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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합당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을 가치없게 만들며 구원과는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구원의 삶을 살고 있는 지 살펴보고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원에서 멀어지는 인생은 자기를 위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호세아 8장 4절입니다.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책망을 보게 되는데 이스라엘이 책망받은 첫 번째는 왕을 세운 잘못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왕을 세운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그것은 왕을 세운 목적부터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난 것이었고 그렇게 세운 왕이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권력으로 우상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잘못된 일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으로 인해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운 이스라엘에 대해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진짜 몰라서 그렇게 말씀하신걸까요? 그렇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백성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사도행전에서도 하나님의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공동체였습니다. 빌립보서에서도 우리 예수님의 삶을 예로 들면서 자신보다 남을 더 좋게 여기는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우리는 항상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고 항상 우리가 더 대접받고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본성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본성이 지배하는 이 땅의 사회에서는 항상 비교우위를 차지해야 우리가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항상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유혹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천국에 들어가도 천국이 천국같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간 영혼들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나눠주고 섬길텐데 이런 영혼은 천국가서도 다른 영혼보다 자기가 더 인정받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기보다 다른 사람이 더 사랑받는 것은 아닌지 질투하고 시기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게된다면 그곳이 과연 천국같이 느껴지겠습니까? 천국에서도 내면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천국에서도 대접받고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데 그게 천국이 되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백성은 자기를 위해 사는 영혼이 하나님과 타인을 위해 사는 영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땅에서부터 인간중심의 사고를 내려놓아야하고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가 대접받고 인정받기위한 유혹과 싸워 이겨야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한 부자가 대단히 농사가 잘되어서 추수를 많이 했습니다. 재산이 많아지니 재산을 모아둘 창고가 필요했습니다. 창고를 채우고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으니 이제는 열심히 놀고먹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 너의 영혼을 데려가면 이 재산이 모두 누구의 것이 되냐? 너 자신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너가 지금 죽게 된다면 결국 이 재산으로 인해 니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사실 재산은 이 땅에서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결국 죽음과 동시에 모아진 재산과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끝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21절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사랑은 결국 하나님마저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타인보다 자기를 더욱 돋보이고 싶은 욕망은 결국 천국을 포기하게 만드는 단추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리는 영혼이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나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원에서 멀어지는 인생은 죄에 빠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호세아 8장 11절입니다.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제단을 처음 만들 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자신이 사는 근처에 제단을 만들어서 멀리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좋은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의도가 몸이 편해지는 편리성,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효율성, 시간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힘들게 어떤 일을 하면 성취감도 크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그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쉽고 간단해보이는 일은 별로 중요해보이지도 않고 얼렁뚱땅하려고 듭니다. 가까운 곳에 제단을 만들면 몸이 편해지고 돈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는 장점이 있을 것같지만 결국 그것으로인해 본질이 사라지는 결과는 낳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런 시도를 통해 예루살렘성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제단의 제사양식이 너무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서 결국 먼 곳에 있는 제단은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점차 제단에는 금송아지, 금양, 금염소... 금과 은으로 각종 동물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편해지면 죄에 노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모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정필도목사님께서 담임목사이셨을 때 항상 몸이 편해지면 죄의 노예가 되기 싶다고 말씀하시면 본질적인 사역과 말씀과 기도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사역을 요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면 죄를 짓는 유혹에 쉽게 넘어진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여유를 가지면 여유시간에 더 많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전도할 것 같지만 결국 여유가 생기면 자자, 쉬자, 먹고 마시고 즐기자 등의 생각을 하는 존재들입니다. 결국 그런 것들속에서 우리의 육신을 위한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들은 죄를 짓기 위해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실천하며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의 모습을 태어났음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죄인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었기에 그 죄인인 자신을 구원하시려고 에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은 좀 죄의 주체나 누구인지에 대해 오해를 할 만합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해보았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거짓되고 오직 하나님만 참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참되게 살려고 노력해야지.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노력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사실을 항상 깨닫게 되는 존재입니다.
“왜 나라는 존재는 거짓될 수 밖에 없는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 자신의 죄를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짊어져주셔서 죄가 해결된 것을 믿게 될 때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갔던 존재들이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은혜로 인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가 우리에게 여전히 찾아와서 한 번 또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우리를 죄짓게 만들지라도 빨리 돌이켜 예수님으로 인해 죄을 떨어버리시고 온전한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가 의인이라고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죄없다 인쳐주시고 의인으로 만들어주신 것을 믿고 이제는 죄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원에서 멀어지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이상한 말씀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입니다.
호세아 8장 12절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것중 마지막은 바로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본 뜻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유익을 위한 말씀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단도 말씀을 가지고 말씀대로 적용하며 산다고 말합니다. 자기들처럼 말씀을 깊이있게 연구하는 곳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러 이단들이 전도하는 전도지와 그들의 들고다니는 성경을 보면 알지만 그들은 성경에서 그들 입맛에 맞는 구절만 골라서 암송하고 그것으로 전도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단들은 설교를 할 때도 목회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성경구절을 뽑아서 설교를 하지 못하고 총회장이나 총재라고 불리는 교주들의 지침으로 내려오는 설교문을 그대로 사용해야합니다. 설교문에서 벗어나거나 그들이 인정할 수 없는 성경본문으로 설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취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말씀 하나라고 빼어놓고 버리고 쓸모없는 말씀으로 취급해버리면 결국 이들은 천국과 무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19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성경은 우리 맘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감동으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성경을 풀면서 인간 목사의 생각이 들어가고 성경을 풀면서 인간의 욕심이 들어가버리면 이단사설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원래 이단들중 의도적으로 성경을 끼워맞춰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해 악한 마음으로 이단이 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음에도 성경을 해석하면서 이단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풀면서 인간적인 견해가 많이 들어가고 성경이 이해되지 않을 때 성령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며 성경이 성경을 풀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인간의 지식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려고 하다보니 그런 죄를 범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인간의 힘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22절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나를 위해서 끼워맞출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율법을 버리게 되었을 때 임하실 재앙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장 24절입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고 그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여나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나 자신을 변호하고 옹호하고 나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라 살며 축복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특별한 민족으로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기에 장자로서 누리는 큰 축복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은 민족으로 놀라운 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민족이 이제는 세계 어느 민족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동등한 자격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 축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그 구원의 축복을 계속 경험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 자신을 위하여 읽고 죄를 짓는 도구로 이용하고 이상하게 바꾸어 번역해고 해석하며 적용한다면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일에 순수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을 위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