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퇴고 시간은 정비례
쓰기는 ‘지금 실력’입니다. 다듬기는 ‘다음 실력’입니다.
다듬어야 글쓰기 실력이 나아집니다. 쓰기는 재료를 모으는 일입니다.
다듬기는 그 재료로 완성하는 일입니다.
좋은 글과 퇴고 시간은 정비례합니다.
네 가지 방법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 같다고 했습니다.
심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은 잘 썼다 싶었던 내 글을 며칠 뒤 다시 읽을 때, 절실하게 와닿습니다.
좋은 글과 퇴고 시간은 정비례합니다.
완성한 글을 잠시 옆에 두었다가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꺼내 읽으면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보이지 않던 오탈자나 어색한 문장이 드러납니다.
초고는 재료, 퇴고는 작품. 일단 생각을 거침없이 씁니다.
목재가 크면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듯 글을 넉넉하게 써 놓으면 다듬기 수월합니다.
첫 글을 잘 쓴다는 마음은 내려놓습니다.
옷감이 많으면 큰 이불도 만들 수 있습니다. 글감을 많이 모아둡니다.
글감을 이어 붙이며 글을 쓰고, 다듬으며 완성합니다.
꾸준히 반복해 살피는 가운데 좋은 글이 만들어집니다.
요즘 사람들은 블룩(blog+book) 방식으로 기록합니다.
작은 글을 꾸준히 블로그나 SNS에 씁니다. 때가 되면 이를 묶습니다.
넉넉한 양이 되면 다듬어 한 편의 글로 만듭니다.
꾸준히 쓰고, 수시로 다듬어 공유한 뒤 책으로 엮습니다.
여러 선생님과 함께한 글쓰기 모임을 수년 간 반복하며 터득한 네 가지 퇴고 방법이 있습니다.
소리 내어 읽고, 출력해서 읽고,
둘레 사람에게 부탁하고, 시간을 두고 다시 읽습니다.
첫째, 소리 내어 읽습니다.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가운데 호흡이 빨라지면 긴 글입니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있어 어색하다면 멋 내려는 글이 분명합니다.
짧고 쉬운 말로 다듬습니다.
둘째, 출력해서 읽습니다.
저는 종이가 친숙한 세대입니다. 읽고 써온 문화가 달라 자신 있게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출력하여 읽을 때 집중이 더 잘 됩니다.
스마트폰 화면이나 컴퓨터 모니터란 틀에서 벗어나 시야가 트여서 그런지,
어색한 문장이나 오탈자가 더 잘 들어옵니다.
셋째, 둘레 사람에게 부탁합니다.
열심히 쓰고, 이를 다시 읽습니다. 이를 몇 번 반복하면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힘든 일로 느껴지는 가운데 오타나 어색한 문장이 쉽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둘레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주로 아내에게 부탁합니다. 아내는 사회사업가가 아닙니다.
아내가 읽으며 이해하지 못하거나 낯선 단어가 있으면 바로 수정합니다. 아내는 거침없는 비판을 보냅니다.
무언가 뽐내려 쓴 문장을 정확하게 알아보며 지적합니다.
무슨 말을 해도 의가 상하지 않을 아내란 비평가가 곁에 있으니 복을 받았습니다.
넷째, 시간을 두고 다시 읽습니다.
완성한 글을 바로 다듬지 않습니다. 다음 날 읽어봅니다.
저는 주로 지하철로 이동하며 지난 밤 쓴 글을 출력하여 읽습니다.
시간을 두고 읽으면 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때 어색한 문장이나 오타 따위가 눈에 잘 들어옵니다.
식당에 갔습니다. 음식은 근사한데
음식 담은 접시가 더러우면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뜻있게 실천했다고 해도
이를 옮기는 글에 문제가 있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심지어 그 실천을 낮게 보기까지 합니다.
여행 떠나 머물게 된 숙소에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나오면 그때부터 내내 불편합니다.
책으로 여행 떠나 만난 글 속에 작은 오타 하나 나오면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글쓰기의 기본이다.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사소한 오류들이 몇 개 눈에 밟히면
더 이상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이 독자의 본능이다.
이렇게 보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읽히기 위함이라는
글의 본래 목적까지도 뒤흔드는 ‘사소하지 않은’ 역할을 한다.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이상원, 황소자리, 201!)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분할 마음은 별로 없지만 서너 가지 정도의 기본은 있다.
한 문장에 같은 단어가 서너 개 있을 때 나는 그 글을 신뢰하지 못한다.
똑같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는 사람은 글쓰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 위즈덤하우스, 2017)
좋은 글의 예와 그렇지 못한 글의 예를 차례로 보여주면서,
어디가 좋고 어디가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면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자연스럽게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의 단점은 칭찬을 받는 학생은 기분이 좋지만, 지적을 받는 학생은 충격이 크다는 점이다.
조언할 때 표현을 조심하지 않으면 플러스 효과보다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크다.
학부 수업에서 이러한 형식의 수업을 처음 진행하였을 때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공개처형과 같은 이런 방식을 멈춰주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 바다출판사, 2018)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