 딸이었던 것이다. 모처럼만에 나들이 나왔던 그녀는 인척지간인 조득표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던 중 봉변을 당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혈서를 써 남긴 채 목매달아 죽은 것이다. 혈서에는 그녀를 윤간한 부랑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해 두었던 것이다. 결국 황제는 불같이 노하여 즉각 어림군을 파견하여 잔결부락을 덮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무비했다. 몰살(沒殺)! 삼천여 명에 달하는 잔결부락의 사람들은 감히 저항할 엄두조차도 못낸 채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몰살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단 칼에 목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전석방 일행은 부락민을 위해 자신들이 한 짓이라 나섰지만 기마병들에 의해 사지가 산산조각으로 찢겨 목숨을 잃었으며, 부락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약자들은 말발굽에 짓밟혀 복부가 터지고 머리가 으깨어져 죽었으며, 여인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무참히 능욕당한 채 죽임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어림군은 잔결부락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그야말로 대비극이 발생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천우신조(天佑神助)랄까? 마침 그 이른 아침에 성내로 잠입하여 한 고관의 사택을 털던 잔결인들이 있었다. 담세백을 필두로 한 열네 명의 잔결인들이었다. 그들은 곡식을 메고 돌아오던 중 부락이 불길에 싸인 것을 보았다. 주먹을 움켜쥔 채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은 부락민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말았다. 부모와 형제, 누이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담세백은 그 순간 결심했다. 천하를 피로 씻겠노라고! 아니, 스스로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잘난 놈들, 배부른 놈들을 모조리 처단하겠노라고! 그로부터 삼 일 후. 황실의 비고(秘庫)가 털렸다. 그 사건은 극비리에 덮어지고 만다. 황실 비고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있었거니와 누군가 비고에 들어가 가져간 것은 대단치 않은 고서(古書) 몇 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천외천이 탄생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그날 황실 비고를 턴 것은 바로 담세백이었다. 그는 비고의 한 서가에서 열 권의 무공비급을 훔쳐간 것이다. 이후 그는 수하들과 함께 은밀한 곳으로 달아나 비급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가 훔친 비급 속에는 천 년 전 마교를 창설한 시조인 천마대제(天魔大帝)가 남긴 극마지록(克魔之錄)이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마교의 각종 비학들이 적힌 비급들을 훔쳐갔던 것이다. 황실 비고에 그것이 비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전무했다. 어쩌면 운명의 안배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담세백은 그것을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악취가 나도록 부패해 버린 천하를 징계하라는 뜻으로 알고 그는 역천지계를 품은 것이다. 그는 십삼 인의 수하들과 함께 운귀고원을 택해 역천지계를 실행할 성지(聖地)로 삼았다. 그날 이후 이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교의 비학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본래 무학, 특히 상승무학은 혈기가 순수한 어릴 적부터 익혀야 진경에 다다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담세백을 비롯한 십사 인은 무공을 익히기에는 이미 뼈가 굳은 나이였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보통 사람들이 익히는 방식으로는 상승의 마학을 연성할 수가 없었다. 다행한 것은 그들이 선택한 무공이 정통무공이 아니라 마교의 패도지공(覇道之功)이라는 것이었다. 마교에는 속성(續成)으로 무공을 연성하는 비법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성을 포기해야만 했다. 음독한 마공을 익히기 위해 수백 명의 순음지기(純陰之氣)를 지닌 처녀를 희생시켜야 했으며, 삼백육십 가지 이상의 독물(毒物)를 복용하거나 삼천 종 이상의 약초에 몸을 담궈야만 했다. 이러한 혹독하고 잔인한 과정을 통하여 담세백을 위시한 십사인은 마침내 마교의 맥을 잇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목적은 뚜렷했다. 잔결부락을 하루아침에 몰살시킨 장본인은 세상의 권세가이며 위정자들이었다. 힘을 지닌 자들이 힘없는 약자를 무참히 짓밟은 것이다. 담세백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파천황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파천황교가 출현했을 때 강호무림은 삽시에 혈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들의 가공할 마공을 막을 자가 없었다. 