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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위대한 비전의 성취자들이 됩시다. / 잠언 29:18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가족들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세 가지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첫째, 신앙이 하나 되어야 행복합니다. 가족들 간에 가치관이 다르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물질 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면 물질을 사용하는데 충돌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가진 사람은 온전한 십일조를 합니다. 자기 생각이나 형편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정직하게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집안 막아먹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일을 성수하려고 하는데 신앙이 없는 사람은 주일에 여가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충돌이 일어나고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과 있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번에 부부세미나에 다녀왔는데 간증을 들어보니 목회자의 가정인데도 사랑하지 못해서 불행한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 사랑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 자리, 어머니의 자리를 배우고, 남녀의 차이점을 배우면서 짧은 기간에 회복이 되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셋째, 비전으로 하나 되어야 행복합니다. 가정과 비전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세계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의 성취를 위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와를 아담의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무엇을 도우라고 하와를 만들어주셨습니까? 아담이 이루어야 할 세계비전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부부는 멍에를 함께 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곳을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각자 다른 곳을 보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함께 멍에를 멘 두 마리의 소가 서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싸우느라고 목적지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암 3:3에서는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말했습니다.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전병욱 목사님은 “비록 지금은 그 모습이 아니지만 앞으로 그런 모습이 될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입니다.
비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실 때 먼저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에 의해서 사람이 움직이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빌 2:13에서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예를 들어보면 아브라함에게는 열국의 아비의 비전을 주시고 아브라함이 그 비전을 품으니 그 비전대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요셉도 먼저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이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라가 물고기 잡고 있는데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베드로가 기적을 통해서 주님을 알게 되자 즉시 사람 낚는 어부의 비전을 주셨고 순종하여 주님을 따르자 주신 비전이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히 11:1에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믿음은 최소한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비전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 꿈꾸는 것,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것을 이룰 능력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꿈구는 것이 실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잠 29:18에서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방장히 행하는데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망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방자한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여기서 묵시가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뜻은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들어내지 않고 은근히 자기 의사를 나타내 보임”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일러줌”이라는 인데, 이구절의 원문을 찾아보면 묵시가 비전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다시 해석하면 “비전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는 말이 됩니다. 잠 23:7에서는 “대저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가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사람이 가진 비전이 그 사라의 수준이고, 그 사람 자신의 참 모습이고, 그 사람의 미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부학교에서 강의를 하신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그분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분은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나서 제대로 공부도 못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지방 종소도시에 있는 시장에서 리어카 끌고 장사했습니다. 장사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비전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다. 유명한 강사가 되어서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약 10년이 지난 후 자신이 시장에서 장사하던 도시의 시청에서 공무원 대상으로 교육을 부탁받았습니다. 그래서 가서 강의를 하고, 자신이 장사하던 시장에 가보니 10년 전에 장사하던 사람이 그대로 장사하고 있더랍니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고 그 비전에 헌신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성의 비전, 사역의 비전, 천국의 비전,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영성의 비전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역의 비전은 내가 무슨 일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천국의 비전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 에비하신 면류관을 쓰고 잘했다 칭찬 받으며 상급 받는 천국생활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비전은 가정을 현세천국으로 만들어 행복을 누리는 가정으로 만들고, 가정을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고 노력하는 것이고, 또 자녀들을 교육시켜서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이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1. 위대한 비전을 받고 그 비전에 사로잡히라.
할 수만 있으면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꿈꾸는 만큼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큰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부부학교를 한 새중앙교회에서 보고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큰 비전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백천만의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 개의 지교회 설립, 천개의 중국교회설립, 만명의 선교사 파송입니다. 제가 가진 꿈도 사람들이 들으면 크다고 하는데 그곳에가서 제가 가진 꿈이 너무나 작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미셀위가 며칠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공황에 들어와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내용을 운전 중에 라디오를 통해서 잠깐 들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더니 “꿈을 크게 가지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7살의 소녀가 비전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내 한계를 뛰어넘는 큰비전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도 없는데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후손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다윗 목동일 하던 사람인데, 사무엘이 찾아와서 다윗이 감히 품을 수 없었던 왕의 비전을 주었습니다. 80세의 노인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해방이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의능력의한계를 초월하는 엄청난 비전을 받았고 그 비전에 헌신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한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비전은 단지 큰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해서 만들어내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위대한 비전이 아닙니다. 위대한 비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비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비전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나는 성경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가 가진 비전은 어떤 비전이었습니까? 그 비전은 그가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까? 백이면 백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아브라함은 자식은 생각도 못하는 입장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주셨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비전을 받았습니다. 꿈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위대한 비전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을 보면 자신의 비전이 아닌 다른 사람의 비전을 빌려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나일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비교의식을 가지면 열등감을 갖게 되든지 교만해지든지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고 싶다고 나도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만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
사역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것을 찾기보다 남이 하는 사역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흉내 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해서 다 잘한다고 나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내게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비전을 가졌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적지를 바로 알고 달려야 하는 것이지 목적지를 잘못 알고 달리면 달린 만큼 돌아와야 한다. 회덕 분기점에서 부산가야 할 사람이 호남 고속도로로 들어갔다면 그만큼 돌아와야 한다.
