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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3, 수
속뜻으로 이웃이란 그 사람안에 있는 선과 진리를 말한다. 그 선과 진리의 기원은 주님이고, 그 선과 진리가 주님이시다.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하면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고 의문을 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적 선과 영적 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태25:31-40)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베풀었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천적 선이란 의지 자체로부터 행하는 선을 말한다.
영적 선이란 이성 안에 있는 의지로부터 행하는 선을 말한다.
천적 선은 주님사랑이고, 영적 선은 이웃사랑이다.
(마태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의지 자체로부터 행하는 천적 선이란 주의 말씀을 의지로 받아서 행하는 선이다. 이성 안에 있는 의지로부터 행하는 영적 선이란 주의 말씀을 이성으로 받아 의지로 행하는 선이다. 천적 선은 듣고 바로 행동한다면 영적 선은 듣고 난 이후에 행동한다. 의지로 받아서 행하는 것과 이성으로 받아서 한 번 생각하고 행하는 것의 차이가 천적 선과 영적 선의 차이이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천적 선과 영적 선은 태고교회의 선과 고대교회의 선 즉 3층천과 2층천의 선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선은 1층 천국에 상응하는 천적 자연적 선과 영적 자연적 선이다. 태고교회의 천적 선은 지각으로부터, 고대교회의 영적 선은 양심(상응의 지식)으로부터 행해진 선이나 오늘날의 천적 선과 영적 선은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즉 믿음으로부터 행해지는 선이기 때문이다.(A.C. 10355)
(로마서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유대교회의 계시는 살아 있는 음성 즉 천사를 매개로 한 주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레마(말씀)가 기록이 되어 오늘날에 구약이 된 것이다. 기독교회는 어떠한가? 성육신한 주님의 살아 있는 음성 즉 육신을 입은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계시가 있었다. 이 레마(말씀)가 기록이 되어 신약이 된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회를 비교하자면 유대교회는 동이고, 기독교회는 철이다. 동은 속뜻으로 자연적 선을 뜻하고, 철은 자연적 진리를 뜻한다. 이 두 가지 선은 1층천에 상응한다. 즉 천적-자연적 선과 영적-자연적 선이다.
(단2:32,33)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와 발은 철과 진흙이었나이다.”
[금]은 3층천의 천적 선, [은]은 2층천의 영적 선, [놋/동]은 1층천의 천적 선 [철]은 1층천의 영적 선 곧 진리이다.
(단2:34,35)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금]은 태고교회의 선, [은]은 고대교회의 선(진리) [놋/동]은 유대교회의 선, [철] 기독교회의 선(진리)이다. 위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교회들은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고, 그것을 자연석이 쳐서 파괴하였다. 즉 위의 4교회는 자연석에 의해서 바람 앞에 겨와 같이 날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표징이나 예언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예징이다. 예언이며 표징이다. 역사적인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다. 전자는 세상 왕국의 역사를 말하고 후자는 교회의 역사를 말한다. 성경에서 예언은 자연적인 역사가 아니라 영적인 역사 즉 교회의 역사를 말한다. 앞으로 교회가 이렇게 될 것이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 성경의 예언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의 관한 꿈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속뜻으로 금은동철은 내적 역사로서 5번째 교회인 새교회 이전에 있었던 4개의 교회를 다루고 있고, 그 4개의 교회를 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자연석이 날아와 그 사람/신상을 쳐서 부숴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그 자연석이 천하의 태산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적 역사로 또는 역사적으로 있었던 4개의 교회는 사람으로 치면 생명이 다해서 죽었다는 것이고, 새교회는 이전교회와는 단절하여 새로운 한 사람으로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즉 새교회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태어난 것이다. 새로운 사람의 처음이라는 뜻에서 오늘날의 새교회는 이후의 교회와 비교해서 말하면 첫째이고 머리라고 할 수 있다. 옛 사람(금신상)의 머리가 아담교회 즉 태고교회였듯이 오늘날의 새교회는 이후의 모든 교회의 머리로서 새로운 아담교회 즉 새로운 태고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연석이 어디를 쳤는가가 또한 중요하다. (단2:34) “자연석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쳤다.”에서 [종아리와 발]은 기독교회를 뜻한다. (단2:41-43)을 보시면 진흙은 종아리가 아니라 발과 발가락에 철과 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종아리는 아직 타락하기 전의 기독교회를 뜻한다면 철과 진흙이 같이 하고 있는 발과 발가락은 타락한 이후의 기독교회를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을 쳤다는 것은 기독교회의 말기에 그랬다는 것을 뜻하고, 새진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종말 때 즉 최후심판 때를 의미한다.
