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 영혼과 우리 주님의 인격 사이에 이런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교제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넓고 깊을까요! 주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의 통로는 실낱 같은 냇물이 흘러가는 그런 좁은 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놀랄 만큼 넓고 긴 통로로 그 통로를 따라 엄청난 양의 생수가 홍수처럼 넘쳐 흐릅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그러니 꾸물거리지 말고 들어갑시다. 이 교제의 성에는 진주로 된 문이 많이 있습니다. 진주가 한 개씩 박혀 있는 그 모든 문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마치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작은 창문 하나뿐이라면, 그 좁은 문을 통해 교제의 말을 나눈다는 것은 정말 큰 특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문이 활짝 열려 있다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만일 주 예수님이 사납게 날뛰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와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시다면, 우리는 주님께 우리 사랑을 전달해 주고 하나님 아버지 집의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줄 메신저를 보내 달라고 간절히 소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얼마나 인자하신지요. 주님은 그의 집을 바로 우리들 집 옆에 지으셨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가깝습니다. 아예 우리와 함께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와 늘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 위해 가련하고 미천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그곳을 성전 삼아 사십니다. 그런데 이 주님과 늘 교제를 나누며 살지 않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가서 만날 그 길이 멀고 험할 때는 친구들이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면 무언가 이상한 것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어떤 아내든 자기 남편이 출타 중일 때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여러 날을 지냅니다. 그러나 남편이 자기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을 절대 참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주의 잔치 자리에 앉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주를 찾으십시오. 그는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그를 포옹하십시오. 그는 여러분의 맏형입니다. 그에게 꼭 붙어 있으십시오. 그는 여러분의 남편입니다. 그를 품에 꼭 안으십시오. 그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몸입니다.
July 31
"I in them" (John 17: 23).
If such is the union which subsists between our souls and the person of our Lord, how deep and broad is the channel of our communion! This is no narrow pipe through which a thread-like stream may wind its way. It is a channel of amazing depth and breadth along whose glorious length a ponderous volume of living water may roll. This city of communion has many pearly gates. Each gate is thrown wide open, that we may enter assured of welcome. How much we are blessed in having so large an entrance! Had the Lord Jesus been far away from us, with many a stormy sea between, we would have longed to send a messenger to tell Him of our love and bring us tidings from His Father's house. See His kindness. He takes lodging with us and tabernacles in poor humble hearts. How foolish we are if we do not live in habitual communion with Him! When the road is long, dangerous, and difficult, we need not wonder that friends seldom meet each other. But when they live together, will Jonathan forget his David? A wife may, when her husband is on a journey, live many days without holding a conversation with him, but she could never be separated from him if she knew he was in one of the rooms of her own house. Seek your Lord for He is near. Embrace Him for He is your Brother. Hold Him fast for He is your Husband. Press Him to your heart for He is of your own flesh.
7월 31일
제목 : 내가 저희 안에
요절 :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함이로소이다.(요17:23)
만일 우리의 영혼과 우리 주님의 인격사이의 결합이 이런 것(요17:23)이라면 우리의 친교의 길은 얼마나 깊고 넓을까요! 주님과 우리와의 교제의 통로는 실같은 개천이 굽이치며 흐르는 것같은 그런 좁은 파이프(관)가 아닙니다. 그것은 굉장한 길이의 통로를 따라서 엄청난 생수의 양이 굽이쳐 흐르는, 놀라운 깊이와 넓이의 수로(水路)입니다. 그리고 이 친교의 도성엔 진주로 장식된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각 문은 우리가 환영을 확신하면서 들어가도록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토록 넓은(큰) 천국의 현관(입구)을 가졌으니(열려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복됩니까!
만일 주 예수님이 사나운 거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와 아주 먼 곳에 계신다면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전(말씀을)하고 또 하나님 아버지의 집의 소식(기별)을 가져올 전달 자(메신저)를 보내 달라고 간절히 소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자함을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숙박하고 있습니다. 즉 빈천(貧賤)한 (가난하고 비천한) 우리의 마음을 성전(성막)으로 삼고 계십니다.(역자주1)
그런데 우리가 만일 주님과 늘 동거의 교제 속에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가서 만날 그 길이 멀고, 위험하고, 어렵다면 친구들이 서로 드믈게 만난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그렇지만 함께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면 무언가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살 때 요나단이 다윗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아내가 그의 남편이 여행중에 있을 때에는 그 남편과 대화를 계속하지 못한 채 여러 날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내가 그 남편이 그 여인의 집의 방들 중 하나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여인은 그 남편과 절대로 떨어져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까이 계시는 그대의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대의 형님인 주님을 포옹하십시오. 그대의 남편이신 주님을 꽉 붙잡으십시오. 그대 자신의 몸이신 주님을 그대의 가슴에 바짝 안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