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1-34
그 선지자의 죽음 / 성경 벌레
<서론>
본문의 선지자-- 이름도 가문도 나와 있지 않은 무명의 선지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백성들 가운데 오래도록 깊은 인상을 심어준 선지자였다. 그는 여로보암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수하에 무꺼두기 위해 인간적 책략을 썼다.
벧델과 단에 금송아지우상제단을 건립하고 그것을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로 알고 섬기도록 인도햇다. 이에 대해 하나님게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어 그 잘못을 책망하며 밸엘의 제단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그 징조로 단이 갈라지고 선지자를 잡으라고 가리키던 왕의 손이 말라붙어 버렷다. 왕은 그에게 벧엘에 가서 궁궐에서 함게 식사를 하자는 권유를 뿌리치고 자기의 갈 길로 갔다. 그런데 간교한 사단의 게략이 그를 기다리고 잇었다. 그것은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를 통해서 일어났다.
늙은 선지자는 벧엘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듣고 급히 나귀를 타고 그 선지자를 만났다. "나와 함게 집으로 가자!" 그러나 선지자는 벧엘에서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므로 거절함. 늙은 선지자는 거짓말로 자기도 같은 선지자인데 방금 하나님이 천사를 내게 보내어 당신을 데리고 와서 떡을 먹이우고 물을 마시우라고 하였다고 속였다.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를 따라가서 먹고 마셨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인해 돌아가던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오늘 이 기록에서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바가 많다.
<본론>
1.늙은 선지자에 대해
이 사람은 누구일까? 11절에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벧엘이라면 여로보암왕이 우상숭배를 실시한 곳이요,금송아지 우상제단이 잇는 배교의 중심지였다. 대하 11:13-16보면 여로보암왕이 단과 벧엘에 우상제단을 건립하고 우상종교를 보급할 때 경건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던 모든 경건한 이스라엘 사라믈마은 다 남쪽 유대나라로 월남하였다고 한다. 마치 해방후 38선이북에 공산당을 반대하여 자유와 신앙을 찾아 남으로 내려왔던 사람들처럼 그들도 그렇게 햇다. 그런데 이 늙은 선지자는 거기 그것도 배교의 본거지에 남아있었다. 그 사건이 잇던 날은 밸엘 우상숭배의 큰 명절이었던 것같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수많은 국민자들앞에서 직접 제단에 분향하고 있었다. 그 성대한 참배의 자리에는 이 늙은 선지자의 아들들도 함께 있었다. 늙은 선지자는 불의한 왕과 투항하기 위해서 증거를 위해서 거기 남아 있었던 게 아니다.엘리야나 엘리사선지자처럼 우상정권과 싸우고 여호와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거기 있던 것이 아니었다.
오바댜처럼 토굴속에 숨은 선지자들을 돕기 위해서 거기 남은 것도 아니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택함으로써 어떤 기득권을 얻기 위해 거기 있었던 것이다.
마치 롯이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비옥했던 소돔고모라를 택하여 갔던 것처럼, 발람이 발락의 물질을 탐하여 갔던 것처럼 그는 벧엘의 정치종교의 세력을 탐하여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선지자로서의 양심은 그를 떠나도록 명령했지만, 육체의 안일과 정욕은 그로 하여금 머무르게 만들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떠나야 할 때 떠냐야 한다. 복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햇다. 죄인의 길에 설 때 억대의 돈이 들어오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을 때 권력과 명예가 한 손에 들어 온다 하더라도 그 길을 떠나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의인의 도리요 그것이 복된 삶이다.
이제 이 늙은 선지자는 아들들이 전해 준 말을 듣고 즉시 길을 떠났다. 물론 아들들은 상당히 깊은 감명을 받고 아비에게 그 선지자가 한 말들과 한 행동들들 얘기했다. 그러나 아비는 그 선지자의 증거를 약화시키기 위해 행동합니다. 그 선지자를 속여서 자기 집으로 들어오게 할려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벧엘로 돌아오게 함으로서 선지자가 벧엘의 단에 대해 내린 무서운 심판의 증거를 무력화내지는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간교한 늙은이는 자기의 말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전언이라고 속인다. 벌써 이 사람은 하나님의 감동이 떠난 사람이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성도가 타락하면 이렇게 간교하고 무감각해 진다. 탐욕이 양심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마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저희 친척중에 한 분이 오른 쪽 어깨가 마비증세를 가져와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양심의 마비는 전신의 마비요 죽음을 가져 오는 것이다. 여러분의 양심이 항상 살아 잇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의 거짓말 때문에 그토록 훌륭한 한 동료 선지자의 죽음을 가져 왔다.
