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불교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사후를 위하여 공덕을 쌓는 종교의식.
내용
49재나 수륙재(水陸齋)가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그 고혼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하는 불교의식인 데 반하여, 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에 공덕을 미리 닦아, 사후에 지옥 등 고통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신앙에 의거한 불교의식이다.
이 의식은 ≪예수시왕생칠재의 預修十王生七齋儀≫라는 의식집에 근거를 둔 것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의 시왕신앙(十王信仰)을 불교에서 수용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 의식이 언제부터 행하여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고려사≫에 시왕신앙의 흔적이 보이고 있고, 고려 후기에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가 많이 도설(圖說)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시왕신앙이 유행한 것과 더불어 예수재도 행하여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에 전하는 예수재의문은 ≪범음집 梵音集≫·≪작법귀감 作法龜鑑≫·≪석문의범 釋門儀範≫ 등에 전해지고 있다. 이들의 예수예문(預修禮文)은 의식의 절차를 다소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기는 하였으나 큰 골격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다.
이들 의식문의 특징은 다신교적인 요소가 많이 내포되고 있는 가운데, 명부시왕(冥府十王)과 그 권속이 신앙의례의 절차에 크게 삽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불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장신앙과 결부시키고 있음도 한 특징으로 살필 수 있다.
이 의식에는 설단양식이 있는데 이는 <예수이주야십단배설지도 預修二晝夜十壇排設之圖>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그림].
이 설단도에 의하면 사위의 삼단(三壇)인 법(法)·보(報)·화(化) 삼신불단(三身佛壇)은 법당 안에 설치하고, 법당 안 동쪽에는 지장단(地藏壇)을, 서쪽에는 호법선신중단(護法善神衆壇)을 설치하며, 법당 밖에는 염도대제(閻都大帝) 이하 명부시왕단을 설치한다.
또, 그 동쪽에는 하단위(下壇位), 그 서쪽에 추루단(醜陋壇), 그리고 그 아래쪽에 동쪽에서부터 고사단·종관단·마기단 등을 설치한다.
이 중 삼신불단을 상단, 지장단을 중단, 신중단을 하단이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설단의식에서 보면 명부시왕신앙이 중심이 되어 예수재의 의식절차에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의식의 신앙적 구성요소가 밀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이 의식의 설단도가 하나의 만다라(曼陀羅)가 되는 셈이다.
이 의식이 달리 생전예수재라고 불리는 까닭은 생전에 미리 명부시왕전에 복을 많이 쌓음으로써 죽어서 명부의 시왕을 만나면 극락에 갈 수 있는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신앙적 근거에서 나온 것이다.
명부의 시왕이란 중국 도교적 신앙에서 나온 것인데,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한 번씩 7번, 그리고 백일 만에 한 번, 1년 만에 한 번, 3년 만에 한 번 이렇게 하여 10번 생전의 죄과에 따라 시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재의 진행절차는 앞에서 말한 각 단에 공양 공경하여 신앙심을 일으킴으로써 공덕을 쌓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재에서 복을 짓는 방법으로는 각 단에 대한 공양 예경과 함께 보다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된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년월일에 따라 저마다 살아 있을 때 갚아야 할 빚을 지고 있고, 이를 예수재를 통하여 갚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빚이란 불교경전을 읽어야 할 빚과 돈 빚이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는 경전을 읽고 보시를 하여야 한다. 경전을 읽는 것은 예수재를 올리는 것으로 가능해지고, 보시는 종이로 만든 지전(紙錢)을 현금을 내고 사는 방법을 취한다. 그리고 이 지전을 시왕전에 헌납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빚을 갚으면 영수증과 같은 징표를 받아 그 한 조각을 불사르고 남은 조각은 간직하였다가 죽은 뒤에 가지고 가서 시왕전에 바친다는 것이다. 이 징표는 죽은 뒤에 명부시왕을 만났을 때에 빚을 갚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된다.
이렇게 하여 생전에 예수재를 올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은 다음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 의식은 노인들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사찰 내에서 많이 행하여지고 있다.
이 예수재는 어느 개인의 발원에 의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참하여 행하는 공동체적인 종교행사이다. 이 의식의 진행중에는 범패와 의식무가 장중하게 펼쳐질 뿐 아니라, 의식도량의 장엄도 극치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는 축제적인 분위기를 지니게 된다.
예수재의문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생년월일에 따라 갚아야 될 빚을 60갑자에 의하여 밝혀놓고 있다. 즉, 갑자생의 경우에는 돈 빚이 5만 3000관이고, 경전을 읽어야 될 빚이 17권이며, 이를 납부하여야 할 곳은 명부의 제3고(第三庫)인 육조관(六曹官)이라는 것이다.
경전을 읽어야 될 빚은 예수재의문의 낭독과 그 집행으로 대행하거나 아니면 필요한 경전을 구입하여 불단에 올리는 것으로 빚을 갚는 형식을 취한다. 돈 빚은 고사단의식(庫司壇儀式)이 따로 있어서 이 의식절차에서 지전을 올리고 정중한 의식을 집행함으로써 빚을 갚게 된다.
결국, 이 같은 의식은 시왕신앙의 불교화를 위해서 불교경전을 유포하도록 의식화하고 금전 빚으로 재시(財施)를 유도하기 위해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