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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1:16)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잠 11:17)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잠 11:18)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잠 11:19)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잠 11:20)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 11:21)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잠 11: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잠 11:23)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잠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6)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잠 11:27)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잠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잠 11:29)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잠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 11:31)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유덕한 여자와 근면한 남자(잠 11:16-31)”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16-21: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남녀의 구별은 강함과 부드러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자의 유덕함이란 강하지 않지만 유연하고 부드러움이 오히려 품위 있고 존영을 지킬 수 있겠습니다. 남녀평등이나 남녀동등이라는 표현은 여자가 남자답게 강하고 억센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여성도 고된 일을 거뜬히 해내야 한다는 것으로 남녀동등이 아닙니다. 여자의 공손함과 세심함 그리고 여자로서의 품위와 친절로 능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만과 싸늘한 표정으로는 경멸의 대상 내지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신 남자는 강인함으로 재물을 모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근면한 남자로 번역되었는데, 실은 힘으로 재물을 모은다는 뜻입니다.
인자한 마음(영혼)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 풍성하게 합니다. 성품이 좋은 사람은 친절하고, 상대를 용서하려는 마음이 항상 준비된 자입니다. 포용력이 있으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입니다. 양보하려는 성품입니다. 반면에 잔인한 자의 특성은 양보가 없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체면도 염치도 없으며 의리와 사랑도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몸마저도 목적을 위해서는 희생시켜버립니다.
한국 중년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1위라고 들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가정도 친구도 교회도 하나님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직장에 매여 밤낮으로 일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명을 단축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잔인함으로 가족, 친지, 동료, 교회에도 잔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삶은 허무한 것입니다. 자신을 기만하고 불의와 동행하고 이윤을 얻는 일이라면 세상 끝까지도 가야하고, 몇 날을 새어도 추진하고야 마는 자를 출세의 본보기라고 추켜 세웠습니다.
북한에서 영웅칭호를 받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월등한 재능과 밤낮없이 노력하고 일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가슴이 주렁주렁 훈장을 단 자들이 그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같이 다 죽어가는 인상들이었습니다. 남한에도 입사 1년 만에 대리, 과장을 따고 3년에 부장, 5년에 이사, 그리고 사장이 된 자가 모든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된 적이 있습니다. 슬픈 우상들이요, 일그러진 영웅들입니다. 오직 잘 살아보겠다는 신념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이그러진 자화상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아우성과 설령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도 가족과는 생이별하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고, 술 마시고,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서 일하고 하는 반복된 생활이 10년 20년씩 하고 나면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부지런한 것과 목적에 의해서 혹사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악인에게 돌아오는 삯은 헛것이지만,
정의를 심는 사람은 참 보상을 받는다.
정의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지만,
악을 따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잠 11:18-19)”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뒤틀린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에 도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딴지를 거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허황되다고 불평합니다. 윤리나 도덕적인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살아 계신 말씀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심판과 사망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진실로 믿으며, 순종하기를 마음 먹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지혜가 없는 아름다움은 돼지코에 금고리 같다고 합니다. 맹한 아름다움, 머리에 든 것이 없는 겉치레 믿음은 돼지코의 금고리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부조화의 극치입니다. 아름다움에도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듭시다. 여름철이지만, 수영장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보기에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제는 좀 어색하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주대하고 앉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세대차이라고 비난 받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일상 옷차림이 너무 지나친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이렇게 표현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성의 품위는 이렇게 천하고 값싼 생각 때문에 망칩니다. 지혜를 품는 아름다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름다움에 현숙함이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최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진주목걸이를 두른 돼지처럼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22-31: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롬 8:28)”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의 마음은 평온이 있으므로 생각하는 것이나 소원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는 평온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분쟁이 될 수 있습니다. 평온과 성취의 의미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일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선합니다. 이 점만 유의하면 본 구절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봅니다.
악인의 생각과 소원은 진노의 날에 자기에게 임할 진노를 쌓는 일입니다. 악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과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입니다. 선은 곧 하나님의 성품의 종합입니다. 의로움과 거룩함, 그리고 사랑입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데도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 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잠 11:24-25)”
베푸는 삶은 풍요로운 삶을 보증합니다. 베푼 만큼 하늘에서 곱절만큼이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펀지처럼 짜낸 만큼 새로운 것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베푼 경험이 있는 분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개인으로서는 가장 많이 기부한 분이 매스컴에 보도되었습니다. 400억을 모 대학병원에 기부하였습니다. 작고하신 어머니의 유언대로 이름도 밝히지 말라고 해서 아들이 그분의 뜻을 성취시켰습니다. 그 아들이 수수한 옷차림에 차도 타지 않고 걸어서 왔다고 합디다.