한편, 담세백은 파천황교가 무림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황실에 침투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림뿐 아니라 황실마저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파천황교를 이용하여 모은 막대한 금력을 동원하여 관리들과 황족들을 매수하는데 성공했고, 차츰 황실에서 은밀히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기간 중에 만력제가 보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그것은 만력제의 이복동생이었던 주일청이 오래 전부터 황실을 차고 나가 강호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무림에서 기반을 닦았던 것이다. 결국 주일청은 황실무고에서 익힌 신비한 무공으로 혈세천하를 이루고 있던 파천황교를 격파했다. 그가 바로 태화천주였던 것이다. 담세백은 피눈물을 흘리며 파천황교의 몰락을 지켜보았다. 그가 나서지 않은 것은 좀더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였다. 그날 이후 그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물론 세상을 바꾸려는 애초의 뜻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더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어둠 속에 깊이 꼬리를 감춘 채 역천지계를 실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그의 추종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으며 그 힘은 파천황교를 수 배나 능가하게 되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마군자 사마을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③ 담세백은 담배 연기를 뿜은 후 물었다. "자네가 나였다면 어떠했겠는가?" 관운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허! 역천지계는 하루 이틀 사이에 진행된 것이 아니네.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왔지. 천하를 바꾼다는 것이 어찌 단순한 복수심만으로 이룩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 "노부는 전 인생을 바쳤네. 그리고 이제 그 시기가 다가왔지. 비록 마군자는 좀더 기다리자고 했지만 노부는 응하지 않았네. 왜냐면 더 이상 기다리기에는 노부의 인내력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이 있었지. 그래서 감행하기로 했네. 반백 년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역천지계였기에 추호도 실패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지." 관운빈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꼽추에 추괴하기 이를 데 없는 괴노인, 그가 천외천주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허허, 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나타났지. 그게 바로 자네였어. 자네처럼 젊은 친구가 노부의 반백 년 공을 들인 역천지계의 암초로 떠오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관운빈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상대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는데 상대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부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배척받으며 살아왔지. 따라서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었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어. 단 두 사람이었지. 그런데 자네가 그들을 모두 빼앗아갔어." "......?" 관운빈은 의아했다. 빼앗아 갔다니? 누구를 말인가? "그중 한 사람은 마군자였고, 또 한 명은 바로 이 여인이네." "아!" 관운빈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담세백은 주름살 투성이의 손을 뻗어 모용정의 뺨을 쓰다듬었다. 모용정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혈도를 짚혔는지 그러지를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일어나 있었다. "마군자가 내 곁을 떠났을 때만 해도 난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었지. 그는 역천지계를 완벽에 가깝게 진행해 온 사람이지만 지나차게 신중했네. 그 점에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가 떠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지. 그러나......." 담세백의 손이 모용정의 갸름한 턱을 어루만졌다. "이 여인이 날 배신하고 자네를 택했을 때... 노부는 참을 수가 없었네. 허허.... 천하를 바꾼다고 맹세한 노부가 고작 이런 치졸한 감정에 흔들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담세백의 흰 눈썹이 바람도 없는데 푸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손은 모용정의 가녀린 목을 쓰다듬고 있었다. 두 개의 손가락이 그녀의 목젖을 어루만졌다. 가볍게 손가락을 구부리기만 해도 아름다운 목은 갈대처럼 부러질 것 같았다. 관운빈은 여차하면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백 번 생각했지. 노부는 천하를 바꿀 위대한 역천지계를 시행할 사람이네. 고작 계집으로 인해 대세를 망칠 수는 없는 일이었네. 그래서 자넬 직접 만나기로 했네. 이 여인을 이곳에 잡아두면 자네가 꼭 찾아오리라 생각했네. 그리고... 예상대로 자네는 이곳에 와주었네." 관운빈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물론이오. 어떤 상황이라도 왔을 것이오." "허허허! 한편으로는 실망하기도 했네. 역시 자네는 젊고 어리석어. 본천의 역천지계를 꺾을 자라면 결코 이곳에 오지 않았어야 했네. 천하경략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네. 