여러분, 우리의 혀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것인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말때문에 자신들의 죽음을 가져 왔다. 뱀의 간교한 혀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속아 멸망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시12:2,3 "저희가 이웃에게 각각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로다"하였다. 하나님게서는 불의한 혀,거짓말하는 혀를 미워하십니다. 이 선지자는 불의를 공격하고 의를 증거해야 할 입술로 그 마음이 타락하니 거짓말하는 입술,마귀의 도구로 전락되었다.
그러므로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고 경고햇다. 약1:19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혀를 조심하시어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뜻에 스입받는 거룩한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2.그 선지자를 생각해 봅시다.
이 선지자에 대하여는 지난 시간에 그이 생애에 대해 말씀드렸다. 여기에서는 그의 종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여기 그의 죽음이 나오는데 그가 죽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26절에 그 늙은 선지자의 말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분부는 무엇? 9,17절,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는 것, 왜 하나님게서 그런 분부를 하셨을까?
벧엘에서 음식을 먹게 되면 자연히 타협하게 되고 벧엘에 대해 내려진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게서는 마귀의 꾀를 피하도록 선지자에게 갔던 길로도 돌아오지 말도록 일러 주셨다.
그러나 그는 왕의 호의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이 늙은 선지자의 말에느 속아서 그만 은 거절하지 않고 따라갔다가 그만 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왜 넘어졌을까?
(1)하나님의 명령대로다
수행했다는 안도감이 그로하여금 경계를 늦추게 했을 것이다. 그는 아직 적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마귀는 위대한 일을 앞둔 사람에게 시험하기도 하지만 그 일을 마친 뒤에 공격해 오는 경우도 많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선지자들과 싸움에서는 이겼으나 바로 다음날 한 여성의 말에 두려워 달아나고 말았다. 다윗왕도 사울에게 도망다닐 때와 적들과 싸울 때는 항상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나 그의 왕궁에 편히 거할 때 시험에 넘어지고 말았다. 마귀는 예수께서 40일간 금싸기기도를 마치신 직후 찾아와 시험했다. 사단은 우리의 약한 곳을 잘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한 뒤에,기쁜 일이 있을 때,큰 일을 해 낸 후에,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이 쏠려 올 때 조심하고 경게해야 합니다. 우리는 긔까지 지혜로와야 합니다.
(2)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여 꾀는 말에 그만 속아 넘어갔던 것
이다.
마귀가 얼마나 간교한가?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로 여호와의 말슴을 어기게 했다. 이단이 이래서 생기는 법이다.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이 여기서는 이렇고 저기서는 저렇다면 어떻게 믿겠는가! 여호와께서는 한 사건에 대하여 상반된 두 가지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선지자에게 벧엘에서는 결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고 하시고는 다른 선지자를 보내어 그 말씀을 취소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민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슴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셨다. 하나님은 이중적인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잡되지 않고 단순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라고 한다해서 다 따라갈 것이 아니다. 내가 성경에서 배우고 가르침 받은대로 해야지 우리가 배운 구원의 도리나 가르침에 위배된 이상한 교훈을 가르치게 되면 경계하고 따라가서는 않된다. 기도하고 자세히 그 문제에 대해 성경을 연구하고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빌1:9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알기를 구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게서 그 선지자를 왜 죽이셨을까?
(1)단순하게 드러나는 바로는 하나님의 말슴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셨다고 본다.
본문 13장 전체에 "여호와의 말씀"또는 "여호와가 명한 말씀이란 말이 14번 나온다. 그 중 늙은 선지자가 거짓으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한 말을 빼면 13번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여호아의 말씀,그 말씀은 반듯이 실현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의 말슴을 증거하느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몸소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가 그 말씀을 어겻을 때 누가 그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겠는가!
26절,“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이말은 얼마나 깊은 교훈을 주는 말인가! 여호와의 말씀은 그 선지자에게서 그 백성들의 삶에서 이루여 져야 한다.
(2)벧엘의 제단에 강한 경고를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사건은 벧엘과 이스라엘전체,그리고 유대 백성들에게조차 감명을 주었다.
그 선지자의 죽음으로 인해 구 사라믈마은 자기의 탈선을 더욱 부끄럽게 여겨야 마땅하다. 선지자는 죽음으로써 오히려 말하고 잇는 것이다.
이 선지자의 시신앞에서 늙은 선지자는 선지자로서 강한 가책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회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 선지자의 시신을 자기의 묘실에 안장하고 그를 위하여 슬피 울었다는 점,아들들에게 나기가 죽거든 내 뼈를 선지자의 뼈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이런 태도는 그 선지자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그에 대한 존경감을 나타낸다.
<결론>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