베푸는 삶은 영혼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이미 작고하신 분의 뜻을 아들이 그대로 이루었다는 점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유언을 변경하여 일부만 기부해도 누가 지적할 자가 세상에는 없었지만, 아들이 유언 그대로 실행했다는 점에서 놀랍고 감사했으며,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하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베풀면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영혼의 풍성함에 비해서 초라한 것입니다. 해본 자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랜드 계열은 기독교정신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입니다. 총수는 섬기는 교회에 엄청난 재물을 헌금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된 소문입니다. 성경적이고 성경에 따른 삶을 표방한 국내의 대표적인 크리스천 기업입니다. 그 계열회사에서 연일 신문에 대문자로 파업에 관한 기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실제로 그 내용은 잘 모릅니다. 노조원들도 기독교인이요, 회사측도 신실한 기독신자들입니다. 어제는 공권력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무리하게 까르푸를 사들인 투자가 오늘과 같은 불행한 일을 벌이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왜? 현명한 그들이 몰랐을까? 이런 결과를 예측하고서 그랬나? 싶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화가 난 것은 이랜드가 섬기는 교회의 처신들 때문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하나님 말씀과는 동떨어진 일이 벌어지게 했는지, 교회의 책임이 크고 목회자들의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곡식을 저장하여 두기만 하는 사람은 백성에게 저주를 받고,
그것을 내어 파는 사람에게는 복이 돌아온다(잠 11:26)”
나눔의 실천, 작은 것은 쉽지만, 큰 것은 어렵습니다. 인간의 탐심 때문입니다. 내어주면 창고가 점점 비어갈 것이고, 나중에는 텅 빈 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을 했다 해서 다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복이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보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입니다. 영적 기근에 시달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그들이 절실하게 요청하는 재물을 먼저 나누어야 합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데, 아무리 영혼의 풍성한 말씀으로 먹일 수는 없습니다.
먼저는 그들이 원하는 곡식을, 재물을 나누어서 의심을 믿음과 신뢰로 바꿔야 합니다.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게 한 다음에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기근 때에 폭리를 취해 곡식을 팔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이익을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연약한 근무조건에 믿음만 의지하고 홈에버 측에 희망을 걸었던 일용직 비정규직원들의 하소연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조도 강성 민주노조의 강압을 따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회사측과 협상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관련된 목사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휴가 떠났습니까? 아님 방학이라 수련회 쫓아갔습니까?
선을 구하는 자는 남을 기쁘게 하며 격려하고 위로를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악을 더듬어 찾는 자는 불의를 기뻐하여 이웃을 파멸을 원하는 자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 잘된 것을 볼 수 없는 악심을 말합니다. 이런 자는 결국 자신마저도 미워하여 멸망으로 이끌게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믿되 열심히 믿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부자의 어리석음은 하늘의 소망보다는 재물로 향한 소망이 더 큰 것이었습니다. 달리 잘못된 신학을 하지도 않았고, 이단의 꾀임에 빠진 것도 아닌 건실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소망의 방향이 어긋났습니다. 하늘(하나님)보다는 재물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그래서 멸망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재산만을 믿는 사람은 넘어지지만,
의인은 푸른 나뭇잎처럼 번성한다(잠 11:28)”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 누구입니까? 도둑질 하는 자의 후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을 물려주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알코올중독자는 건강한 자녀를 낳지 못합니다. 성병을 가진 자의 자식들은 정상아를 낳을 수 없습니다. 독재자들의 자식들 잘된 것 못 봤습니다. 마약중독자이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든지 하여 삶의 기복이 심하고 아예 독신으로 살든지 하여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입니다. 남을 해하고 속이고, 도둑질 하고, 부패한 자들의 후손들은 그 영향을 받습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불량유전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아비의 악습까지도 대물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 신실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포기하는 것,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다 자녀들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다 하더라도 지혜로는 자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지식이 탁월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경륜입니다. 위인들을 보면, 지위나 재물 따위가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삶을 하나님처럼 사는 사람이 위대한 자입니다. 왜소하고 안질이며, 간질병까지 겹친 바울이었지만, 이방인의 사도로서 인류역사상 위대한 인물 중에 꼽히는 사람입니다. 사악한 형 집행자였으며, 초대교회를 핍박했던 그였지만, 다메섹 회심 이후, 바뀐 인생은 보장된 장래를 뿌리치고 쫓기는 죄인처럼 살다가 죽었음에도 그는 위대한 인물에 속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인이 받는 열매는 생명의 나무요,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
의인이 이 땅에서 한 대로 보상을 받는데,
악인과 죄인이 그 값을 치르지 않겠는가?(잠 11:30-31)”
지혜는 성경지식과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지혜는 이렇게 아는 하나님 지식 안에서 행하는 능력이며, 그리스도와 그 진리 안으로 사람을 들어올 수 있도록 그들을 섬기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중에서 큰 것은 내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요, 사람들을 영생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내가 천국 열쇠를 가진 것입니다. 내가 풀면 풀리고 닫히면 닫히는 천국문의 열쇠를 가진 자입니다.
사람들을 영생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성경지식이 필요하고 성경대로 사는 삶의 경륜이 쌓여야 합니다. 그 행동방침은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사랑과 베품으로 하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자였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의인이라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소한 죄, 또는 구조적인 죄에 노출되어 무의식 중에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죄일지라도 보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책에 대한 값은 치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악인들이 행한 범죄에 대해서 보응이 없을 리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심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때문에 의인을 향한 책망은 회개를 위한 징계이지만, 악인에 대한 응징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하기 위한 심판인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히 12:6)”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악인을 향한 심판이 지연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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