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처음부터 사업할 생각이나 계획은 없었다.은퇴후 뭘 할까 막연히 생각은 해 봤지만, 구체적으로 고민은 안 해 봤다.
탁구를 좋아하니까 탁구장이나 하나 해보까 하는 생각 정도는 했다.
완룸사업을 하려고 한 이유는 은행이자보다는 수입이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업치고는 비교적 안전할 거 같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전한 지 어쩐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준비된 돈은 없었다. 빌려서 할 작정이었다.
노량진 학원가가 좋겠지만 거기는 좀 비쌀 거 같아 수도권 평택,수원 근처 오산에서 시작했다.
작년 12월 말, 14억5천만원에 나온 매물을 1천만원 깍아서 샀다. 완룸28개.투룸4개. 해서 계 32개 다. 방이.
돈이 없어 전세,융자가 많이 들어있는 매물이라 살 수 있었다.
그 집에는 융자가 5억, 전세금7억이 들어있어,실제 내돈은 2억4천만원이 든 셈이다.
매입 당시에는 완룸 총수입은 255만원, 융자금에 대한 은행이자(금융원가)155만원, 실제수입 100만원정도였다. 연체없이 다 받을 경우에. 인수당시 미수금이 약700만원이었다.그 돈은 내가 다 부담했다.취득세,복덕방수수료,등기비용,수리비 등이 추가되어, 실제로는 약3억 정도 투자해서, 월 100만원정도 버는 구조다. 미수는 지금도 많다.
그간 전세계약 만료로 10여개의 방이 월세로 교체되었다. 전세 상환금 약 2억원정도가 추가로 투자되었다.따라서 월세 수입도 인수 당시 255만원에서 지금은 565만원 정도로 늘어나고, 금융원가도 그 만큼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잘 될지 안 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나는 현역때 수많은 중앙부처인 노동부,과학기술처,국세청,통일부,외교부,교통부,농림수산부 등과 서울시,부산시,경상남,북도,울산시 등 광역자치단체 그리고 마사회,강원랜드,조폐공사,한전,관광공사,농어촌공사 등 국가 공기업과 지방공기업인 각급 도립병원,지역신용보증재단 등 을 상대로 잘 알지도 못 하면서도 기쓰고 파헤쳐 무언가를 해내는 감사성과를 거양하여 30년간 처자식을 안 굶기고, 부양해 낸 처절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한번은 과천 모 중앙부처 감사장에서 코피가 터져,상대방 서류에 온통 코피가 묻은 적이 있었다.감사받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나는 챙피하고 쪽 팔려 그 직원에게 돌아 갔다가 나중에 내가 부르면 다시 오라고 하고, 서류에 묻은 코피를 닦아 낸 후, 다시는 그 직원을 부르지 않았다.
감사하다가 병 나서 쓰러져 링켈 맞고, 드러 누운 적도 여러 번 있었고,적출 부담감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밥을 안 먹어도 더부룩하니 배만 부르고, 입맛은 뚝 떨어져 기운도 없고, 과로로 간 수치는 올라가고, 뒷골은 땡기고, 목은 뻑뻑해서 목을 돌리면 뚝~뚝 소리가 나서,어려서 목 비틀어 놓고 가지고 놀던 물방게처럼, 주기적으로 목을 돌려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감사하러 기관에 들어가는 게,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 걸 극복하고, 솔밭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티끌하나없는 중앙부처 본청, 공기업 본사에서 뭔가 감사성과가 될 만한 것을 끝끝내 적출해 내, 생존해(나는 감사 나가서 지적을 못하면 내가 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면,곧 죽는 것으로 생각함,그래서 감사 나가서 빈 손으로 들어 온 적이 30년 동안 단 한번도 없었음.그때는 감사원 직원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했음), 오늘에 이른 내가,
집 사서 세주고 월세 받는 이처럼 쉽디 쉬운 일 조차 못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라는 심정으로 마누라,어머니(그간 어머니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찬성했지만,이 사업하는 것만은 내 생애 최초로 반대 하심)를 비롯한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 사업을 시작 함.
해 보니 역시 쉬웠다. 지금까지는. 할 게 없다. 또 내 예상대로 잘 될 거 같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이거저거 시간제 임시직으로 몇 개 걸쳐 놓은 데가 있어, 고게 끝날 이삼년 후에 본격적으로 사업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때는 2호점, 3호점도 내 볼 생각이다.
첫댓글 좋은 결과 얻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