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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시온산의 십사만 사천 (계 14:1-5)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14장의 십사만 사천은 누구입니까?
십사만 사천에 대해서 이미 7장에서 다룬 바 있는데 14장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십사만 사천은 누구입니까? 7장에서 설명해 드렸듯 '십사만 사천'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144.000의 숫자를 구성하는 조합이 가진 의미 즉 선택의 상징인 구약12지파✕신약12사도✕충만수1000(롬11:25)이 의미하듯,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선택하시고 얼마든지 부르셔서 자기의 소유로 삼으신 신구약의 구원 받은 무리의 총수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7장에 이어 14장에 또 다시 나타납니다. 비교해 보면 7장은 인 맞은 자의 구성이나 조건 등을 다룬 기초적인 것이라면, 14장은 영적으로 장성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4절에 “처음 익은 열매”가 나타나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 하여 장성하고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7장에서 14장을 거치는 동안 은혜의 결실이 바로 14장의 모습입니다.
가령 11장 두 증인을 통해 성령께서 구속을 적용케 하신 결과라든지, 12장에서 해를 옷 입은 여자를 통한 해산하는 고통과 광야에서의 양육, 그리고 이마에 어린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있는 표가 있는 것을 보아 죄의 인격인 666의 표를 이긴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4-5절에 나오듯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을 받아, 높이 되신 예수와 함께 하늘의 시온산에 서서, 그 수준에 이르지 않고는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로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양육의 목표이기도 하고(딛2:11-15), 천국의 알곡의 모습이며, 그리스도의 신부 곧 영광스런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영광스런 교회란 어떤 모습입니까?
1.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들입니다.
1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14만 4천은 히브리인들의 숫자개념으로 볼 때 택한 백성의 상징인 구약12지파✕신약12사도✕충만수1000(롬11:25)을 곱해서 나온 수입니다. 12는 하나님의 완전수 3에, 땅의 수 4를 곱해서 나온 수로 부름 받은 선택의 수입니다(엡2:18-20). 그러므로 이들은 144.000이라는 제한된 숫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얼마든지 부르셔서(행2:39) 자기 백성 삼으신 신구약의 전체를 가리킵니다(엡2:20).
2.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신부들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보라”라는 낱말은 그동안 수고하신 결과이기도 하고 완성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감탄사입니다.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한 말씀과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광된 신부로서 장성한 모습으로 함께 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엡5:26-27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참고로 바울서신에서 “함께”와 “안에”라는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미하는 전문용어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나도 함께 부활했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된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4만 4천은 교리에 그치지않고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모습입니다.
3. 예수 안에서 승리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이 선 장소는 시온 산이었습니다. 하늘의 시온산을 알려면 그 배경이 되는 지상의 시온산을 알아야 합니다. 지상의 시온산은 외적을 방비할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고, 온갖 고초 가운데 다윗이 시온에서 왕이 되어 첫 번째 수도를 정한 곳입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사울의 방해를 받았습니까? 또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으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시온산에 섰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승리와 영광의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해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끝까지 믿음 안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줍니다(시24:3-6).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그만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영적 수준입니다. 그것이 계 7장과 14장의 차이입니다.
7장의 십사만 사천은 6장의 일곱 인재앙 직후에 나타난 삽경으로 성경이 열림으로 복음을 깨닫고 확신하기 시작한 중생의 시점이라면, 14장의 십사만 사천은 앞의 두 증인이 보여주듯 그 복음의 진리 안에서 양육을 받아 666을 비롯 온갖 장애를 다 이겨낸 승리의 사람들입니다(히3:6). 수준이 다릅니다. 성경이 이걸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그 주인공이 되라는 것입니다.
4. 세속에서 벗어나 변화된 자들입니다.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666표가 있어야 할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과 아버지께 속했다는 것이고(4절),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된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5.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2절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십사만 사천이 내는 소리는 하늘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은 하늘에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3절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라고 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구속함을 얻었다고 했을까요? 땅은 세상입니다. 이 중에는 천상의 백성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의 구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골3:1-2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6.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자들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성경에서 물은 말씀이나(엡5:26) 성령의 상징입니다(요7:37-39). 그러므로 많은 물소리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함을 가리킵니다(요1:16-17, 계1:15). 이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막1:22). 이처럼 14만 4천의 음성만 들어도 그들이 얼마나 예수를 닮았고 얼마나 장성했으며 얼마나 은혜와 진리로 충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복음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받쳐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 거룩하고 공의로운 자들입니다.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14만 4천의 소리는 큰 우렛소리와도 같았습니다. 우렛소리는 계4:5의 보좌에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하실 때 그 엄위하신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만큼 아버지의 엄위하신 모습을 닮았습니다. 이걸 볼 때 그들은 더 이상 죄와 세상과 마귀의 친구가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원수요 성도의 원수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아6:10).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8.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소리인데 요한의 듣기에는 거문고 타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신기한 장면입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성경에서 거문고는 성령의 감동의 상징입니다(왕하 3장). 그러므로 많은 물소리 같이 밀려오는 감동과, 우렛소리와 같이 천지를 울리는 감동이 있다는 것은 구원과 승리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구원 받고 사탄에게서 승리한 강력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9.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3절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14만 4천이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약 3대상의 앞에서 새 노래를 불렀는데, 먼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부른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 역시 새 노래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엡1:3-4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했습니다. 이처럼 새 노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늘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배할 때 14만 4천의 영광에 도달하는 길이 됩니다.
10. 모든 것은 예수의 공로였습니다.