그런데 자네는 어리석게도 감정에 따라 움직인 것이지." 관운빈의 눈썹이 꿈틀했다. "역천지계니 천하경략이니 하는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내게 중요한 것은 빚을 갚는 일이오." 담세백은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아무튼 좋아, 자네를 사랑하는 이 여인은 이곳에 있네. 자네는 날 꺾기만 하면 이 여인을 구할 수 있는 거지." "물론이오. 난 귀하의 목을 꺾어야겠소. 그것이 천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난 내 판단에 따를 뿐이지 거창한 명분이나 이유를 달고 싶진 않소." 담세백은 모용정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그럼 자네는 주씨 일족이 이끌어가는 명조를 위해 목숨을 내건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따위 것들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오." "그런가? 뜻밖이군. 하긴 역천지계가 끝나면 잠시 건친왕이 보위를 맡겠지만 결국은 나나 내 아들에게 보위를 넘기게 되지. 그러니 주씨 일족을 거론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지." 관운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더이상 듣고 싶지 않소. 이제 자웅을 겨루는 것이 어떻소?" "젊은 친구라 혈기가 넘치는군. 흠, 그래서 이 여인도 늙은이인 날 버린 것인가?" 담세백은 아직 미련이 남은 듯 모용정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이때 모용정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난 당신을 버린 적이 없어요. 왜냐면 한 번도 당신을 사랑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꿈틀하고 담세백의 주름진 얼굴이 일으러졌다가 펴졌다. 그는 음산한 음성으로 물었다. "옥루야,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는 황후의 자리도 마다하겠단 말이냐?" "물론이에요, 당신 곁을 떠날 수만 있다면 그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 해도 택할 거예요." "흐흐, 모용가가 어떻게 될지라도 말이냐?" 모용정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가증스러운 인간! 그래요, 원대로 하세요. 늙으신 부모님도 이제... 날 원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 고약한 것!" "악!" 모용정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담세백이 그녀의 몸에 씌워져 있던 명주천을 홱 젖힌 것이다. 그 바람에 그녀의 순백의 나신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녀는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담세백은 손바닥을 휙 저었다. "어멋!"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모용정의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관운빈을 향해 날아갔다. 관운빈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알몸의 여인이 그에게 날아오니 두 손을 내밀어 받아 안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만일 받지 않으면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 다칠 게 뻔했다. "크흐흐흐... 자넬 사랑하는 여인이네. 어떤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비록 그 여인의 껍데기만을 취했지만 나도 한때는 그녀에게 빠졌었지." 관운빈은 할 수 없이 두 손을 뻗어 모용정의 몸을 안았다. "아아!" 모용정은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비록 사모하는 정인의 품에 안기긴 했으나 상황이 너무나 야속했다. 더구나 혈도를 제압당했기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관운빈은 급히 그녀의 몸을 내려놓으려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을 혈도부터 해혈하고 볼일이다. 그러나 어떤 혈도를 짚혔는지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온몸을 더듬어 볼 수도 없어 망설이기만 했다. "허허허! 그녀는 유근(乳根), 수분(水分), 석문(石門), 곡골(谷骨), 회음(會陰)을 짚혔네. 모두가 쉽게 해혈할 수 있네." "......!" 담세백의 말에 관운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한 다섯 군데 혈도는 모두가 여인의 중요부분에 있는 혈도였다. 즉 유근혈은 젖가슴 바로 아래였으며 차례로 내려오면서 아랫배와 치골, 사타구니 사이에 있는 혈도였던 것이다. 해혈을 하려면 그곳을 모두 만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모용정을 내려보았다. 모용정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감히 눈조차 뜨지 못한 채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개의치 마시고... 천녀의 혈도를... 풀어 주세요." 관운빈은 입술을 악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예절을 가린다면 어리석을 뿐이다.' 그는 손을 뻗었다. 먼저 모용정의 젖가슴을 가볍게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진기를 가해 맺힌 혈맥을 타통시켰다. "으음......." 모용정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광경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을 애무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담세백은 고통스런 눈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허허허! 