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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않았다면 봉정사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봉정사 앞에 도착한 순간 이 사찰은 도대체 어떤 매력과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을까에 대해 생각에 한창 잠겨 있던 그 생각의 끝 무렵 안동역에서 출발한 택시는 산사 입구 앞에 도착해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입구에서 도착해 입장권을 구매한다. 성인 기준 2천원 더불어 봉정사에 머물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통해 템플스테이도 신청할 수 있었다. 입구부터 봉정사 본당까지의 거리는 좀 떨어져 있었고, 2018년 우리나라 산지 승원의 그 곳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에 그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곳. 직접 그 공간의 고즈넉함을 느껴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1) 사찰의 규모와 탄생 이야기
8월 어느 여름날 찾은 봉정사의 모습은 정말 푸르렀다. 생각보다 사람도 많이 없었고, 지정된 시간에 운영하는 버스 편이 뚜벅이들에게는 여행다니기 상당히 불편한 구조였지만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 공간을 만끽하고 싶어 6시 이후로 월영교를 보러 가기로 한 일정은 다 취소해 버렸다.
처음 봉정사가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는 절차를 밟게 되면서 걸림돌이 된 이유 중 한 가지가 바로 '규모' 였다. 실제로 가서 보면 다른 사찰들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았고, 오히려 그 크지 않은 공간에서 더 한국 그 특유의 고즈넉함과 확실한 가치들이 머물러 있음을 안동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실제로 2018년 한국의 산지 승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위원회에서 통과될 때 이 사실이 받아들여져 봉정사도 함께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봉정사의 창건 이야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672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석사와 화엄종으로 유명한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 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로 그의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리니 현재의 봉정사 자리에 와서 머물렀다. 해 봉정사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는 창건 설화가 내려오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각보다 규모가 정말 크거나 하지는 않았고 덩달아 이런 설화를 함께 접한 후 이곳을 찾다 보니 보통은 맑은 날씨를 선호하는 게 보통이지만 목조건물 뒤쪽으로 구름 낀 날씨가 금방이라도 뭔가가 불쑥 튀어나와 날 반겨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관계를 떠나 이런 설화 또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들은 여행 중에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항상 해주는 듯하다.
(2) 작지만, 매력적이며 조화로운 공간
이 아담한 공간 안에 깃든 이야기에서 비롯된 가치들을 나열하기 전에 처음 본당 쪽으로 들어선 순간 느껴진 첫인상은 포근하다는 것과 조화롭다는 기분이었다. 문득 4~5년 전 유럽 여행을 한창 시작하며 들렸던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이 떠올랐다. 'ㄷ'자 형태로 주변을 감싸 안은 형태를 보고 지상 최대의 응접실과 같다는 표현을 남겼는데 바로 앞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옆을 꾸며주고 있는 건물들이 천등산 주변 나무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해 주고 있었다.
더불어 정말 봉정사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보통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방대하거나 웅장함을 일반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세히 알고 조용히 주변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살펴봐야 믐미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주변을 여러 번 돌아보며 연신 셔터를 누르는 내 모습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에 구름 낀 날씨는 금방이라도 봉황이 날아와 이 주변을 환하게 밝혀줄 것만 같은 착각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3)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과 문화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전부터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자리한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로 봉정사에 대한 대부분 기록이 소실돼 창건 이후의 이야기들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은 봉정사의 매력에 좀 더 깊이 빠질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이곳에 머무는 내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봉정사 경내에는 무수히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부터 조선 초기 당시의 화풍이 담긴 불화까지 하지만 그것들을 다 뒤로 제쳐놓고 내 눈에 들어온 건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듯한 이 3층 석탑이었다. 고려 시대 중엽에 조성된 탑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돼 있었고, 극락전을 뒤로 두고 그 앞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다.
중수되고 보수 공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약 80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그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 잡은듯했다. 덩달이 3층 석탑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탑 뒤쪽에 자리한 극락전을 시작으로 슬며시 보이는 대웅전과 불당 안에서 열심히 불공을 올리는 방문객들의 모습과 아울러 템플스테이를 위해 이곳에 머물며 봉정사 곳곳을 스님의 안내에 따라 돌아보는 사람들 까지 다양한 풍경들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층 석탑 뒤로 위치한 극락전의 모습 이렇게 보니까 웅장하게 다가온다. 1972년 극락전을 해체, 보수공사 당시 1625년에 작성한 건물에 관련된 기록(상량문)을 발견, 공민왕 12년(1363)에 공사 관련 기록을 발견하여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한다. 3층 석탑 주변으로 오른쪽으로는 화엄강당 왼쪽으로는 고금당이 자리해 시대별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은 물론 바로 옆에 대웅전 권역과는 또 다르게 이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 잠시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가만히 머물러 본다.
