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 살아생전에 부모님이 작고 하시면 모시려는 목적으로 산을 구입한 것이 있습니다.
집에서 멀리 않은 곳에 있어야 고인을 찾아뵙기 좋다는 생각을 갖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만한 산입니다.
세월이 흘러 산소를 쓴 곳 옆에 교도소가 들어서고, 계속해서 여러 시설물들이 들어서면서부터 조상을 모신 산을 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결국에는 산을 팔게 되었습니다.
선산에 모신 분들은 이장을 하던지 개장을 해야 합니다.
내게로 할아버지 내외분, 큰 아버지 내외분, 내부모님, 그리고 큰 형님 등 일곱 분을 모신 산입니다.
장조카로부터 지난 일요일(06/25) 개장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이침 일찍 서둘러 개장을 하는 선산으로 갔습니다.
금년이 윤년이라서 개장하기 좋은 해랍니다.
장조카로 부터 개장소식을 접한 지지난 일요일 아들을 데리고 약주 한병, 안주, 돗자리 등을 준비해 미리 조상의 묘에 술 한 잔 따라 올리며 옛 추억을 나누고 왔었습니다.
산에는 이미 조카 둘, 가까운 곳에 사는 사촌형님, 그리고 개장일을 하기 위해 포클레인과 인부 네 명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순서는 제일 윗자리에 모신 할아버지 할머니,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 내 부모님, 형님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님의 유골은 얼마 나오지 않았습니다. 삭다 남은 뼈 몇 조각이 전부입니다.
큰아버지 유해 또한 나온 게 별로 없습니다. 큰 어머니는 해골과 뼈가 많이 나왔습니다. 염습한 수의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수의를 잘못 선택해서 화학섬유가 많이 섞인 수의였는가 봅니다.
누가 조상을 모시는데 안 좋은 수의를 사용할까 싶은데 수의를 파는 사람 농간이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 때나 그런 속임수를 쓰면 안 될 텐데 말입니다. 황망중에 있는 유족을 이용하는 것일테지요.
내 부모님 차례입니다. 봉분을 열고 유골을 수습합니다.
살만 삭고 뼈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돌아 가신지 벌써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세상에 미련이 있으셔서일까요?
수습해 나온 유골이 너무 많습니다. 보는 내내 속이 불편합니다.
마지막으로 큰 형님의 유골 또한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준비해 간 유골함이 작아 보입니다. 일곱 분 유골을 따로따로 모두 수습을 하고 뒷정리를 한 다음 하산을 했습니다. 시간은 벌써 오전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지역민을 위해 추모공원화장장이 원덕리 한적한 곳에 들어섰습니다. 주변주민들의 격한 반대가 있었지만 보상이 원만히 해결되어 시설물이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홍성화장장을 이용했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한결 편하게 장례를 모실 수 있습니다.
사전에 화장 예약을 하고(14:30분 예약) 미리 현장에 도착 준비를 하고 대기합니다.
일반적인 화장은 90분 정도 소요되는데 개장하는 유골은 40여 분에 끝났습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체됩니다.
한번의 장례도 쉽지 않은데 두번의 장례는 더욱 힘이 듭니다.
지금은 화장이 보편화 되어 있어서 앞으로는 장례를 모시고 개장이나 이장을 하는 번거로운 일은 없을테지만요.
죽고 사는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내 죽으면 어떻게 해달라고 자식들에게 얘기를 해 놨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십여년전에 보건소에서 작성 등록을 해 놓았습니다.
이러한 사전 절차들이 필요합니다.
산은 팔아야 한다는데 조상님들을 어찌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일곱분 산소를 윤년 덕분에 잘 정리를 한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안합니다.
조상님들이 새로 이사한 곳에서 잘 지내실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