과연 보기가 좋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관운빈은 모욕감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재차 손길을 내려 그녀의 수분혈과 석문혈을 같은 수법으로 해혈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곡골혈과 회음혈이었다. 그곳만은 감히 손이 뻗어나가지 못했다. 곡골혈은 여인의 치골에 해당되는 곳으로 그곳에는 부드러운 방초(芳草)가 돋아나 있었다. 그가 손을 떨기만 할 뿐 행동에 옮기려 들지 않자 모용정이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는 눈까풀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공자님... 괜찮으니 어서요......." 관운빈은 눈을 질끈 감고 손을 그녀의 아랫배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에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섬모(纖毛)가 만져졌다. 그는 잡념을 떨치려 애쓰며 급히 진기를 흘려넣었다. "......!" 모용정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손을 더욱 아래쪽으로 밀어넣었다. 여인의 사타구니 안쪽 깊은 곳에 회음혈이 있었다. 관운빈은 가슴이 쿵쿵 울리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혈도를 타통시켰다. "아......." 모용정은 긴 한숨을 쉬며 몸을 움직였다. 관운빈은 급히 자신이 걸치고 있던 백삼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돌아섰다. 이마는 물론 전신에 땀이 진득하게 배어나와 있었다. 그는 백초를 싸운 것보다 더 힘이 든 듯 지쳐보였다. "고마와요. 공자님......." 등뒤에서 모용정이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관운빈은 호흡을 조절하며 담세백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승부를 결할 때요." 담세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일 초면 충분할 걸세. 노부는 마교 최고의 무학인 아수라파천황(阿修羅破天荒)을 전개하겠네. 적어도 자네라면 이 정도 예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아수라파천황은 남궁청운에게 전달되었던 패왕수라공의 진수(眞髓)로 마교사상 최강의 패도지학이었다. "영광이오. 그럼 소생도 추나신공을 전력으로 펼쳐 보이겠소." "추나신공? 금시초문이로군?" 담세백은 눈알을 굴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화천의 무학을 쓸 줄 알았는데 뜻밖이군?" "태화천과는 인연을 끊었소. 그러니 날 그쪽에 연관짓지 마시오. 추나신공은 한 이인이 창안한 것으로 운이 좋아 최근 어렵게 그 오의(奧意)를 깨우칠 수 있었소. 아마도 귀하를 헛된 욕망의 늪으로부터 건질 수 있을 것이오." "허허허허! 과연, 자네는 옥루가 반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젊은이로군. 자, 그럼 손을 쓰게나." 스스스! 담세백은 두 다리를 벌리고 섰다. 등은 낙타처럼 툭 튀어나왔고, 왜소하고 볼품없는 체구였으나 일단 자세를 잡자 그의 전신에서는 엄청난 마기(魔氣)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지극히 음유한 기운으로 뇌옥 안에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부는 듯했다. 관운빈의 옷자락이 그 음유한 경풍에 미미하게 흔들렸다. "......!" 관운빈은 손바닥에 땀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려 모용정을 바라보았다. 모용정은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헐렁한 백삼을 대충 걸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애처롭고 청초하게 보였다. 관운빈은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천하의 마인 담세백의 부인으로 더럽혀진 몸이었으나 이 순간 조금도 그녀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비록 순결은 사라졌으나 그녀의 영혼만은 지극히 순수하다는 느낌이었다. 모용정은 그가 자신을 바라보자 얼굴을 붉혔다. 갑자기 그녀는 가슴 앞으로 모아잡고 있던 백삼을 놓았다. 백삼자락이 벌어지며 박속같이 흰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 행위는 관운빈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관운빈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인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소. 이제 내 승리를 기원해 주시오." "조심하셔요, 공자님." 모용정은 입가에 살풋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때 담세백의 음침한 음성이 들렸다. "어린 친구,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것, 그럼 노부가 먼저 시작하겠네." 우우웅! 문득 적막을 깨는 파공음이 울렸다. 뇌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음풍이 갑자기 천만 근의 압력으로 바뀌었다. 담세백은 순금의 곰방대를 치켜든 채 몸을 움직였다. 기이한 것은 그의 몸이 한 치씩 느리게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 관운빈은 그와 같은 신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담세백은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오르듯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올라갔다. 