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마음(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장)
저는 절에서 여러 해를 살았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잿빛 옷을 입고 스님의 머리 긴 제자, 즉 유발상좌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가족 상담을 주제로 강의도 다니고, 상담도 하러 다녔습니다. 한 번은 인천교구에 ‘부모도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사흘간 워크숍을 가게 되었습니다. 회색 옷을 입고 짧은 머리로 도착한 모습이 영락없이 절에서 내려온 사람 같았습니다. 내심 성당에 가면 반감을 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당 문을 들어서고 성모상 앞에 있던 한 형제님이 저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시는 분이세요?” 올 게 왔구나 싶었지만 당황스러웠습니다. “네, 절에서 왔습니다.”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네, 그러신 거 같네요. 어서 오십시오. 절에서 오셨다니 작년 성지순례 갔던 날이 생각나네요. 부처님 오신 날 성지에 신부님과 여러 사람이 함께 갔었는데,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여러분, 오늘은 귀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성지에 와서 함께 기도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부처님이 참 고마운 분입니다. 우리 오늘 부처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기도를 드립시다.’ 그 말씀을 듣고 우리 신부님이 더 커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더 열심히 촛불 봉헌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신 일 잘 마치고 가십시오.”
순간 형제님의 말씀에 제 속의 긴장과 불안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았습니다. 제가 가톨릭에 처음으로 호의를 가지게 되고, 지금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그날 그 형제님이 저를 대하던 태도와 부처님 오신 날에 신부님이 하셨다는 말씀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날 만약 형제님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왜 절에 있는 사람이 성당에 오고 난리냐는 말을 했다면 아마 저는 가톨릭 신자가 될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탁 트인 마음, 다른 종교도 기쁘게 수용하고 인정하는 넉넉한 마음이 묻어나는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호의를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세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들과 워크숍을 마치고 수녀님을 제가 있던 조그마한 암자에 모시고 와서 차를 대접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과 수녀님이 차를 마시고 활짝 웃으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내 종교만 옳고 네 종교는 틀리다는 닫힌 마음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한 번은 암자에 오신 분께 인천교구에서 경험한 일을 말씀드리니 참 좋은 분을 잘 만났다며 그런 마음을 가진 분이 계신 종교라면 믿어도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탁 트인 마음은 사람에게 호감을 줍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탁 트인 마음을 가지고 싶은 소망을 품게 합니다. 그것이 이어져 탁 트인 마음을 가진 종교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내가 품는 트인 마음 하나가 제일 좋은 선교입니다. 제게 처음으로 가톨릭 신자로의 첫발을 내딛게 해준 그 날 그 형제님이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