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몸에다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영혼과 정신도 옷을 입어야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밀려드는 삶의 폭풍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영혼과 정신도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느님 앞에 조용히 머물러 영적 방패로 무장해야 한다.
테오도로 에프(Theodore H. Epp)는 왜 기도로 아침을 시작해야 하는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긁어모았던 시간은 아침이다. 만나는 태양이 떠오르면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탈출 16.21).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침에 영적 만나를 먹어야 한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 많은 일들, 걱정거리나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생긴다. 그런 일들이 생기기 전인 아침 시간에 영적 만나를 먹어 두어야 힘을 얻어 싸울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꼭 아침에 기도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내가 테오도로 에프의 견해에 동감하는 첫째 이유는 하느님께 수확물의 맏배를 봉헌하듯이 시간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그날의 첫 시간을 봉헌해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한다.
둘째, 첫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하루를 여유롭게 사는가 아닌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어제의 삶을 반성하고, 오늘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여유롭게 살 수 있다. 오늘 해야 할 일거리를 주님 앞에서 헤아려 보고 일의 우선순위를 식별하고 오늘하루 정말 중요하고 바쁜 일들을 위해서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계획없이 시장이나 백화점에 갔다가 장사꾼의 호객행위, 휘황찬란한 조명, 화려하게 진열해 놓은 것들에 현혹되어 물건을 덜컥 사가지고 온 경험을. 이렇게 충동구매를 하듯이 계획없이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은 바쁘다는 핑계로 밀려드는 일거리에 쉽게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하지만 하루의 첫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한 사람은 하루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사람과 같아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아침 시간을 확보해서 하루의 삶을 여유있게 출발하는 것이 활동의 관상을 살아 가는데 중요하듯이, 낮 시간에 활동하면서 미리미리 움직여서 서두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약속이 있으면 15분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속시간에 임박해서 출발한다면 자연 서둘러 운전하거나 뛰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주위분들에게 무례를 범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는 약속 시간에 임박해서 출발했다가는 늦기 십상이다. 그러니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좀더 일찍 출발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텔레비젼 시청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25분이라고 한다. 하루 중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외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시간이다.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시간에다 신문과 잡지 보는 시간,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에 여섯 시간은 될 것이다. 이 시간은 인생의 10년 정도로 10년이면 박사학위 하나를 딸 수 있는 기간이다. 물론 텔레비젼과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여가를 보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텔레비젼과 인테넷에 노예가 되어 있을 때다. 어떤 사람들은 텔레비젼과 인테넷이 제공하는 정보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세끼 밥을 먹어야 하듯이 텔레비젼과 인테넷을 시간별로 챙겨야 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은 없어도, 주님께 기도할 시간은 없어도 텔레비젼과 인테넷을 보는 시간은 꼭 할애한다. 이런 상태라면 노예가 되었다 해도 진배없다.
참 기쁨은 땀을 흘린 후 열매를 거둘 때 갖게 되는 것인데, 텔레비젼과 인테넷은 어떤 인내의 땀 흘림도 없이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것과 관계가 없다. 바오로 사도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의미있게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시간을 잘 쓰십시오"(에페5,15-16). <송봉모 신부님의 "세상 한복판에서 그분과 함께"책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