그는 짧은 순간에 수백 가지의 방어법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담세백의 기이한 신법에 대처할 만한 무공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는 느리게 허공을 밟으며 다가오고 있었고, 수중의 곰방대는 비스듬이 치켜세우고 있었다. 언제, 어느때 공격을 펴올지 예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는 추나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비였다. 마침내 삼 장 높이의 천장까지 올라갔던 담세백이 왼손을 떨쳤다. 우웅! 고막을 압박하는 파공성과 함께 경풍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것은 작은 원을 중심으로 무서운 흡인력으로 회오리쳤다. "헉!" 관운빈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나왔다. 그는 항거할 수 없는 가공할 흡인력에 자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소용돌이치는 경풍 속으로 그는 빨려들어갔다. 바라보고 있던 모용정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의 눈은 공포에 질린 채 굳어져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관운빈의 몸이 허공에서 마치 풍차처럼 돌고 있지 아니한가! 담세백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고, 그의 왼손은 활짝 펼쳐진 채 아래쪽으로 뻗어 있었다. 그의 손바닥 중심부로부터 가공할 흡인력의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있었다. 관운빈은 그의 손바닥으로 끌려들어가고, 담세백의 손바닥은 관운빈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버... 벗어나야 한다!' 관운빈은 무섭게 회전하면서 의식을 잃지 않으려 정신을 집중했다. 온몸이 풍차처럼 도는 가운데 아차 하면 정신을 잃을 판국이었다. 문득 그는 동사군도에서 탈출했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지옥의 와류(渦流) 속에 갇힌 적이 있었다. 비좁은 술통 속에 웅크린 채 사사영과 함께 그 무서운 와류를 겪지 않았던가! 한편 담세백의 손바닥은 일 장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담세백은 은은히 놀라고 있었다. 그가 펼친 것은 마교 비전의 아수라파천황이었다. 총 삼 단계로 이루어진 아수라파천황을 이 단계까지 펼쳤으나 관운빈은 여전히 버텨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수라면 일 단계 정도에서 이미 뇌수가 터져 죽어야 정상이었다. "잘 가게!" 담세백은 침중하게 말하며 순금의 곰방대를 벼락치듯 내려쳤다. 목표물은 다섯 자까지 다가온 관운빈의 백회혈이었다. 슉! 곰방대는 정확히 관운빈의 백회혈로 떨어졌다. 풍차처럼 회전하던 관운빈의 몸이 머리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으므로 그의 곰방대는 여지없이 그 중심부인 백회혈로 떨어진 것이다. "허허... 이제 끝났군." 담세백은 히죽 웃었다. 곰방대가 관운빈의 백회혈에 닿는 순간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확신했다. 괴수신의 관운빈이 제거되고 나면 더 이상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태화천이 있지만 천외천의 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존재, 괴수신의 관운빈은 그에게서 마군자를 앗아갔고, 생애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마음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런 그가 눈앞에서 뇌수가 터져 죽는 것이다. 그때였다. "......?" 담세백의 눈알이 커졌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관운빈의 정수리에 떨어졌던 곰방대가 솜뭉치를 친 듯 푹신한 느낌을 전달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곰방대는 관운빈의 머리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마치 떡살을 내려친 듯한 느낌이었다. 번쩍! 눈부신 섬광이 아래서 위로 솟아올랐다. 너무나 찰라적인 섬광이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끄아악!" 괴성이 터졌다. 담세백의 목이 관통되었다. 관운빈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용명검이 어느새 뽑혀 그의 목을 정확히 관통해버린 것이다. 쿵! 담세백은 비로소 뇌옥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의 목을 관통한 용명검과 함께.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며 한 손으로는 용명검을 잡고 있었다. "아아! 공자님!" 관운빈은 엉겁결에 그녀를 감싸안았다. "공자님! 흑흑흑......." 관운빈의 몸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머리는 모용정의 가슴에 안기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모용정은 그의 머리를 굳세게 껴안았다.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인해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아... 공자님!" 그녀는 연신 몸을 떨며 부르짖었고, 관운빈의 머리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날... 좀... 놓아주지 않겠소......?" 억눌린 듯한 관운빈의 음성에 모용정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내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알고 보니 관운빈의 얼굴이 자신의 두 쪽 젖가슴 사이에 완전히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멋!" 그녀는 비명을 발하며 황급히 그를 밀쳐버렸다. 관운빈은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뇌옥의 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뒷머리를 바닥에 부딪친 것이었다. "으악!" 