저는 가끔 설교준비를 하다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설교하기를 원하시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옵니다. 교회사정이나 시대적인 환경 등등 그러다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다른 주제의 설교를 준비하게 됩니다. 한참을 준비 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원래의 설교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손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평소에 이런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환경을 보고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양심의 부담으로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로 돌아올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간만큼 손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의 방향을 결정할 비전이 하나님의 방향과 다르다면 인생 전체의 방향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가도록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비전의 길을 갈 때 우리의 영혼 가운데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내 영혼 가운데 반복적으로 주어집니다. 마치 파도가 반복적으로 밀려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일한 비전을 13번이나 반복적으로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속히 돌이키십시오. 아까워도 포기하십시오. 그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목사님들 중에 너무나 늦게 목회를 시작해서 고난을 당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사실 젊은 시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들에게 확실하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다가 뒤늦게 돌아와서 힘들게 목회를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이 해야 할 나의 사명, 나의 비전이 있습니다. 만약 다른 길로 가고 있다면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만약 아직도 비전이 없이 되는대로 사는 분들이 있다면 속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아야 합니다. 행 2:17에 보면 성령께서 임하시면 비전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가르치심을 구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으십시오.
2. 비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직장인의 76.7%가 꿈을 접고 산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월급만 받고 살지 꿈은 없습니다. 직장인 중에 성공적인 사람을 사는 사람들을 보니 꿈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랍니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23.3% 밖에 안 되고, 또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은 3~5% 밖에 안 됩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비전을 이루는 사람은 비전을 가지고 비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성경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도 그들의 비전이 성취되는데 그만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비전 성취를 위하여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대가, 독자 이삭을 바치는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류구원이라는 사랑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하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비전에 대한 대가를 치를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시간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된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대부분 시차가 너무나 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약속의 아들 이삭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는 그 약속의 자식을 얻기 전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이해하지 못해서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40세의 모세는 제대로 비전을 받기는 받았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빨리 움직여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40년이나 빨리 움직였습니다.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는 비전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 우물을 파듯이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매달려서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는 것은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돋보기에 초점을 맞춰서 태양빛을 종이에 비추어보면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지만 곧 반응이 나타납니다. 종이가 열을 받기 시작하면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잠시후에 불이 확 붙기 시작합니다.
눅 9:62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았으면 그 일에만 집중해야지 자구만 다른 일을 돌아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명성훈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한동안 조용기 목사님의 후계자 라는 소문이 있었던 분입니다. 이 분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엄청난 고통을 당해서 체중이 49Kg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보다 무려 20Kg이나 줄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유학생활 동안 매일 아팠습니다. 매일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6개월 동안 목숨 걸고 박사학위 종합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했습니다. 5과목의 수업을 들었는데 한 과목당 100권의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과목당 5~6시간씩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눈은 아파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해서 책의 내용을 테이프로 녹음해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또 3,000여 장의 독서카드에 100권의 책을 요약해서 앞에는 질문, 뒤에는 답을 써서 바닥에 깔아놓고 그것을 수도 없이 읽어가며 공부했습니다. 하루에 4시간씩만 자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힘이 들어 절망가운데 빠졌는데 어느 날 조용기목사님께서 미국의 LA에 오셔서 빌립보서 3장14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면서 조목사님께서 "당신에게 푯대가 있습니까?"하고 도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말씀이 명목사님의 마음에 비수처럼 박혔습니다. 그 말씀을 레마로 받고 전과목 수석을 푯대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천장에, 벽에, 듣는 테잎에, 온통 붙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집중하며 공부했습니다. 결국 명목사님께서는 34명의 학생 중에 만점을 받은 유일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세운 비전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눈앞에 아른거려도 그것을 보지 마십시오.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비전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비전은 당신 마음속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다." 이 정의에서 주목할 것은 마음속에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열정이 불타오릅니다. 그 일에 속된 표현으로 미치게 됩니다. 사로잡힌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당신을 미치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사로잡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은 결혼 생활로 비유하고 싶습니다. 남편은 아내만을 사랑하고 아내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다른 여자 쳐다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비전을 받았다면 열심히 노력하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시 127:1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 부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으나 최고학부를 나온 그 어떤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일에 대한 진취적인 꿈과 비전이었습니다. 그가 자동차를 만든 동기도 어느 날 마차를 보고 ‘말없이 갈 수 있는 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가진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포드의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동차 왕은『꿈과 믿음의 합작품』입니다. 이들 부부가 죽은 후 사람들은 디트로이트에 기념관을 세우고 이런 비문을 만들었습니다. “포드는 꿈의 사람이요, 그의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시 118:8-9에 보면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 보다 낫도다.”
어린 아이가 배가 고프면 부모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면 되는데 자기가 구해보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세요.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