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외 4편
― 새를 위한 랩소디
최병근
누가 나에게 날개를 주었나
허공을 기꺼이 내어주었나
나는 평생을 등짐지고 살았는데
어떻게 나는 내 머리 위를
거침없이 가볍게 날아가는가
나는 먼 길을 돌고 돌아와
다시 여기에 쪼그려 앉아 있지
더 이상 바깥을 기웃대지 않겠다고
다른 허공을 고민하지
나를 부려놓고 떠난 신과의 약속처럼
우산 없이 여름 소나기를 맞고
겨울 눈발을 견디며
참 오래도 걸었지
아, 어머니 이제야 나는
당신이 날아간 길이 보여요
수평선에서 막 태어나는 구름 사이로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최병근
간판 없는 공장은 그의 1인 놀이터였다
수령 오백 년 보호수 발치에
기와 정자 하나 빈 채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주름진 나무 옆구리에 붙어 있는
볼트 공장 사장을 만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 치 오차 없이 여름을 깎아
가을의 힘줄을 한껏 조여야 할 그의
볼트
이순에 늦장가 들어 세 살 딸아이를 둔 그는
나무 그늘을 나이테처럼 둥글게
둥글게 땀 흘려 깎고 있었다
그와, 그의 필리핀 아내와
저녁이 여전히 무서운 딸아이
웃음만으로 세상이 어찌 환해질 수 있겠는가
나는 처음 보았다
느티나무가 수만의 푸른 눈동자로
그의 볼트 공장 지붕 그늘을 완성한
한여름 그 오후를
별
최병근
그의 존재를 확인해서 어쩌자는 건가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와 함께 했었거늘
그는 대체 어떻게 영원을 반짝이고 있었던가
그를 바라보는 내 안의 얼굴 하나를 그가 언제 훔친 것인가
핸드폰
최병근
나는 나를 찾고 있었지 그리고
때로 살아 있어 방황했지
길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불러 줄 이별가를
외투 깃에 숨겨놓고
너무 많은 혼잣말을 쏟아내어서
주워 담을 그릇이 비었네
집요하다는 말을 응시하면
왜 고양이가 떠오를까
액정에 그의 눈이 새겨질까
생의 비밀 감출 주머니도 없이
나는 어떻게 어제를 살았던 걸까
단추
최병근
아주 작은 눈길로도
오늘을 여밀 수 있다니!
붐비는 거리에서
목적지를 향해 건너가는 발걸음들 사이로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의 등 뒤에서
길을 재촉하는 파란 눈이 깜박이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의 잰걸음이
어깨를 스친다
살아야 한다는 물증인 듯
아침 햇살에
그의 가슴에 달린 눈 하나가 반짝, 빛난다
최병근 시인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고, 2020『애지』로 등단했다.
국민대학교 대학원 졸업, 시집으로는『바람의 지휘자』 『말의 활주로}
『먼지』가 있으며,애지문학회와 텃밭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