관운빈은 비명을 질렀다. "앗!" 모용정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연이은 실수였다. 그녀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관운빈을 바라보았다. 관운빈은 큰 대자로 뻗은 채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고... 공자님......." 그녀는 불길한 예감에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더듬거렸다. 관운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호... 혹시.......' 모용정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결과에 치를 떨며 비명과 함께 관운빈의 몸 위에 엎어졌다. "공자님! 공자님... 눈을 떠보세요! 네? 공자님......!" 관운빈의 몸 위에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바람에 그녀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백삼은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어찌 그것을 의식하겠는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무림의 일대영웅이 어이없는 참변을 당했다는 생각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늘어져 있던 관운빈의 손이 슬며시 움직이더니 그녀의 둔부를 더듬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모용정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다가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하하... 부인의 살결은 정말 곱구려." 아래 깔려 있던 관운빈이 껄껄 웃으며 말하자. "모... 몰라욧! 난... 몰라......." 모용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관운빈의 손이 슬며시 올라가더니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내가 그렇게 어이없게 죽을 운명이라면 애당초 부인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오." 관운빈은 몸을 일으켜 모용정의 가슴에 살짝 입맞춤을 한 후 바닥에 떨어졌던 백삼을 어깨에 걸쳐 주었다. "당신은 사랑스런 여인이오." "아아......." 모용정은 희열에 몸을 떨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④ 관운빈은 뇌옥을 빠져 나왔다. 알몸에 관운빈의 장삼을 휘감은 모용부인이 그의 손을 잡은 채 뒤를 따랐다. 뇌옥의 출구 앞에는 백여 구의 시신이 누워있었는데 시신들을 뛰어넘어 밀고 들어오려는 천외천의 무사들을 두 명의 여인이 혼신의 힘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황보수선과 남궁소연이었다. 관운빈은 천외천의 무사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휙 던지며 우렁차게 외쳤다. "너희들의 주군이란 자의 목이 여기 있다! 더 이상 헛된 야망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앗!" "주... 주군이시다!"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것은 방금 목이 잘린 담세백의 수급이었다. 천외천의 무사들은 모두 사색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그들의 힘이 막강하다 해도 우두머리가 죽은 이상 정신적인 구심점을 잃게 마련이다. 마침내 그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서로 눈치만 보던 그들 가운데 누군가 몸을 돌려 달아나자 마침내 일제히 신형을 날려 달아나고 말았다. "명심해라! 다시 헛된 꿈을 꾸는 자가 있다면 이 관운빈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관운빈은 달아나는 천외천의 무사들을 향해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렸다. 몇몇 내공이 약한 자들은 심후한 내공이 깃들어 있는 사자후에 고막이 터져 비명을 질렀고, 어떤 자들은 심장이 터져 즉사하기도 했다. 관운빈은 확실히 천외천의 무사들에게 경고를 던진 것이다. "아아! 공자님!" "공자님!" 황보수선과 남궁소연은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관운빈은 그녀들에게 뇌옥 안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황보수선도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짤막하게 정리해 말했다. 팔대봉공 중 사공은 사사영에게 죽었으며, 팔공은 좌혼과 남궁소연의 합벽술에 목이 잘렸다는 것이다. 팔대봉공 중 대공인 광목왕은 나머지 인물들과 함께 태화천의 고수들을 막아내기 위해 총단 밖으로 달려나갔으며, 사사영과 좌혼은 음모의 원흉 중 한 명인 건친왕을 제거하기 위해 갔다는 것이다. 관운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둘만 건친왕에게 갔단 말이오?" "네." "안되겠소. 두 분은 모용부인을 맡아 주시오. 아무래도 내가 가보아야겠소." 그는 황보수선과 남궁소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신형을 날렸다. 그는 마군자가 남긴 책자를 통해 건친왕 정도의 거물이 머물만한 곳을 알고 있었으므로 곧장 천외천의 후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얼마쯤 갔을까? 한 전각이 나타났다. 그런데 전각 외부에는 수십 명의 무사들이 피를 쏟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관운빈은 한눈에 그들이 좌혼의 도법에 당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저 대전이 맞겠군.' 