(내적) 역사적으로 최후심판은 언제 있었는가? (T.C.R. 772)항을 보면 중간영계에서 1757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중간영계에 구름을 타시고 영광과 권능으로 오셨다. 구름은 문자의를 뜻하고, 영광과 권능은 속뜻을 뜻한다. 이것은 인조석이 아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창안한 것이 아니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연석이다. 인자나 구름이나 영광이나 권능이나 모두 말씀이다. 주의 재림은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최후심판도 마찬가지이다. 그때의 최후심판은 기독교회에 대한 심판이였지만 (단2:31-35)의 금은동철로 이루어진 신상에서 보듯이 그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교회에 대한 심판임을 알 수 있다.
(T.C.R. 786-790에서 788항) 예언자 다니엘이 이 교회가 모든 옛교회들을 승계할 것이며 그들 모두의 면류관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을 예고했다. 즉 그가 느부갓네살에게 그의 꿈에 나타났던 신상으로 네 교회들이 표징된 네 왕국들에 관하여 그의 꿈을 언급하고 해몽했을 때 이 예고를 했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단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큰 바위로 변한 돌 그것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된 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했다.(단2:35) 동일한 예언자가 다른 곳에서 말한다.
(단7:13,14) ‘내가 또 밤 이상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짐승들을 본 후(단7:3)에 그 짐승들이 네 교회들을 표징했다고 말했다. 다니엘의 이 예언은 현 시대(1700년대)를 언급한 것이니 그 책(단12:4)과 (마태복음서 24:15,30)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해서 명백하다. 이와 같은 것들이 묵시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묵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그 신상을 가루로 만드는 그 자연석은 산에서 가져온 돌이다.(단2:45) 이 돌은 철과 진흙이 함께 있는 발과 발가락을 겨냥해서 던져졌으며, 그곳을 치므로서 신상 전체를 파괴해 버렸다. 이 돌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 알고 있듯이 주님이고 말씀이다. 그렇다면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서 곧 성문서이다. 그렇다면 그 자연석이 있었던 산은 어떤 산인가? 시내산이다.
다시 말해서 천국을 상징하는 시내산이다. 시내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주님으로부터 십계를 받아 왔다. 산은 일반적으로 사랑을 표상한다. 특별하게는 사랑의 나라인 천국을 상징한다. 모세가 오른 산은 역사적으로는 시내산이나 영적으로는 천국이다. 모든 예언자들은 천국에 오르거나 그로부터 내려온 천사를 통해서 계시를 받았다.
(출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고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출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출31:18) “여호와 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32:15,16)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판이 그 손에 있고 그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그러나 이 첫 번째 십계명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로 파괴 되었다.(출32:19) 이 첫 번째 십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돌판이나 글이나 주님이 만들고 기록하였다는 것이고, 그것도 시내산 정상에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십계명은 이와 다르다. 돌판에 기록은 주님이 하셨으나 그 돌판은 모세가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것도 시내산 아래에서 만들어서 시내산 정상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출34: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깍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깍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오르니‘
[돌판]은 문자의를 말한다. [돌판에 기록된 글자]는 속뜻을 말한다. [시내산]은 천국이다. [시내산 아래]란 천국 밖을 말한다. 즉 첫 번째 십계명은 문자의로나 영의로나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뜻하나 두 번째 십계명은 영의로는 천국으로부터이나 문자의로는 천국밖이라는 것을 말한다. 시내산에서가 아니라 시내산 아래에서라는 것은 세상적이다는 것을 뜻하고, 주님이 아니라 모세가 다듬어 만들었다는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인이므로 이스라엘적이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두 번째 십계명 즉 말씀이 겉으로는 세상적이고 이스라엘적이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십계명 즉 말씀은 겉으로나 속으로나 천국적이였으나 두 번째 십계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십계명에 관한 이 기록들은 모든 계시의 표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이 그러하다. 모세오경뿐 아니라 그 이후의 신약 이전까지의 계시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자적으로는 세상적이고 유대적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는 두 번째 십계명에 관한 것이고, 첫 번째 십계명은 비유대적이고 천국적이였다. 그것을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성품을 가진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어질수 없었다는 것이 그 십계명의 파괴이다.(출32:19)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신상을 파괴한 산에서 가져온 자연석은 주님의 말씀을 뜻한다는 것이고, 여기서는 속뜻으로 또는 내적 역사로 볼 때 이 돌이 뜻하는 것은 기독교회의 종말을 가져온 1757년의 최후심판 이전(A.C.는 1749-1756년)과 이후에 계시된 성문서라는 것이고, 시내산이 뜻했던 것이 천국이듯이 스베덴보리도 주님의 은총으로 예언자들처럼 유체이탈하여 천국에 올라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의 저서는 신학책이 아니고 주석서도 아닌 계시서이다.