그렇게 주변을 돌면서 문득 건물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액자식 구조를 바라보며 참 한국 스러운 공간이라는 생각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여기 있었다. '차경'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로 자연과의 조화로움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고자 하는 생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구도를 잡는 방법의 하나로 프레임 기법이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건물들 사이로 모든 장면들을 의도하여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영산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와중에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4) 소박한 정원이 매력적인 공간 '영산암'
이렇게 봉정사 권역을 돌아보고 나서 오른쪽으로 약 100M 정도 걷다 보면 조금 떨어진 곳에 영산암 이라는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 '달맘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사진 곳곳에 초록 빛깔 열심히 뽐내고 있는 나뭇잎들은 가을에 그 다채로운 매력으로 방문객들을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고개를 잠시 숙이고 영산암 안으로 들어와 보면 한국식 정원의 정수를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에 조그마한 동산 하나 만들어 놓고 돌들을 옮겨 향나무 고목과 관상수에서 피어난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녹음 짙은 정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이때만큼은 구름 낀 날씨가 한편으론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곳이 있을 줄 알았다면 날씨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잠시 고요함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누군가 나올 것 같다. 봄에는 배롱나무가 가을에는 다채로운 단풍의 명소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시기를 잘못 택한 걸까? 라는 찰나의 생각도 잠시 정원 주변을 둘러싼 클래식한 건축물들의 배치가 어떻게 보면 지나가던 나그네가 쉬었다 가는 주막처럼 느껴지면서 바쁘게 달려온 안동 첫날의 여정도 이곳에 잠시 앉아 숨을 돌려 본다.
중국과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와 우리나라에 뿌리내리면서 자연스레 고유의 토속신앙이 합쳐져 만들어진 형태의 건물이 이곳 영산암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삼성각 주변으로 문은 굳건히 닫혀 있어 안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 머무시는 스님들께서 오고가며 삼성각 바로 옆 건물에서 불공을 드리시는 모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연스레 카메라를 내려놓게 된다.
위 두사진을 마지막으로 영산암을 뒤로한 채 조용히 계단을 타고 봉정사 본당 쪽으로 사부작사부작 내려왔다. 가운데 향나무와 한국형 정원의 모습을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다는 점과 내가 찾아간 날 따라 유난히 방문객들이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 준 탓에 조용히 그 순간을 몰입해 사진을 담아가며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때론 친구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여행도 좋지만, 반드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아니더라도 북한산 주변 진관사나 고택을 찾아 이런 고즈넉함을 즐겨 보는 것도 참 좋은듯하다. 해는 떨어지고 있었고 이제 슬슬 봉정사를 나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5) 봉정사에서 즐기는 템플스테이
봉황이 머물고 갔다는 신비로움과 함께 처음부터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있는 탓에 해가 떨어지면 주변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바람이 풀잎을 스쳐지나 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봉정사 홈페이지를 통해 체험형 그리고 휴식형 2가지를 골라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각 프로그램에 따라 명상, 차담은 물론 스님과 함께하는 봉정사의 더 깊은 이야기도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신청해 보도록 하자.
절이 처음 만들어 졌을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소망은 크게 다르지 않을것 같다. 봉정사를 내려오기 전 부석사나 다른 사찰에서 그 동안 하지 않았던 돌을 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생각에 잠긴채 짧은 묵념 후 버스를 타러 내려 갔다.
전국에 세계문화 유산 문화재 들을 보러 다니면서 항상 같은 말을 반복 하는것 같다. 항상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람의 입장이지만 오랫동안 이 모습 그대로 우리들 곁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주기를 더불어 이 가치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오기를 그려보며 봉정사를 내려왔다.
(6) 마무리
안동은 오래전부터 '정신문화의 수도'로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의 화엄 사상과 조선 시대의 성리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까지 역사의 굴곡의 이념의 근거지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곳이다. 영주의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 스님께서 창건한 곳으로 화엄 사상으로서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으며, 안동을 여행하기 전 영주를 먼저 다녀왔던 나로선 너무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크지 않은 이 공간에서 나중에 얼마나 머물렀나 시간을 계산해 보니 얼추 2시간 정도를 머물렀던 것 같다. 모든 건물들에 가치가 충만함을 넘어 한국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안동 봉정사 일반적으로 영화 촬영지와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그리고 단풍 명소로 잘 알려졌지만 이 안에 내재한 이야기들 또한 봉정사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아주 좋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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