그는 지체없이 대전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대전 안에도 시체가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시체들을 따라 회랑을 돌아갔다. 가는 동안 만난 시체는 백여 구도 넘었다. '좌혼이 한풀이를 단단히 했군.' 회랑이 끝나자 화려한 월동문이 나타났다. 그는 직감적으로 월동문 안쪽에 건친왕이 머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진기를 한 모금 마신 후 곧바로 뛰어들었다. "......!" 월동문 안은 하나의 넓은 대전으로 바닥에는 홍색의 주단이 깔려 있었다. 관운빈은 대전 안으로 들어선 순간 눈을 부릅떴다. 사사영과 좌혼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혈도를 제압당했는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두 사람은 반가움과 함께 다급한 표정을 보내고 있었다. 관운빈은 시선을 돌렸다. 대전 안쪽에는 태사의가 놓여있고 그 위에 곤룡포를 입은 한 초로의 인물이 거만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한눈에 그가 건친왕임을 알아보았다. 건친왕의 뒤에는 다섯 명의 홍색관복을 입은 위사들이 위엄있게 늘어서 있었다. "네놈도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이 자객들과 한패이렷다?" 건친왕은 눈알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관운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하가 바로 건친왕이겠구려?" "뭐라고? 이 고연 놈 봤나? 네놈은 본좌가 대명의 황족임을 모른단 말이냐?" "명조의 황족인 것은 알고 있으나 동시에 귀하가 대역의 음모를 꾸민 장본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소이다." "뭐... 뭣이?" 건친왕은 너무나 놀랍고 분노한 나머지 태사의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때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무사가 서로 눈짓하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사사영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한 명이 허리춤의 패검을 뽑더니 대뜸 사사영의 젖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너무나 찰나적인 행동이라 관운빈은 깜짝 놀랐다. 그의 행동을 막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싸악! 하는 소리와 함께 사사영의 가슴옷이 베어졌다. 무사의 검술은 제법 정교한지라 그녀의 옷만을 베었을 뿐 눈송이처럼 뽀얀 젖가슴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사사영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감으로 인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옷자락이 아래로 길게 베어진 바람에 그녀의 젖가슴이 고스란히 밖으로 노출된 것이다. "멈춰라! 한 번만 더 허튼 짓을 하면 네놈의 목은 성치 못할 것이다!" 관운빈은 음랭한 음성으로 경고하며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여차하면 한 번에 몸을 날려 무사의 목을 날릴 자리를 택하기 위함이었다. 무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음침하게 말했다. "네놈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이 계집의 젖가슴을 베어내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지 봐야겠다." 휙! 검광이 호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그의 검은 사사영의 왼쪽 젖가슴을 도려내려 했다. "죽음을 부르는구나!" 관운빈의 신형이 번뜩 날아갔다. 바닥에서 한 치 가량 뜬 채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그의 신법은 가히 전광석화 같았다. 그런데 이때였다. 촤아아! 돌연 천장으로부터 쇠그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차!' 관운빈은 비로소 좌혼과 사사영이 사로잡힌 이유를 알았다. 동시에 방금 전 두 사람이 그에게 다급한 눈짓을 보낸 이유까지 깨달았다. 그는 바닥을 찼다. 돌아가기에는 늦었다. 오직 더욱 빨리 신형을 날려 그물을 피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철그물은 간발의 차이로 그의 등뒤에 떨어져내렸고 그는 바닥에 무사히 떨어질 수 있었다. 덜컹! 한데 막 바닥을 딛는 순간 갑자기 발밑이 허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의 몸은 부질없이 아래로 쑥 떨어지고 말았다. "하하하핫! 네놈도 별 수 없구나!" 건친왕의 득의에 찬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고개를 젓혀 광소를 터뜨리던 그의 입이 딱 벌어진 채 정지되고 말았다. "어......?" 그는 멍청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분명 함정으로 떨어졌던 관운빈이 천장에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관운빈은 그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그의 손에서 검광이 번쩍 일어났다. "크아악!" 참혹한 비명과 함께 두 명의 무사가 어깨서 목이 분리되며 나뒹굴었다. 방금 전 사사영의 젖가슴을 도려내겠다 허풍을 떨어댔던 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위협만 가하고는 관운빈이 함정에 빠지는 것을 보고 검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패검을 검집에 넣기도 전에 목이 잘려 쓰러지고 만 것이다. 관운빈은 좌혼과 사사영의 혈도를 풀어주고는 건친왕에게 다가갔다. "네... 네놈은 대체......?" 건친왕은 사색이 된 채 중얼거렸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세 명의 무사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느냐? 