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탄 비구니 / 정호승
그대 지하철역마다 절 한 채 지으신다
눈물 한 방울에 절 하나 떨구신다
한손엔 바랑
또 한손엔 휴대폰을 꼭 쥐고
자정 가까운 시각
수서행 지하철을 타고 가는 그대 옆에 앉아
나는 그대가 지어놓은 절을 자꾸 허문다
한 채를 지으면 열 채를 허물고
두 채를 지으면 백 채를 허문다
차창 밖은 어둠이다
어둠속에 무안 백련지가 지나간다
승객들이 순간순간 백련처럼 피었다 사라진다
열차가 출발할 때마다 들리는
저 풍경소리를 들으며
나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다니는 사내처럼 운다
사람 사는 일
누구나 마음속에 절 하나 짓는 일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마는 일
- 정호승 시집 <포옹> 2007
마음을 짓고 허무는 존재의 운명
― 정호승 「지하철을 탄 비구니」 평론
정호승의 시 「지하철을 탄 비구니」는 현대인의 일상 공간인 지하철을 수행의 공간이자 인간 존재의 내면을 비추는 성찰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작품이다. 이 시는 불교적 상징을 빌리면서도 종교시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상실과 회복, 희망과 좌절, 생성과 소멸이라는 삶의 근원적 순환을 노래한다. 특히 '절을 짓고 허무는 일'이라는 반복적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숙명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한 점에서 정호승 시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는 첫 행부터 독자의 상상력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대 지하철역마다 절 한 채 지으신다."
비구니가 실제 절을 짓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절이 세워진다는 표현은 곧 마음속에 자비와 기도, 수행의 공간이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절은 건축물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인간이 세상을 견디기 위해 세우는 정신적 거처이다. 정호승은 도시의 가장 세속적인 공간인 지하철역을 가장 성스러운 공간으로 바꾸는 시적 전환을 이루어낸다. 이 한 줄만으로도 속세와 수행, 현실과 초월이 동시에 존재하는 독특한 시적 공간이 완성된다.
이어지는 구절은 더욱 인상적이다.
"눈물 한 방울에 절 하나 떨구신다."
절은 눈물에서 태어난다. 여기서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연민과 자비의 근원이다. 절은 벽돌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세워진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실천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이며, 동시에 인간의 가장 깊은 고통이 오히려 영혼을 세우는 힘이 된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비구니의 모습 또한 매우 현대적이다.
"한손엔 바랑 / 또 한손엔 휴대폰을 꼭 쥐고."
이 두 사물은 시 전체의 시대성을 결정짓는다. 바랑은 수행자의 전통이며, 휴대폰은 현대 문명의 상징이다. 정호승은 수행자조차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휴대폰은 결코 수행을 방해하는 물건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과 문명이 한 몸처럼 공존하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절제된 묘사는 정호승 특유의 현실 감각이다.
시의 중심은 화자의 고백에서 드러난다.
"나는 그대가 지어놓은 절을 자꾸 허문다."
이 순간 시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다. 독자는 지금까지 비구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실 시의 중심은 화자의 내면이었다. 비구니는 마음을 세우는 사람이고, 화자는 그것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더욱 강렬한 것은 다음의 과장법이다.
"한 채를 지으면 열 채를 허물고 / 두 채를 지으면 백 채를 허문다."
이 숫자는 실제 계산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번민이 수행보다 훨씬 빠르게 자신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정신적 비율이다. 희망 하나를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절망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이 부분은 현대인의 불안과 자기부정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대목이다.
시는 다시 풍경으로 이동한다.
"차창 밖은 어둠이다."
이 한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의미를 품는다. 어둠은 단순한 밤이 아니다. 삶의 불확실성이며 죽음이고 상실이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이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무안 백련지"
는 절묘한 상징이다.
백련은 불교에서 청정과 해탈을 의미한다.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인간 역시 세속 속에서 깨달음을 향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런데 백련지는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간다. 깨달음 역시 잠시 스쳐가는 풍경일 뿐 붙잡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구절은 시적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승객들이 순간순간 백련처럼 피었다 사라진다."
지하철 승객들은 연꽃이 된다.
내리고 타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고 지는 연꽃처럼 표현되는 순간, 평범한 도시인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윤회가 된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생성과 소멸이 모두 백련의 개화와 낙화 속에 담긴다.
그리고 시는 갑자기 가장 개인적인 슬픔으로 전환된다.
"나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다니는 사내처럼 운다."
여기에서 비로소 독자는 화자가 왜 절을 허물고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는 상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잃어버린 아내는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지나간 사랑일 수도 있으며,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젊음이나 순수함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찾아다닌다'는 현재진행형이다. 상실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삶의 방식이다.
마지막 연은 이 시를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사람 사는 일 / 누구나 마음속에 절 하나 짓는 일 / 지은 절 하나 / 다시 허물고 마는 일."
이 네 줄은 정호승 시 세계 전체를 압축한 문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희망을 세우고, 사랑을 세우고, 믿음을 세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다시 무너진다. 그리고 또다시 세운다. 인간은 결국 평생 마음속에 절을 짓고 허무는 일을 반복하는 존재이다.
여기에는 비관도 낙관도 없다.
오직 삶의 진실만이 존재한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거창한 철학을 일상의 풍경 속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지하철, 휴대폰, 승객, 차창, 풍경소리 같은 매우 현실적인 사물들이 불교적 상징과 결합하면서 일상이 곧 수행이 되고 삶 자체가 하나의 법문이 된다. 정호승은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수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정호승 시의 특징인 '낮은 목소리의 깊은 울림'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과장된 감정이나 화려한 수사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오래 흔드는 힘은 절제된 언어와 정확한 상징에서 비롯된다. 특히 '절을 짓는다'와 '절을 허문다'는 반복 구조는 삶의 순환성을 리듬으로 구현하면서 독자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수행처럼 남는다.
결국 「지하철을 탄 비구니」는 비구니에 관한 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절 하나를 세우며 살아간다. 사랑이라는 절, 가족이라는 절, 희망이라는 절, 믿음이라는 절을 짓는다. 그러나 삶은 그것을 끊임없이 허물어뜨린다. 그럼에도 다시 절을 짓는 일,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정호승은 이 평범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삶의 진실을 지하철 한 칸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조용히 증언하며, 독자에게 "당신은 지금 어떤 절을 짓고 있으며, 또 어떤 절을 허물고 있는가"라는 오래 남는 질문을 건네고 있다. 이는 서정시가 인간 존재의 본질에 얼마나 깊이 다가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성취이며, 한국 현대시가 일상의 풍경 속에서 어떻게 보편적 철학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