“네 생물과” 그들은 또 네 생물들 앞에서 불렀습니다. 앞에서 불렀다고 네 생물이 찬양의 대상인 것은 아닙니다. 찬양이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 외엔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14만 4천의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 참고해야 할 사항 때문입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그룹천사이기도 하고, 네 얼굴의 별명을 가진 사복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경학자들이 사복음을 분류하면서 마태복음을 사자복음, 마가복음을 소복음, 누가복음을 사람복음, 요한복음을 독수리복음이라 불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 하는데 그 명칭에 동의하기 싫습니다. 알고보면 각 복음서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네 생물 앞에서 새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이렇게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삶과 그 기록된 말씀의 가르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믿을 뿐 아니라 말씀과 모본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시기 바랍니다.
11. 교회의 수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 앞에서” 불렀는데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교회의 양육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사도 목사 교사 선지자 능력을 행하는 자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장로들 앞에서" 라고 한 것은 사도 중에서도 나이 많아 일생 교회를 위하여 수고했고 성경기자가 될 만큼 말씀과 은혜에 있어서 더욱 원숙한 하나님의 종들을 뜻합니다(요일2:13, 벧전5:5). 즉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수준 높고 온전한 기도와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엡4:11-12). 세례요한 같은 구약적 교회가 아니라 초대교회와 같은 신약적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만이 담을 수 있듯 성령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인격적이면서도 역동성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교회생활 잘하고 성화신앙에 관심 가지시기 바랍니다.
12. 영적 수준에 도달한 자들입니다.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새 노래는 이미 계5:9-10에 24장로들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장로들이 부른 노래는 어린양의 피로서 구속 받은 구원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14만 4천이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은 그만큼 영적으로 장성했고, 그만큼 진리 안에서 섰고, 그만큼 그 결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3. 구원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어떤 노래이기에 그들 밖에는 이 새 노래를 배울 자가 없을까요? 이걸 알려면 그들이 누군가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속량(贖良)이란 한문으로 ‘몸값을 받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함’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땅에서 속량을 받았으니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하셨습니다. 롬8:30에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거룩하시고 영광스런 예수를 모심으로 그 안에서 성화와 영화까지도 누립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거룩이 되시고 영화로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온전히 모시면 우리가 변화됩니다(고전1:30-31).
칭의는 믿음으로 받지만 성화는 영성수련으로 받는 줄 알면 안 됩니다. 가부좌 틀고 명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영화로우심은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로 하여금 걷게 하셨고 성전 안에 뛰어들어가 춤을 추며 찬양하게도 하셨습니다(행3:1-13).
3절을 보면 새 노래를 십사만 사천은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면 새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노래입니다. 이 복음의 진수를 풍성히 알 수록 우리의 찬양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되 삭개오처럼 기쁨으로 나의 전부가 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눅19:9). 예수를 사랑하고 날마다 구원의 새 노래로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을 누리는 비밀입니다.
14.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4절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문자대로만 본다면 그들은 남성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남자에게 하는 교훈도 대개는 여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마5:28). 반대로 여자에게 한 말씀도 남자에게 동일하게 한 말씀일 때도 있습니다(약4:4). 간음이란 육체적 마음적 혹은 이방신을 섬기거나 세상과 벗된 영적인 간음이 있습니다(약4:4). 전에는 그런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주님을 신랑으로 모신 거룩한 신부가 되었습니다.
15. 십자가 지고 주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4절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여기 예수님을 구속주이신 어린양으로 표현했는데 이처럼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칭 구주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른 요한이나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인들처럼 주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환경에서도 주를 따르고 사랑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때문에 싸우지 못하고 원수도 사랑하고 예수 때문에 밤을 새워 기도하고 예수 때문에 감옥에 끌려 간다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사도들처럼 도리어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장한 십사만 사천입니다.
16. 인내와 헌신의 사람들입니다.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3절에서는 "땅에서 속량함을 받았다" 했는데, 여기서는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보완적인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 중 처음 익은 열매가 십사만 사천이니까 그 사람들도 따라서 열매를 맺을 후보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성령을 기다리라 당부 받은 사람은 500이었지만 그 중에서 120명만 헌신하여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던 것과 같습니다. 박해로 인해 두려울 때 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힘과 목숨까지도 드리는 헌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겨 성령충만한 인내와 헌신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17.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주를 위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1절에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는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속량함으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했으니 이 모든 것은 주님의 공로임을 시사합니다. 롬1:6에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한 말씀과 같습니다. 그런데 속했다는 말씀의 이차적 의미는 그러므로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를 사랑하고, 남기신 복음전도를 위해서도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그들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마28:20).
18. 믿음의 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입에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그 인격이 진실하고(마12:34-35) 또 온전하다는 것입니다(약3:2). 거짓말은 일반인도 하지 않는데 거짓말이 없음이 14만 4천의 뛰어난 덕성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진리와 믿음의 말이 아니면 모두 거짓말입니다. 열 정탐꾼들처럼 현실과 사실을 말한다고 진실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성경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래서 벧전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 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새 피조물의 자화상이나 타화상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고후5:16-17). 성도가 세상적이고 믿음 없는 말을 한다면 그는 시온 산에 선 14만 4천이 될 수 없습니다.
19. 죄를 떨어버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흠”이란 제사적 용어로 구약에서 제물을 취할 때 결격 사유가 없는 짐승을 의미했습니다(레22:21-23). 그들은 흠 없는 어린양과 같았습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엡5:26-27). 그러므로 세상적인 죄악을 모두 떨어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다 이룬 자요(롬13:8, 롬13:9-10), 완전한 자입니다(고전13:8-13).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사만 사천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알곡이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이 땅의 성도들의 변화를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고 더 순종하고 더 예배하고 더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은혜를 받아 높이 되신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있는 영광스러운 십사만 사천의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