이놈을 죽이지 않고!" 그러나 세 무사는 마치 나무토막이라도 된 양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새 혈도가 짚혀버린 것이다. 건친왕은 엉거주춤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이... 이놈들... 감히 본좌가 누군지 알고 이러느냐? 이 어르신은 황제의 숙부가 되는 건친왕이다. 황족을 능멸하는 자들은 모두 극형에 처해진다는 것도 모르느냐?" 관운빈은 경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건친왕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 이보시게.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노여움을 풀게. 날 살려만 준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네. 말해 보게. 벼슬이면 벼슬... 황금이라도 얼마든지 줄 수 있네. 그러니 제발......." 관운빈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분노의 감정마저 역겨워진 것이다. 그는 눈앞의 인물이 황족이라는 사실조차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비굴한 위인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옥 속으로 몰아넣었단 말인가? 이때 사사영의 꾀꼬리 같은 음성이 들렸다. "당신은 동사군도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동... 동사군도! 너... 너희들이 그걸 어찌 아느냐?" 이번에는 좌혼이 냉랭하게 말했다. "형님, 형수님. 두 분은 어떠실지 몰라도 이 좌혼은 저놈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먼저 저 더러운 놈에게 일도를 날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소?" 관운빈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영매도 한을 풀도록 하시오. 난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기도 싫은 심정이니 먼저 나가보겠소." 관운빈은 허탈한 심정으로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막 월동문 밖으로 나갔을 때 등뒤에서 건친왕의 공포에 찬 비명이 들렸다. ⑤ 새벽 안개가 운귀고원을 자욱하게 덮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물러가고 찬 겨울의 대지 위로 스물거리며 피어오른 안개는 인간들의 추악한 혈전장(血戰場)을 감싸고 있었다. 운귀고원에서는 밤새도록 혈전이 벌어졌다. 천외천을 급습한 태화천의 무사들과 녹림, 십정회의 연맹군들이 천외천의 무사들과 환우의 일전을 벌인 것이다. 그들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밤을 꼬박 밝혔으나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역겨운 피냄새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 그 광경을 한 산봉우리에 바라보는 무리가 있었다. 이남오녀였다. 관운빈을 비롯하여 좌혼, 사사영, 황보수선, 남궁소연, 모용란, 모용정이었다. "공자님,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침묵을 깨고 사사영이 옥 같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그러자 황보수선이 안타까운 음성으로 답했다. "저 무리 속에는 진실한 분들도 계세요. 철소협과 그의 부친 철장주님이 그런 분이에요. 그 두 분은 무림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로 뭉쳐있을 거예요." 관운빈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안개 사이로 보이는 혈전장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마치 그 싸움이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만 내려갑시다. 싸움구경을 즐기기에는 새벽바람이 너무 찬 것 같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눈길은 안개 속을 더듬고 있었다. 그것은 운귀고원 어딘가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며 전투를 지휘하고 있을 태화천주, 즉 그의 부친을 찾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안력이 비범한 그로서도 자욱한 안개 속에서 태화천주 한 명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침내 그는 몸을 돌렸다. 전장으로부터 돌아서는 순간 그의 입술 사이로 가벼운 한숨이 새어나온 것을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갔고, 일행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혈란은 계속 이어졌다. 마치 영겁의 세월을 이어갈듯이....... 아마도 이 싸움의 승자는 태화천이 될 것이다. 태화천의 사대천왕의 협공을 받으며 수세에 몰리고 있는 팔대봉공 중 유일한 생존자인 대공 광목왕이 쓰러지는 순간 그 승리는 확인될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의 역사는 오늘의 혈전을 영광스럽게 기록할 것이다. 무림을 어지럽히던 악마들의 무리들을 태화천이 물리쳤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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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사에모사를 거듭하며 자기 실속만 차리고.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아양으로 모면하면서 지키려구 하겠지.더러운 인생들 같으니라구 현정부는 안~그런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 드립니다
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